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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여운형을 기억하며 ‘몽양기념관’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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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신원역’에서 내려 10 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몽양 여운형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신원역에서부터 걸어서 가다 보면 몽양의 어록을 새긴 바위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 하나 되새겨  읽어보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자주독립과 이념으로 갈려진 남북의 상황, 민주주의에 대한  몽양의 큰 뜻을 이해할 수 있는데요. 기념관을 먼저 둘러보고 나서 나와면서 걸어도 좋고, 먼저 걸어가면서 어록을 찬찬히 읽고 기념관을 둘러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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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자이자 언론인이었고, 교육자였던, 몽양 여운형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1년 11월 27일 개관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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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선생이 1886년 출생해서 1908년 서울로 이사가기 전까지 이곳 양평군 신원리에서 살았다고 하는데요. 6.25 전쟁 중 소실되었다고 알려진 그 생가터도 2001년 양평 군민들의 노력으로 재정비 되어 개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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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무현 정부 당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것을 계기로 서거 64주년인 2011년 생가 복원과 함께 건립된 기념관이ㅂ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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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방문객은 미리 신청해 두면 해설사님의 해설도 들을 수 있는데요, 몽양 선생이 서거 당시 입고 있던 혈의, 장례식에 사용된 만장, 계동 집에 있던 책상, Death mask, 2008년 추서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의 유품과 선생의 일대기를 해설과 함께 들어보면 훨씬 더 이해가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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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방문했던 날은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방문이 많았습니다. 독립운동 활동이나 영향력 면에서  백범 못지 않게 많은 활동을 한 몽양선생 인데 그동안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 역사적 평가에서 소외되어 있던 인물이 바로  몽양 여운형이었습니다.

몽양은, 넉넉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노비를 해방시키고 도산 안창호의 연설에 감화를 받아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요.
상해 임시정부 시절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했으며 조선중앙일보 취임 당시 베를린 올림픽 일장기 사건으로 신문 폐간을 겪기도 했습니다. 1945년 해방조국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며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여운형은 미,소를 설득해 통일정부를 수립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미 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 좌우합작과 남북협상론을 주장했던 몽양. 해방 2년만에 그가 암살 당해 죽은 것은, 우리 민족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교육가로서, 웅변가로서, 외교활동, 건국 준비활동 등 다양한 활동과 업적을 생각해 보며 … 기념관을 방문한 청소년들은 과거의 역사,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느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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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위에 무덤이 있어서 저는 몽양 선생의 무덤인가 했는데 몽양 선생의 유해는 현재 서울 우이동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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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이 있는 곳에서 내려다 본 기념관과 생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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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다복한 가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몽양 선생의 자녀들은 모두 북한에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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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이 덩그라니 집만 복원이 되어 있습니다.  암살 당해 돌아가신 후 장례식에는 60만 인파가 몰려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합니다.  사상가로서 사회주의자이기 이전에 몽양 여운형은 이념으로 남북이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민족주의자였습니다.

“해방된 오늘, 지주와 자본가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손을 들어보시오.
지식인, 사무원, 소시민만으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손을 들어 보시오.
농민, 노동자들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우기는 사람 있으면 어디 한번 손을 들어보시오.
손을 드는 사람이 없군요. 그렇습니다. 일제 통치 기간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반역적 죄악을 저지른 극소수 친일파들을 제외하고 우리는 다 같이 손을 잡고 건국사업에 매진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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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우익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일 청산을 제대로 못했던 역사가 지난 반세기 우리 근현대사 정리를 엉망인 상태로 두었다고 생각하는데…솔직히 처음 ‘몽양기념관’을 갔을 때 깜짝 놀랐었습니다.
몽양의 삶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전시관의 존재 자체도 의외였는데 전시관 건물도 훌륭하고 전시 내용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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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주변으로 신원역까지 찬찬히 걷기에 좋은 산책길이 있습니다.  양평 지나실 일 있을 때 한번 들러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몽양기념관: 031-772-2411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몽양길 66
구)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623-2
대중교통 이용 시:  중앙선 <신원역>에서 내려 도보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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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몽양기념관 몽양생가터 몽양여운형 양평가볼만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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