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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관광주간 코스 4 가을 빛 따라 걷는 평화누리길] 숭의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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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는 가운데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까지 좋아지게 만드는 가을은 걷기 여행의 최고의 계절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계절 관광주간을 맞이하여한적한 길 따라 걷기여행을 나서기 좋은 것이 경기도 연천입니다. 사람도 차도 적은 지역인지라 상쾌한 기분을 만끼하겨 걷기로는 최고의 명소이지 싶은데  그러한 평화누리길 사이에 숭의전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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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서 연천으로 이어지는 임진교를 통과하여 주상절리의 절경이 아름다운 임진강에서 조금 더 깊숲이 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조그만한 농산물 판매소위로 숭의전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그곳에서 언덕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먼저 반기는 것은 평화누리길 연천 둘째길 입구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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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숭의전은 조선시대로 비유하자면 왕실의 위패가 모셔져있는 종묘로 생각하시면 된 답니다. 

 사적 제223호 숭의전에는 고려시대 7왕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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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임진강의 푸른 물이 흐르고 그 앞으로는 그 넓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2그루의 느티나무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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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이야기가 있는 나무로 고려 왕실을 지키는 느티나무라고 합니다.

조선2년에 왕씨 자손이 심었다는 나무는 철따라 웅웅 소리를 내며 울때면  비나 눈이 많이오는 기상 이변이 까치가 찾아들면 마을에 경사가 까마귀가 찾아들면 마을에 초상이 났다하니  고려의 멸망을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된 듯 하네요

 

고려 왕실을 지키는 나무(느티나무)|이 느티나무(550년)는 조선 2년 왕씨 자손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숭의전은 조신시대 태조,현종,문종,원종의 위패를 모시고 재사를 지내던 사당으로 이성계가 세웠다고 한다.이 나무가 처따라 웅웅 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눈이 많이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며 까마귀가 모여들면 틀림없이 초상이 난다고 한다.

 

왕권이 미약하고 어지러웠던 고려 말기 우왕 – 창왕 – 공양왕에 이르는 불안한 정세를 역성혁명으로써 조선을 개국한 태조는  고려의 민심을 달래기위해 태조의 위패와 동상을 이곳으로 이전한 후 혜종에서 공민왕에 이르는 8대왕을 모시기에 이르고 개성에 살던  왕씨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을 관리하게 하였다 하니 그것이 바로 숭의전의 유래입니다

 지금의 건물은 한국전쟁중 전소되었던것을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사적으로 지정함과 재건하기에 이르렀고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례또한 봉행되고 있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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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조성 당시엔  18칸 규모의 정정과 함께  배신청 이안청 행배청등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숭의전, 배신청, 이안청, 전사청 앙암재로 이루어진 총 5채의 건물만이 남아있습니다

그중 숭의전에는 고려 태조를 비롯한 4왕의 위패가 배신청에는 정몽주를 비롯한 고려의 16 공신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중 숭의전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되는건 제례준비를 하던 앙암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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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암재에서는 비록 사진이었으나 태조 왕건의 동상을 만나게됩니다

원래는 개경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조선 개국과 함깨 개경의 고려 종묘를 헐린 당시 태조가 자주찾았다는 이곳 앙암사에서 지금의 숭의전 전조의 제사를 모시며 옮겨왔던것을  목주 위패로 대신하면서 현능에 매장하였던것을 북한에서  정비 공사 당시 발견 현재는 평양의 중앙역사박물관에 모셔져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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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는 수도가 개경이었던만큼 삼국시대중 고구려와 함께 백제나 신라 조선에 비해 우리가 직접 찾아갈 수 있는 유적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는 그 나라 또한 우리에게 조금은 멀어진 감이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숭의전지는 아주 의미있는 역사 체험장이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앙앙재 앞마당에서는 고려 태조의 동상을 마주하며 조선이 개국하며 시작된 수난의 역사를 통해 교과서에서 만나지 못했던 그 뒷면의 역사까지 들여다 보게되었구요

 

