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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산악인의 경기 의왕 “오봉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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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위치 표지판산에서보는풍경 

오봉산은 의왕시 왕곡동에서 의왕시청 쪽으로 간다.  경수산업도로에서 보면 건너편으로 봉우리 다섯 개가 나란히 바라보인다.  산에 오르면 바다가 보이며, 끝에서는  봉우리가 한개 더 있어 봉우리 여섯 개의 모습으로 보이는 산이다. 

해발 205 m 의 한남정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오봉산걷기는 등산자체를 즐기는 것보다는  오봉산 산책길을 걸으면서  오봉산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알아 간다는 것, 어떤 전설이야기가 있는지 생각하며 걸어보는 것이 좋을듯 싶다.   
어쨌튼 오봉산도 한가지 정도는 내세울만한 곳이 있다 .  그것이 병풍암이다.   등산로 초입에서 의왕시청을 끼고 조금 오르다보면 좌측으로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암벽이있다.  그것이 암벽 등반등반 훈련장으로  알려진 병풍바위이다. 

인근 청계산,모락산, 백운산, 덕성산과 더불어 의왕시의 대표적인 5개 산중에 하나이다.   

오봉산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2가지가 내려오고 있다.  의왕시청 홈페이지와 의왕시 왕곡동 청풍김씨 문중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오봉산에 내려오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과연 어떤 이야기가 꼭꼭 숨어있는지 이 여행자가 파헤쳐 본다.  지금부터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의왕시에 사시는  어르신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다.

 현위치 표지판암벽 

의왕시청을 지나 오봉산 정상으로 조금 오르다보면 죄측에 울창한 수림속에서 우뚝 솟아있는 암벽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등산학교 암벽 교육장으로 사용하거나 전문 암벽 등반가들이 자주 찾는 병풍 바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여행자도 오래 전엔 이곳에서  가끔 암벽 등반을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암벽 등반루트가 생기게 된 것은 1985년과 6년 사이에 수원 맥산악회와 적십자 구조대원들이 몇개의 루트를 개척하여  등반을 하던 곳었다  그후 1992과 3년 수원 돌비알 산악회에서 더 개척을 해서 지금은  총12개의 암벽 등반 루트를 새로 개척했다.  접근성이 좋고, 어프러치도 짧아 이지역 클라이머들은  자주 찾는 곳이다. 

루트는 높이18 m, 폭 30여m 정도이며 등반 루트은 페이스, 크랙, 오버행 등으로 되어 있다.  암질은 검은색과 회색을 띠고 있으며 변성암이다.  암질은 단단해서 바위에 클링 홀드가 많이 있어 미세하지만 자세히 보면 홀드와 스텐스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특히 페이스는 대충 보기엔  잡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크랙은 수직벽이며 오버행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잡기좋은 작은 클링 홀드들이 많다.  크랙은 날카로운 형태를 하고 있어 크랙클라이밍을 즐기는데 제격이다. 암각이 확실해서 레이백이나 스태밍이나 레이백으로  오를 수 있다.  볼트가 대부분 멀리 있거나 아예 없는 루트도 있다.  따라서 크랙등반을 할 경우 프렌드를(바위틈에 끼우는 암벽등반장비) 이용해서 오르는 것이 안전하게 등반 할 수 있다.  

병풍바위가 차지하고 있는 곳은 여기저기 쉴 수 있는 의자가 갖추어져 있고, 하룻밤 야영이나 비박도 가능한 공터가 있다.  하늘을 지붕삼아 별을 헤아리며 하룻밤 숲속에서 야영을 하는 것은 어떨까.  야생에서 하루 밤을 지새는 것이야말로  아무 여행자나 쉽게 경험 할수 없는 것이 아닌가.  오직 땀흘려 여행하는 등산,트래킹,야영,비박,캠핑여행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등산로등산로

