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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볼만한곳 화성 융건릉 소나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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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융. 건릉은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216호로

소나무 숲길이 좋아 주말 나들이로 가족, 연인들의 걸음이 많은 곳이다.

조선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장조)와 부인 헌경왕후 홍씨를 합장한 무덤(융릉) 과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인 건릉이 나란히 있다.

아버지 영조에 의해 1762년 뒤주 속에서 죽은 사도세자는 배봉산 아래 언덕에 예장되었으나

1789년 10월 아들 정조에 의해 현 위치로 이장되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평생을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정조는

즉위하자 바로 사도세자의 이름을 장현세자로 높이고

묘소 이름도 영우원으로 바꾼다.   아버지를 위해 조성했다는  융릉의 소나무숲은

울창하여 햇빛이 화사하고 포근한 날에는

그 아래에서 쉬어가는 분들을  만날 수 있다.   영화 <사도> 덕분에 융릉을 찾는 걸음이 늘었다고 한다

 

융릉12

수령 140년 된 향나무가 양쪽으로 서 있는 입구를 지나면 융릉. 건릉 역사문화관을 만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고 가장 먼저 들러 사도세자의 아들로 재위 24년간 탕평책을 실시하거나 규장각을 두어

학문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와 융.건릉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얻었다.

돌로 만든 방인 석실로 조성한 조선왕릉의 조성 과정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융릉10

융릉 조성과정외에도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이하여 궁궐을 떠나 융릉(현릉원) 과

수원 화성을 행차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었다

1776년에 왕위에 오른 정조는 자신의 정통성이 사도세자에게 있음을 밝히고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한다.

이외에도 규장각을 설치하여 문화 정치를 펼치고 1796년에 과학적 기술로 만든 신도시인 수원화성도 건립했다.

융.건릉 역사문화관에서 조선왕릉의 위치도 알 수 있어 하나씩 찾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융릉1

입구에서 부터 만난 소나무 숲길은 완만하고 융릉, 건릉을 찾아 가는 내내 만날 수 있어 힐링 산책로처럼 느껴진다.

근처에 있는 오산 물향기수목원을 먼저 걸은 뒤 찾아도 힘든 줄 모르겠다

 

 

융릉2

여름에 찾았을 때 시원한 소나무 숲에서 돗자리를 펼치고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던 곳이다.

정조가 아버지를 위해 조성했다는 소나무 숲이 힐링 쉼터로 자리를 잡았다.

간혹 만나게 되는 느티나무도 멋스럽다

완만한 산책로이기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 아이들과 찾은 가족이 많다

융릉17

입구에서 500m 정도 걸으니 융릉 앞으로 있는 곤신지를 만나게 된다.     1790년에 조성된 원형 연못이다.

당시는 연못이 각진 네모였는데 정조는 묘를 이장하면서 아버지 사도세자가 여의주를 몰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기를 바라며 여의주를 형상화한 연못을 만들었다고 하니 효성스러운  마음이 전해진다.

융릉3

융릉은 노론과 아버지인 영조와의 갈등으로 인해  뒤주에 갇혀 죽게 된 사도세자(장조) 와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다

영조는 세자가 죽은 후에 “사도” 라는 이름을 내렸고,  묘지명을 직접 작성하여 죽음을 애도하였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 했던 정조의 마음이 만들어 낸 곳으로

조선왕릉 중에 가장 아름답게 조성되었다고 한다

홍살문을 지나면 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로 정자각, 비각, 재실이 있다

융릉19

사도세자의 무덤은 현재의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 지역에 조성하였으나 정조가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 제22대 왕으로 즉위하자 ‘장헌세자’ 로 올리고  1789년에 현 지역인 경기도 화성시로 천장하면서

현릉원으로 고치고 병풍석과  석물을 새롭게 조성하였다.

무덤 이름인 ‘현릉원’ 은 ‘낳아주고 길러주신 현부에게 융숭하게 보답한다’ 는 뜻이 담겨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 (참도)에  얇고 넓적한 돌을 깔아놓았다

 

융릉22

정조와 혜경궁 홍씨는 회갑연을 열기 전날 융릉을 찾아 목놓아 울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버지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는 아들의 마음이 전해진다

뒤주에 갇힌 답답한 마음을 풀어드리기 위해 능을 정자각과 직선거리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융릉25

봉분 아랫부분은 12지신당 대신 목단과 연꽃 문양이 양각된 12면의 병풍석이 감싸고

석물로는 상석, 망주석, 석호, 문인석, 석마 등이 배치되어 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언한지 2년이 지난 1899년에 장헌세자를 왕을 일컫는 ‘장조’ 로 현릉원을 ‘융릉’ 으로 높였다

이듬해 1900년에 고종이 직접 융릉 비석(표석) 을 썼다.

비각 안에는 1789년에 세운 현륭원 표석과 1900년에 세운 융릉 표석이 있다

 

 

융릉6
융릉에서 건릉으로 가는  숲길에서도 초록이 짙은 소나무를 만날 수 있어 걸음이 가벼워진다

힐링 산책로이기에 혼자 걸어도 신난다

융릉7

건릉 입구는 소나무 보다 상수리나무가 더 많이 보인다.

빽빽한 나무 아래에서 귀여운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연을 벗 삼아  편안한 산책을 즐길 수 있어 아이들과 나온 가족,

데이트 즐기는 연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상수리나무 사이로 있는 숲길을 얼마 걷지 않아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가 잠들어 있는 건릉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융릉에서 도보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어 죽어서라도 아버지 곁에 머물고 싶어하는

아들의 애처로운 마음이 전해진다.

융릉8

건릉은 조선 제22대 정조와 부인 효의왕후 김씨를 합장한 무덤이다.

봉분을 병풍석 없이 난간석으로 둘러싼 것 외에는 규모와 형식이 융릉과 비슷하다.

1776년 손자인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찾아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영조는

효성 깊은 손자라는 뜻인 “효손” 이라는 글자를 새긴 것을

정조에게 내려주고 한 달 뒤에 세상을 떠난다.

정조는 1776년에 할아버지인 영조가 돌아가시자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원릉을 조성하였다

원릉 비각에는 정조가 직접 쓴 표석이 남아 있다

융릉35

융릉을 시작으로 건릉 앞 상수리나무 숲길을 지나 매표소가 있는 입구로 나왔다

소나무 덕분에 겨울에 초록물결을 만날 수 있어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매표소에 말을 하면 휠체어 및 유모차를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

완만한 숲길이라 몸이 불편하신 분과 함께 하기에 좋다

2월 ~ 5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관람요금은 대인 1,000원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무일이다 (입장마감시간 16; 30분 )

미리 신청을 하면 왕릉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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