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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가볼만한 곳 – 성호 이익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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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은 예로부터 서울이 가깝고 너른 평야와 해안을 끼고 있어 곡식과 물산이 풍부하고 사람이 모여들어 번성했던 곳입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 선생은 안산의 옛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죠.

만 리의 구름 산이 그림 같은데,
처음으로 개인 풍경은 우유보다 윤택하다.
사일(社日, 제사 지내고 모이는 날) 뒤에 새 술독을 여는 것이 사랑스럽다.
강동(江東)에만 반드시 아름다운 노어(盧魚)가 있지 않으리라.
바다가 가까우니 생선과 소금은 백월(百粤, 중국 광동)과 같고,
땅이 비옥하니 메벼와 찰벼는 삼오(三吳, 중국 강동)를 대적한다.
정녕하게 시험 삼아 전옹(田翁)을 위하여 말한다.
동쪽 집을 사려고 묻고자 하노니 허락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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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안산은 서해안의 공업도시이자 서울의 위성도시로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안산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 성호 이익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곳입니다. 그가 평생을 칩거하며 학문에 정진했던 곳이자 그의 묘소가 있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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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의 묘를 찾았습니다. 묘소는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성호기념관 근처에 있습니다. 수인 산업 도로가 바라보이는 구릉 상에 위치하고 있어 묘소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묘소 오른편으로는 사당이 있습니다.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묘역은 오랫동안 직계 후손이 없어 방치되어 있었으나 1967년 5월 이익 추모회에 의해 정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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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 선생은 조선 문화의 중흥기인 18세기 영조대의 재야 지식인으로서 실학 사상 형성기의 대표적 학자입니다. 흔히 실학의 기원을 말할 때 유형원, 정약용,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김정희, 최한기 등 많은 학자들의 이름이 거론됩니다만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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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역시 실학 형성기의 대표적인 학자이면서 자신의 친척이기도 했던 유형원과 교류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풍속, 자연, 역사, 문학, 철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의견을 제시하여, 가히 ‘성호학’이라 불릴 만한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형성하였으며 그의 학문은 안정복, 이중환 등 제자들에게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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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생은 생애 대부분을 관직에 나가지 않고 안산에 머물며 ‘백성을 살리자’는 뜻을 가지고 양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연구하고 후학들을 키우는데 전념했으며 수많은 저술들을 남겼는데 대표작 ‘성호사설(星湖僿說)’은 학문과 사물의 이치를 논하면서 제자들과의 질의문답한 내용을 모아 엮은 백과사전 같은 책이며 그 외에도 ‘성호집(星湖集)’, ‘성호선생전집(星湖先生全集)’, ‘성호질서(星湖疾書)’, 성호선생예식(星湖先生禮式)’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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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나 태양의 궤도, 춘분, 일식 등을 비롯한 서양의 천문, 역법들을 중국에서 수입된 한역본 서양 서적을 통해 습득한 서양의 과학지식들을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지도 제작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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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왕세자에 대한 엄격한 교육과 서얼에게도 길을 열어줄 것, 조상의 내력을 따지는 서경제도를 없애고 과거제와 천거제를 함께 사용하며, 군현마다 무관을 양성하는 학교를 두어 장교를 양성할 것과 중앙 관청의 통폐합, 화폐 유통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치 풍조의 근절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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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특히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으로 노비제도를 ‘천하의 악법’이라 규정하여 “노비를 대대로 천하게 전하는 것은 고금에 없던 일이다”라면서 노비 제도의 존속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더 나아가 나라를 좀먹는 여섯가지 폐단으로 노비제와 과거제, 벌열(閥閱), 교묘한 재주와 솜씨, 승려, 게으름뱅이라고 규정하는 개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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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성호 이익을 배출한 여주이씨 가문에 전해내려오는 청렴한 가풍입니다. 여주이씨 가문에는 ‘많은 돈을 모아 자손에게 전하려 하지 말라’는 천금물전이라는 가훈이 전하고 있는데 물신과 배금에 찌들고, 소위 성공을 위해서라면 아이들에게 권모와 술수마저 장려하고 가르치는 요즘의 야차같은 세태에 돈보다 대의를 추구하라 가르친 여주이씨 가문의 고결한 가풍이야말로 천박함이 도를 넘은 이 시대에 더욱 빛나는 가치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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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한 가풍 속에서 자라나 직접 농사를 지으며 ‘백성을 살리자’는 뜻을 가지고 학문에 정진했던 성호 이익의 높은 뜻을 기려봅니다. 실학은 17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조선 후기 사회에서 나타났던 새로운 사상으로 당시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성리학의 관념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며 경세치용과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학문 태도를 강조한 학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실학은 대개 주류가 아니거나 권력에서 벗어난 선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학풍이기에 끝내 주류가 되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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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역사에서 조선말기의 난맥과 종국에는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는 과정을 배우면서 아직 기회가 있었다고 믿고 싶은 17세기 당시 나타난 새로운 학풍인 실학이 성리학을 대신하여 조선의 주류 사상이 되고 그래서 실사구시의 학풍에 기반하여 부국강병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면 훗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극도 없었고 일찍 근대화의 길에 접어들어 오늘날 강대국이 되지 않았을까 한탄해보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에는 가정이 없는 것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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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 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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