1, 오봉산에 내려오는 첫번째이야기

옛날 중국에서 죄를 짖고 도망처온 중국사람이 이곳 오봉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마침 우연한 계기로  그의 곁에 앉았던 청풍김씨 성을 가진  한 분이 그를 불쌍히 여기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음식을 주고 옷도 새로 마련하여 주면서 며칠 쉬다가 가라고 하였다.  
마침 그 때 그 청풍김씨댁 할머니가 중환이어서 매우 위독한 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에 그 중국사람은 할머니의 병환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도저히 소생할 가망이 없음을 판단하고 청풍김씨에게 말을 이렇게 건네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저이지만 노부인의 병환으로 아무래도 회춘하시기가 어려운 고비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타국에 와 생면부지인 당신을 만나 나는 겨우 고생을 벗어나 이제 몸도 다 회복하였습니다.   이에 당신께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아무것도 지니지 못하였으나, 다만 중국에서 약간 배운 기술이 있는지라 저 노부인을 모실 산소라도 하나 보아 추천하겠습니다.”

청풍김씨는 이 중국 지관의 말이 하도 고마워 함께 산소자리를 보러 나섰다.  저 앞에 바라보이는 오봉산을 건너다 보고 함께 그리로 가자 하였다.  중국 지관의 뒤를 따라 오봉산에 이르러 그 뒤편으로 가니 어느 집 한 채가 있는 곳까지 가서 이 집터가 고지라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광중이 될 자리까지 지정하여 주는데 그 자리란 바로 그 집의 장독대가 있는 지점이었다.

청풍 김씨는 딱하였다.   아무리 자기 노모님을 모실 자리로서 명당을 추천 받았다 하지만 어엿이 살림을 차리고 있는 집에 들어가 그 집터를 산소자리로 양보해 달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시간을 끙끙거리다가 큰 마음을 먹고 그 집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찾아온 뜻을 말하였다.   처음부터 승낙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역시 그랬다.   뿐만 아니라 그 집 주인에게는 이만저만한 노여움을 산 게 아니었다.   청풍 김씨는 결국 사과의 말을 하고는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청풍김씨가 그 집터에서 돌아온 그날 밤에, 그러니까 집터를 산소 자리로 양보하여 달라고 말을 건네었다가 오히려 잘못 되었다고 사과까지 하고 돌아온 그날 밤에 어찌된 영문인지 오봉산 뒤, 그 집에 불이 나서 몽땅 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또한 이 청풍김씨 댁 노부인도 그 시각에 운명하고 말았다.

마을에서는 이야기 거리가 생겼다.   멀쩡히 집짓고 사는 이에게 산소자리로 내어 달라고 한 것도 이야기 거리인데, 거절하였더니 그 날 밤으로 이상하게도 원인 모를 불이 나 집 한채를 몽땅 태웠고, 그뿐 아니라 청풍김씨댁 노부인이 또한 시간을 맞추어 운명하셨으니 더욱 그러하였다.  

따라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청풍 김씨네에서 그 집터를 산소자리로 하려고 일부러 불을 질렀다느니, 혹은 불이 난 것은 그 집터가 청풍김씨네 노부인 산소자리로 이미 하늘이 정해 준 것이어서 그렇다느니, 그것은 하필이면 그 불이 난 밤에 노부인이 운명하실 것이 무엇이냐? 그것으로도 이미 하늘이 정하여 준 것이다.  등등 말은 꼬리를 물고 이어나갔다.


“이제 노부인을 모실 자리도 확정되었으니 저로서도 그간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공원