고려왕족의 수난사|왕씨에게 불어닥친 피바람|조선이 개국하자 고려 왕족의 수난은 개경에서 쫒겨나 거제도와 강화도로 보내자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1392년 10월 13일 개경에 있던 고려의 종묘를 헐고 그 자리에 조선의 종묘를 건립하였으며 왕우의 아들 조와 관은 왕씨 성을 뺏기고 어머니의 성인 노씨를 따르게 하였다.1394년 1월 고려 왕족을 피바람으로 몰아넣는 사건이 발생한다. -명인 이홍무의 점괘사건- 으로 불리는 이 희대의 참극은 밀양의 유명한 점쟁이인 명인 이홍무에게 조선의 개국공신인 박위의 명을 받은 김가행과 믹중철이 찾아와 -고려 왕조 공양왕의 명운이 우리 주상전하 보다 누가 낫겠는가?-라며 점을 치게 하니 이홍무는 -남평군 왕화의 명운이 귀하다 하고 그 아우 영평군 왕자가 그 다음이 된다고 점을 쳐 주었다. 이사건이 발각되어 1394년 4월 주모자인 김가행,박중철,이홍무 등은 참수되고 연류된 왕화, 왕거 역시 참수형을 면치 못하였다. 이 참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삼척, 강화,거제에 살면 다른 고려 왕족들에게 까지 미쳐 강화 거제도의 앞바다에서 고려의 왕족들을 모아 모두 수장하고 죽이고 전국 곳곳을 수색하여 왕씨들을 참수하였다.|왜 연천의 마전에 숭의전을 세웠을까?|연산군의 폭정에 조강에 몸을 던진 당대의 뛰어난 시인 정희량이 마전의 한 객관에 머물며 남긴 시를 보면 당시까지만 하여도 마전은 매우 궁벽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임을 알 수있다.왜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임진강변의 외딴 시골마을에 태조 이성계는 전조의 제사를 받드는 사당을 세웠을까?이는 마전의 앙암사가 고려 태조 왕건이 자주 들러 기도를 드리던 기도처(원찰)이었기 때문이다. 태조 왕건이 궁예의 휘하에 있을 때 개경에서 철원 궁성으로 가는 길은 180리로 배를 타고 임진강을 거슬러 마전에 이르면 날이 저물어 하루를 쉬어가야 했다.임진강변의 잠두봉 중턱에 자리잡은 앙암사는 개경에서 딱90리 지경으로 경치가 수려하고 한적하여 기도처로서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태조 왕건은하루를 쉬어가며 몸과 마음을 추스리곤 하였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전조의 종묘를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마전군의 앙암사에 두개함으로써 전조를 예우한다는 명분과 개경 밖으로 전조의 흔적을 지워 유배시킴으로써 민심의 동요를 예방하는 심리를 함께 얻을 수 있었다.

 

 

앙암재에서 문을 통과하여 찾아가게되는곳은 숭의전과 배신청 그리고 이안청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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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고려 4왕의 위패가 모셔진 숭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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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가 자주 찾았던 앙암사라는 사찰에 숭의전이 들어설때만해도 고려 8왕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지만  조선 왕실과의 비교로 점차 그 숫자가 줄어 4왕에 이르나 문종과 중종  영조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두어  제를 올리고 관리를 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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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으로 자리한 배신청에는 고려시대 16명의 충신이 배향되어있습니다

태조 왕건의 드라마를 보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복지경 신숭겸 배현경을 비롯하여 홍유, 유금필, 서휘, 강감찬, 윤관, 김부식,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김취려 정몽주에 이릅니다. 고려의 시작에서 끝까지 함께했던  충신들의 면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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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의 우리의 역사에 있어  단일국가로 가장 너른 영토를 가진 시대는 언제였던가?

지금의 corea라는 영어명이 기원이 되었던 시대 고려청자를 통해 세계에 우리를 알렸던 고려는 조선시대와 함께 전 영토를 아울렀던 나라였건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영광스런 시간이 많았을텐데 역사적으로도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시대요, 몽골의 침입과 같은 아픔으로 기억되는 듯합니다.

 숭의전은 그러한 아쉬움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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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숭의전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고려 왕실의 쇠락을 알아간 후 잠두봉으로 향해봅니다.

 1789년 정조시대의 마전군수였던 한문홍이 숭의전 수리를 마치고는 고려왕조의 영화를 뒤로한 채 쇠락의 무상함을 담아 절벽에 새겨두었다는 칠언전구 암각문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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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암두봉은 산 절벽 아래 바위에 새겨져 있었으니 건너편에 보아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무성한 나무사이에 숨겨져있을터 이렇듯  사진으로만 대신해야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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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의 경계선의 경기도의 최북단에 위치해있는 탓에 안보 도시로만 알고있는  연천은 그러한 지리적 잇점으로 인해 알고보면 둘러볼 역사 유적지가 꽤나 많이 있었답니다. 고려 왕조의 흥망성쇠를 되짚어 볼 수 있었던 숭의전이 있었는가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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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 죽어서도 자기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비운의 왕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묘 또한 이곳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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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구려의 군사적 보루였던 호로로고루가 그것입니다.

숭의전과 더불어 경순왕릉 호로고루 그리고 또하나의 군사적 경계선이었던 당포성 쉬엄쉬엄 걸으며 찾아가면 좋은 역사유적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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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관광주간을 맞이한 여휴에 아이들과 함께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역사체험 여행을 나서보는것도 좋을 듯 합니다.

 연천 숭의전지 찾아가는길 :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양연로  1510

 

 

2014-06-10_18;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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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경기관광공사 관광주간 숭의전 연천여행 평화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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