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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낙원역사공원에서 안성의 문화재와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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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선 곳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을 때 버스를 타고 지나는 풍경은 첫인상이 됩니다. 어찌어찌 작년부터 1년에 한 두 번씩 방문하게 되었던 안성시는 작지만 옛정취가 살아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가보고 싶어지더라구요. 작년 가족여행으로 선택한 안성팝랜드와 광활한 보리밭은 우리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어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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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안성에 또 좋은 곳이 어디가 있을까? 혼자서 지도를 쳐다보는 일이 많아졌답니다. 가끔 아주 가끔 혼자서 훌쩍 안성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시골스럽고 아무리 다녀 봐도 그리 넓지 않아서 길을 잃어버릴 것 같지 않은 안성이기에 무작정 한번 쏘다녀 보자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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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한경대학교와 안성시장을 지나면 안성1동주민센터 인근에 낙원역사공원이 있더라구요. 역사공원이면 뭐가 있을까? 하고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일단 공원이니 공기도 좋을 것 같고 옛스러운 비석들과 문화재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안성엔 어떤 문화재가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해서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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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역사공원은 안성시내에 있어서 찾기도 수얼하고 바둑판처럼 꼭 계획해서 만든 것처럼 반듯한 길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찾기도 심심풀이로 돌아다닐만 하더라구요. 길치인 저도 쉽게 잘 찾아간 곳이어서 한번쯤 안성을 가셨다면 산책삼아 한번 둘러보셔도 좋을 만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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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한복판에 있는 문인석은 왠지 어느 높으신 양반의 무덤에나 있어야할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돌로 만들어진 범상치 않은 물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성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빨간 벽돌로 일식기와를 얹은 자로 잰 듯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안성1동주민센터와 같은 건물이 간혹 눈에 띄고 좀 무언가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건물들이 독특하다는 생각이든 답니다. 분명 문화재는 아닌 듯 하고 역사적 가치가 있어 보일 정도로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모양도 독특하고 높지 않은 건물들 사이에 네모반듯하게 선을 그어놓은 듯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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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관노 이주 효자정문 비는 내용을 읽어보니 안성에 이런 효자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신분제가 엄격했던 시대에 노비에게 내린 비석이라니 당시 시대상을 추정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하네요.

이주(李注)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면 4살 때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언제나 좋은 것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봉양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손가락을 잘라 약에 타서 먹였다고 하네요. 효자문은 1612년에 효자정문을 하사받았는데 지금은 비석만 남아있다고 적혀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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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다른 비석들도 즐비한데요. 예전에 비석치기라는 전통놀이가 있었던 것 혹시 기억하시나요. 어릴 때 발 위에 납작한 돌을 위에 올려서 상대의 비석을 쓰러트리는 놀이인데요. 이 놀이의 유래도 재미있답니다.

공덕비 송덕비 이런 종류의 비석들은 지방유수(현감,사또) 등의 치적을 알리기 위해 세웠는데요. 이 비석들을 백성들이 바라다 볼 때 그냥 치적만을 내세우고 자신들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공덕비를 보면 돌로 공덕비를 맞춰서 쓰러트리는 놀이 즉, 백성들의 소심한 복수^^를 했던 것이 바로 비석치기 놀이의 시작이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공덕비가 재대로 남아있는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곳의 공덕비는 괜찮은걸 보니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들이 많았었나 봅니다. 비석에 세긴 문양도 각각 달라서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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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인공개울도 만들어서 물이 흐르게 하고 정자도 지어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근처에 놀이터도 있고 정자에 앉아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바라다 보며 엄마들끼리 수다떨기 좋은 장소인 듯 하더라구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명항선생의 토적 송공비가 있었는데 이 비석은 특징이 안성의 군관민이 돈을 내고 조현명이라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지은 비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길래 시민들이 돈을 내서 오명항선생의 업적을 기리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내용을 찾아보니 조선후기의 문인이었던 오명항(1673 ~ 1728)선생의 이야기가 안성에 전해내려오고 있답니다. 때는 조선영조 4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인좌의 난이 발발했을 당시 누구도 두려워서 이인좌를 치러가겠다고 나서는 신하가 없었는데 병조판서였던 오명항이 임금님께서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음을 택하는 법이오니 신이 나가서 막아보겠습니다.” 라고 말했고 임금은 즉석에서 ‘사로도순무사’로 제수하고 손수 상방검까지 하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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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 일당이 안성을 급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 오명항이 이 안성에서 이인좌를 사로잡고 적을 모두 평정하였다고 합니다. 이 비는 오명항 선생이 아니었으면 이인좌의 난으로 안성이 피해를 입었을 텐데 일찍 와서 이인좌 일당을 소탕함으로서 안성이 평안할 수 있었다고 하며 재물을 모으고 돌을 다듬어 이 비석을 세웠다고 하네요.

비석 뒤의 이름을 보니 사로도순무사 행병조판서 오명항, 종사관 홍문관 교리 박문수, 조현명 등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고 오명항 선생은 문무를 겸비하였고 귀신같은 계략으로 안성을 평안하게 했다고 되어 있더라구요. 우리가 TV드라마로 많이 알고 있던 암행어사 박문수와 같은 동시대 사람으로 안성시민들의 칭송을 받는 오명항 선생을 이곳 안성시 낙산역사공원에서 알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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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조광배도 놓여있는데요 안성시 죽산면에서 출토된 것을 이곳에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하네요. 또 바로 옆에는 석불좌상도 있는데요. 화강석 불상으로 비로자나불의 수인을 갖추고 결가부좌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 파손된 부분을 시멘트로 보강을 했다고는 하지만 작은 부처는 지권인 수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 손에 다른 손의 집게 손가락을 펴 세우고 다른 손으로는 그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는 모양인데요 이 수인은 법으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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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켠에는 안성장날이라는 작품을 쓴 소설가 이봉구작가의 고향이 바로 이곳 안성이라는 비석도 세워져 있고 안성장날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도 그림으로 그려져 있더라구요 안성이라는 도시 너른 들판과 어디로든 갈수 있을 것 같은 열린 세계라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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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에 문화재는 주위 풍경과 함께 무던하게 세월을 이기고 서있는 듯 한 느낌이 들고 잠깐의 산책이었지만 안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문인들이 많이 있고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된 곳이어서 옛정취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 바로 안성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안성을 다녀온다면 안성장날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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