어쨌건 산소자리를 위한 이야기가 당시 양가 사이에서 시작되었고 결국은 원만한 합의를 얻어 그 타버린 집터에 청풍김씨는 묘를 쓰게 되었다. 장사를 치르기 전날 중국에서 온 사람은 다시 청풍 김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노부인을 모시기 위하여 땅을 파서 광중을 만들 때 얼마큼 파 내려가면 펑퍼짐한 돌이 부딪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 더 파지 마십시오. 꼭 지켜야 합니다.”다시 그 막내는 놀랜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돌 아래 펼쳐졌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돌 밑에는 돌로 된 옥동자 다섯 개가 앉아 있었고, 그들을 향하여 그들 보다 조금 더 큰 옥동자 하나가 서 있었다.   흡사 옥동자 다섯에게 무엇인가 일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이 막내는 너무 놀라 쳐들었던 돌을 놓는 순간 무엇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생각하고는 그 돌 위에서 이 구석, 저구석 밟아 보았다.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돌을 쳐들기 전까지는 기우뚱거리던 그 넓적한 돌이 이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꽉 제자리에 이가 맞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아까 무엇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는 바로 그 다섯 개 옥동자 앞에 서 있던 옥동자의 머리가 부러진 것으로 여겨졌고, 그 머리가 부러지기 전에 그 넓은 돌이 그 키에 걸려서 기우뚱거렸을 것임이 분명하였다.   이윽고 상여 앞에서 긴급 가족회의를 열면서 광중의 돌을 제거할 것인가 말 것인가 를 의논하였으나 끝내는 중국 지술사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그 돌위에 그냥 하관을 하고서 묘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옷을 가다듬어 입고는 이번엔 떠나는 인사를 하였다. “이제 저는 중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죄명이 누명으로 밝혀져 역적의 누명이 깨끗이 씻겼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야 합니다. 거듭 부탁드리겠는데 광중에 펑퍼짐한 돌이 나타나거든 그 이상 더 파내려가지 마시고 그 돌 위에다 그냥 하관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더니 훌쩍 길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드디어 장례날이 되었다. 산역을 하고 상여를 모시고 온 집안이 떠들썩 하였다.   산소자리까지 상여를 모시러가 광중이 다 되기를 기다리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하던 사람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광중을 파는 주위에서 꾸부리고 있던 화장꾼들도 한 몫 거들고 있었다.

“더 파야지.  너무 얕지 않아?”  “아냐, 그만 파라고 했어.  여기 봐.  돌이 놓여있지 않아?” ” 그렇지만 이렇게 광중이 얕아서야 … ” “상관없어,  더 파지 마. ” “이럴 게 아니라 상주에게 직접 보이고 결정하세.”

결국은 상주인 청풍김씨에게 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처분을 바랬다.   청풍김씨는 이 이야기를 듣더니 직접 가 보았다.   분명히 중국 지관이 말한 대로다.   그러나 광중으로서는 너무 얕아 보였다.   그도 혼자 결정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일단 작업을 중단시키고 급히 가족회의를 열기 위하여 산소 가까운 곳에 대기중인 상여 앞으로 가서 구수회의를 가졌다.  

이 때 광중을 파던 산역꾼들도 한동안 쉬기 위하여 광중으로부터 멀리 떠나 나무그늘 밑으로 갔고, 다만 청풍 김씨네 막내 아우만이 홀로 광중을 지키고 있었다.   원래 광중을 파게 되면 반드시 누군가가 지키고 있게 마련이다.   혼자 광중을 지키고 있던 막내는 지금 말썽이 되고 있는 펑퍼짐한 돌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슬며시 광중으로 들어섰다.   다시 그 펑퍼짐한 돌 위에 올라 서 봤다.   그런즉 밑에 무슨 돌이 있는지 어떤지 그 돌이 기우뚱거렸다.   무심코 그는 그 돌 한쪽 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밑을 내려다 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그 펑퍼짐한, 흡사 구들장 같은 돌을 들어 올리면서 내려다 보는 순간, 그는 ‘윽!’ 하면서 다시 돌을 놓아 버렸다.   그 순간 무엇인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 넓적한 돌은 제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산소가 다 치성되고 나서도 이 막내는 그러한 광경이 너무나 무서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산소에 관한 비밀은 이 막내만이 알고 그냥 지켜져 온 것이다.

