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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광복절 가볼만한곳 – 양평 몽양 여운형 생가 &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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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양기념관 입구

가을로 들어선다는 문턱인 입추 절기가 지났건만

아직도 폭염이 계속되고 있네요.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815 광복절을 맞아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인 3.1 운동을 기획한 선구적 실천가인 <몽양 여운형> 선생의

기념관과 생가를 돌아보았던 글을 써보려 합니다.

아마도 3.1운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유관순 열사 이겠지만

몽양 여운형 선생은

우리 대한의 독립을 위해 정말 열심히 싸운 혁명가였더군요.. 그 분의 생애를 다시 돌아보면서 나라를 위해

 애국한다는것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것 같아요. ^^

몽양 기념관 관람요금 및 휴관일 안내 표지판

양평 양서면 몽양길에 위치한 여운형 생가. 기념관은

한적한 양평 시골에 위치하고 있어요.

입장료는 단돈 천원으로 상당히 저렴하며 매주 월요일 그리고 명절에는 휴무라고 합니다.

몽양기념관을 관람중인 시민들

몽양기념관을 관람중인 아이들

양평 3.1 독립 운동가 24인 중에 한분인 몽양 여운형 선생은

3.1 운동의 숨은 주역이라고 합니다.

현재 몽양기념관은 개관 4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특별전시를 하고 있었어요.

여운형 선생 소개

나는 독립운동이 내 평생의 사업이다.

독립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우리가 건설하려는 새 나라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이다.

이 민주공화국은 조선 민족의 절대적 요구일뿐 아니라 세계 대세가 요구하는 것이다.

싸우지 아니하고는 인류가 누릴 자유와 평화를 못 얻을것인가?

일본 인사들은 깊이 반성하라

독립선언서

1919년 11월 27일 도쿄제국호텔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몽양 선생의 웅변을 듣고 감동한

일본 사람들은 박수갈채가 계속되고 여운형 선생의 웅변에 감동한

일부 지도자들은 몽양 선생을 환영하는 만찬을 열기도 했다고 합니다.

도쿄 독립선언!!!

몽양 선생을 회유하려다가 자신들의 수도를 조선 독립의 선전장으로 만들어준 꼴이 된 일본 정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결국 의회를 해산하고 새로 총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합니다.

몽양기념관 전시품들

파리 평화회의 조선 대표단으로 그리고 3.1 운동의 불씨를 지핀 신한청년당의

당원으로 활약을 했던 몽양 여운형 선생은

세계 혁명가들과도 교류를 했던 조선의 거인이었다 합니다.

건국을 준비했던 선경지명도 뛰어난

전략가 였다고 하는데.. 이런 양심적인 지도자가 건국의 첫 원수가

되었더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 해 봅니다..

안타깝게도 12차례 테러에 시달렸으며 결국 1947년 극우 세력의 하수인이 쓴 총탄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합니다..ㅠ.ㅠ

참으로 안타깝네요.

기념관 내부

기념관 내부

기념관 내부

몽양 여운형 선생의 일대기를 다큐로 볼 수 있는 디지털실도 있으며,

함께 사진에 담아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찍은 사진은 무료로 출력도 된다고 하고요~

3.1 운동 독립운동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이벤트도 현재 진행 중이랍니다. ^^

여운형 선생의 생가 풍경

여운형 선생의 생가 풍경

몽양기념관 위로 올라가면 여운형 선생의 생가도 보실 수 있답니다.

따뜻한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뒤에는 산이 있는게

풍수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지만 상당히 풍수가 좋아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선 숙종 41년 함양 여씨가 처음 입향하면서 이집을 지은 후

‘영회암’ 이라는 택호를 붙이고 그 옆에

기문을 두어 자손들로 하여금 선조의 유훈을 실천케 하니 영회암기의 첫 문장이 바로

“영원히 이름과 명예를 지키라”

2010년 문화재 발굴과 인근 촌로 및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2011년 옛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였다 합니다. ^^

여운형 선생의 생가

여운형 선생의 생가

이곳 양평 함양 여씨 생가는 1886년 부터 22세가 되는 1908년 까지

산 곳이며, 해방 전후하여 1940년대 초중반에 종종 내려와 지내셨던 곳이라고 합니다.

6.25때 소실 되었다가 2001년 양평 군민들의 노력으로 생가 터가 정비되고

10년만인 2011년 몽양 선생 서거 64년에 생가가 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양평 군민들의 노력 덕분에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1등급)에 추서 되셨다 합니다.

여운형 선생의 생가

​몽양 기념관과 생가를 통해 유품과 자료 전시를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잘 꾸며져 있었어요.

날씨가 무덥지만 산과 바다로 놀러가는것도 좋지만

815를 맞아 나라를 위해 거룩하게 희생하신 독립 유공자의 삶도 돌아보는것도 큰 의미가 있을듯 합니다.

여운형 선생의 생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해방과 건국을 위해 무던히 애쓰셨던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는 새롭게 복원되어 그런지 상당히 깨끗하고 정갈한 모습이었어요.

그분은 이제 없지만 그분의 숭고한 정신과 발자취를 돌아본다는게

상당히 의미 있었지 않나 싶네요. ^^

여운형 선생의 말이 적혀있는 바위

1945년 11월 12일 우익성향의 한 단체가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 지도자’를

묻는 해방 이후 첫 여론조사에서 최고 득표를 받았다는

몽양 여운형 선생~~ 늘 테러의 위협속에서 살았지만 가족들에게 조차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었던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만들면서 통일 정부의 수반으로 몽양 여운형을

염두에 두었을 정도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1947년에 12번째 테러에서 권총 피격으로 62세의 나이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ㅠ.ㅠ

여운형기념관의 비석

http://www.mongyan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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