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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 가볼만한 곳 – 민세 안재홍 선생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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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많은 남한의 명사들이 납북되어 갔습니다. 그 중에는 김규식 박사, 조소앙 선생 등과 같은 독립운동가들도 상당수 있었는데 민세 안재홍 선생도 그렇게 북으로 끌려간 독립운동가 중의 하나이죠. 민세 안재홍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시대의 선구자이며 해방 전후의 대표적인 언론인입니다. 일본 유학시절 학우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한 뒤 귀국 후에는 조선인자본 육성을 역설하여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하며 국산품 장려운동을 벌이다 투옥되었으며, 다시 1936년에는 임시정부와의 내통이 발각되어 복역하고,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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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중앙학교 학감, 조선일보 주필 및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교육과 언론을 통한 민족계몽과 독립사상고취에 헌신하였는데 선생은 투옥과 석방을 거듭하는 속에서도 우리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여 1930년대에 <조선상고사감>을 저술합니다. 그러나 조선상고사감은 일제강점기에는 발행하지 못하다가 광복 후 1947년 출판되었는데 그는 조선상고사감에서 단군으로부터 삼국시대까지의 한국사를 고조선 사회의 발전과정으로 보고 일제 학자들의 고대 한반도에 있어서 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이중성을 반박하였으며 한국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 언어학적인 방법과 사회 발전 단계설을 적극 도입하여 민족주의 사학의 수준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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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직후 선생은 남한 단독정부수립에 반대하여 여운형 선생, 김규식 박사 등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벌였으며 미군정의 한인 최고책임자인 민정장관을 역임하고 1950년 평택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그러나 곧바로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그해 9월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고, 1965년 3월 1일 75세를 일기로 평양에서 별세하였습니다. 그후 우리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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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 646번지에는 민세 안재홍 선생의 생가가 있습니다. 선생의 생가로 가는 길은 이제는 중국으로 가는 관문인 국제도시로 면모를 일신한 평택시에도 아직 이리 시골스런 곳이 있었나 싶을만큼 옛날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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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긴가만가 하기를 몇번이나 거듭하면서 이윽고 도착한 생가 앞은 원래 궁벽한 곳인데다 마침 택지개발이 한창인지라 사람들이 떠난 폐가도 많고 버려진 논밭에 잡풀이 우거져서 더욱 황량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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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렵게 골목을 찾아 들어서면 전형적인 시골동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택지개발 때문에 사람들이 떠난 집들이 많아 인기척은 느끼기 어려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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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특별한 국경일이나 날이 아닌데도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예외없이 집집마다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무슨 사연인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결국 알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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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조금 올라가면 곧 생가가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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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옆으로 커다란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고 대문 앞의 안내문과 표지석이 이 곳이 선생의 생가임을 알려주고 있네요. 경기도 기념물 제13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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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이곳에서 1891년 12월 30일 부친 안윤섭과 모친 남양 홍씨 사이의 8남매 가운데 2남으로 출생하였습니다. 1897년부터 한학을 배웠고 1907년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생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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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대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안재홍 선생의 후손들이 지금도 생활하는 곳이기에 방문시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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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는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와 협문 등으로 되어 있는데 들어서자 마자 이쁘다라는 탄성이 터져나올 정도로 고즈넉하고 단아한 우리네 옛집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관람객들을 위해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벤치도 놓여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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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람이 생활하는 안채는 초가로 지붕을 엮었고 기와집인 사랑채는 옛 양반집 사랑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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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랑채 앞이 바로 담일 정도로 대단히 협소한데 아마도 선생이 생활하던 당시에는 담이 없었거나 훨씬 더 뒤쪽으로 쳐져 있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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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번 탄성이 나온 뒤꼍입니다. 비오는 날 안채의 뒷창문을 열고 비가 내리는 뒤곁을 바라본다거나 아니면 아침에 일어나 안채의 뒷창문을 열고 뒤곁에 비치는 햇살을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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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꼍을 지나 밖으로 통하는 뒷문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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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이 집안을 돌아다니는게 못마땅했던지 집에서 기르는 멍멍이가 너 뭐냐고 묻는듯 노려보네요. 나가라고 짖기 전에 그렇게 잠시동안 머물다가 서둘러 들어올 때처럼 조용히 발길을 돌려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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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 안재홍 선생의 생가는 우리 옛날집의 아름다움과 소박함이 오롯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고즈넉한 곳이구요. 아마도 선생께서는 억지로 끌려간 평양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분명 이곳을 그리워하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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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쉬운 것은 사랑채에 걸린 찢어진 프랭카드나 대문 옆에 놓여있는 빛바랜 팜프렛 등에서 이곳에 사람이 길 자주 찾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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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선생의 생가가 있는 마을 주변은 아파트와 현대식 빌딩들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도 기념물인 이곳이 없어질리는 없을 것입니다만 지금의 고즈넉함을 넘어 고적해지지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한적해서 외로운 것보다 번잡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갖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 것이 더욱 외로운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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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 특히 그중에서도 현재 우리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은혜를 입은 우리 현대사의 인물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선생의 생가를 떠나며 갖는 내 염려가 터무니없는 기우만도 아니라는 것이 더욱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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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 안재홍 선생 생가
경기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 64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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