한편 중국으로 돌아간 지술사는 자기 아버지에게서 꾸중을 듣게 되었으니, 갖은 고생을 겨우 끝내고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이렇게 나무라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너는 너의 목숨을 아껴주고 구해준 조선땅의 청풍김씨 댁을 은혜는 못 갚을지언정 역적의 집안으로 인도하였으니 그럴 수가 있느냐. 어서 되돌아가서 그 산소를 옮기도록 하여라.” 아들이 그 연유를 물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중국 지관은 그제야 한숨을 푹 쉬면서, “그럼 되었고, 그 부러진 것이 바로 다섯 개 옥동자 앞에 서 있던 옥동자의 목이 틀림없소.   그렇다면 이제 역적은 사라지고 그 대신 정승이, 그것도 6정승이 나올 것입니다.  ” 하면서 저으니 마음을 놓는 듯 하였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조선 땅에서는 가장 좋은 길지로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되는데요.” “아직 멀었다.    너는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 그 자리는 5정승을 거느리고 역적 모의를 하는 또 하나의 옥동자가 있었느니라.   그가 바로 그 집안을 역적의 집안으로 만들 후손이니라.”   중국의 지술사는 새삼 자기 아버지의 지혜에 탄복하고 그 길로 다시 조선으로 건너와 청풍김씨댁을 찾았다.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난 청풍김씨 댁에서는 이만저만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지관은 들어서자마자 자기가 잡아준 산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제의하면서 서둘렀다.    그 때의 청풍김씨의 막내도 한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더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숨겨서는 안되겠다고 판단을 하자 그제서야 여러 사람들, 즉 집안식구와 중국 지관앞에서 그 날, 장례식날 광중에서 겪은 일을 모조리 차근차근 이야기하였다. 

그 후에 정말로 이 청풍김씨 집안에는 6정승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저 오봉산 봉우리가 그 산 이름처럼 다섯 개지만 사실은 가만히 바라보면 한쪽 끝에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모두 여섯 개 봉우리, 즉 6정승을 암시하는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등산로등산로

2, 오봉산의 내려오는 두번째 전설  

군포시 당정동 새전마을에서 의왕시로 넘어가는 길 옆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다.  이것이 ‘오봉산 장군바위’라고 한다.  이 바위엔 아기장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오랜 옛날 살림이 정말 어려운 여인네가 이쁜 옥동자를 낳았다.
하지만 이 아낙네는 워낙 살림이 가난하여 아기를 낳자마자 우물에 나가 쌀을 씻어 솥을 앉히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일을하고  방에 들어와 보니 아기가 없어져버렸다.  아낙은 여기저기 아기를 찿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기가 천장에 올라가 붙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아낙은 신기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얼른 끌어 내려 몸을  살펴보니 갓난아기의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 있었다.  기겁을 한 산모는 이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뇌리를 스쳐지나간 것은 ‘역적’ 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가 범상이 아니라면 반드시 자라서 엉뚱한 행동을 할 것임에 틀림없고, 그렇게 되면 집안의 앞날은 뻔한 노릇이었다.   따라서 얼른 문 밖으로 나가 뜰에 놓여 있던 큼직한 맷돌 밑장을 들고 왔다. 

그리고 갓난 아이를 이불로 덮고 그 위에 맷돌짝을 올려 놓았다.  그 순간 뒷산인 오봉산에서 용마가 나와 바위 위로 뛰어내려 오다가 그만 무릎을 꿇고 죽었다.  그 용마는 이 집에 태어난 아기장수를 태워서 하늘로 오르기 위하여 기다리던 말이었는데, 그만 아이가 숨을 거두는 순간 용마도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 바위에서는 흡사 말 발굽 같은 자국이 남았고 세상 사람들도  이 아기장수 와  용마의 이야기를 믿으면서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출처 : 의왕시청 http://www.uw21.net/

등산로등산로

• 오봉산 찿아가는 길은 … 의왕시청으로 가야한다.  주소>> (경기 의왕시 이동 24-1)

의왕시청 주차장에 무료주차를 할 수 있으며 시청을 바라보면서 시청 건물 좌측으로 돌아가면 테니스장이 나오며 이곳 테니스장 안으로 들어가 우측문으로 빠져 나가 등산로를 타고 곳바로 5분쯤 200여m 올라가면 병풍암이다.  
오봉산 등산루트는 >> 의왕시청주차장 >> 병풍암바위앞 >> 약수터 >> 오봉상정상까지 왕복 2km , 소요시간 약 1시간 정도 소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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