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소개

여행지기들이 추천하는 경기도의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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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전문여행자 검단산이야기 속을 거닐다.
[추천여행기] 산악전문여행자 검단산이야기 속을 거닐다.

검단산은 하남시 동쪽에 위치한 높이 657m 그리 높지않은 숲이 울창한 야트막한 산이다.   백제한성시대 하남 위례성은  숭산, 진산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기운이 깃든 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까지  검단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온데간데 없다.   "검단"이란 산이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내려오고 있다.   때는 백제 위덕왕시대로 돌아간다.   "검단"이라는  신비한 도술을 부리던 도인이  이곳에 은거하며 도를 닦으며  살다 유유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설과  전국 각처에서 한강을  이용하여 한양으로 들어오는 물건에 대해서 이곳에서 검사를 받고 단속을 한다는 것에 유래되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다.   어쨌튼  어느것이든  그저 전설로만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확인 하기는 어렵다. 검단산 정상에 오르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양수리 와 하남시는 물론이고 멀리 서울은  물론 양평지역의 아름다운 자연가 팔당호풍광을 즐길수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또 한 수도권에서 가깝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산이라 할수있다. 특히 검단산의 풍광은 사시사철 각 계절마다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축복받은 산이기 때문에 산악저문 여행자인 이 여행자도 자주 찾는 산이면서  적극 권하고싶다. 검단산의 봄초록의 싱그러운 경치를 자아내고 특이 꽃이 많이 피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능선을 타고 오르다보면  산벚꽃과 철쭉꽃 각양 각색의 봄이 오고가는 등산여행자들을 반겨주고있다.  검단산의  여름은 울창한 숲을 가진 주변과 시원한 계곡에서 조용하고 느긋한 산행을 즐길수있는 곳이다.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단풍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워 황홀경에 빠져든다.    특히 감단산의 진풍경은  능선 곳곳을 가득 덮은 억새풀의 풍경들이 출렁거리는 파도처럼 보이는 그림같은 풍경이다.    검단산에 겨울이 오면  울창한 나무숲들이  새하얀 눈꽃 나무들로  옷을 바꿔입은 모습은 정말 검단산에  올라 오지 않으면 절대 볼수없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검단산이야기 한가지 하남시의 전통문화 공부하다.  에 전해오는 민속이야기를 빌리자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내려오고있다. 검단선사는 매일 해가 중천에 뜨면 소년과 만나서 바둑 두는 것을 큰 낙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은 약속보다 늦게 힘없이 산에 올라와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간호를 하다가 늦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동네 의원 말씀이 어머니의 병은 대추하고 곶감이 약이래요.  그 두 가지를 한꺼번 에 넣고 달여 먹으면 병이 낫는데요.   그래서 그 것을 구하려 내일 길을 떠나려고 해요.  북쪽으로 멀리가면 그 곳은 가을일 테니까 오늘 당장  밤을 세워서라도 부지런히 가서 구해 와야 지요.  ” 자신이 도인인 줄 모르는 이 소년과 혈육 이상으로 정이 든 검단 선사는 자신의 능력으로 병을 고칠 수도 있었으나, 소년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면 순수한 심성을 잃게 될까봐,  순수한 심성을 잃게 될까봐,  자신이 6일 후에 약을 구해 오겠다고 약속하고 어머니를 극진히 간호하라고 부탁한 후 길을 떠났다. 감격에 겨워 흐느끼는 소년을 뒤로 하고 검단 선사는 길을 떠났으나, 소년의 어머니 병은 날로 더해가 검단 선사가 떠난 지 닷새 째 되는 날 운명을 하고 말았다.    한편 검단 선사는 축지법을 써서 묘향산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대추와 곶감을 구해 가지고 약속된 날짜에 돌아왔으나  소년은 소식이 없었다.   부락에 내려가 수소문을 하니 어머니를 장사지낸 소년은 울면서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이다.   검단선사는 자신의 깨우침이 아직도 미치지 못함에 무상함을 느끼며, 생각에 잠긴 채 힘없이 산으로  돌아와 그 곳에 절을 짓고 절 뒷산에 올라 산천을 바라보며 지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쌍한 소년 생각에 능선을 따라 하염없이 동쪽으로 길을 가다 해질녘에 닿은 곳이 지금의 검단산이고, 이 곳에서 검단선사는  작은 암자를 짓고 평생 도를 닦다 돌아가시니, 이 산의 이름을 검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절터가 있고 쌀이 나왔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검단산을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장수탑과 통일기원탑등 2개의 탑을 만날수있다.   이 탑들은 돌로 쌓은 돌탑 으로서 오가는 사람들이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하나씩 쌓은 것이 하나이고,  나라가 통일되어 온국민이 잘사는 마음에서 쌓은 통일기원탑이 또  있다. 이 나무테크 계단을 오르면 검단산 정상으로 다다르게 된다.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물향기 와 더불어 흙향기가 진하게 코를 자극하고 향기롭게 느껴온다.    나는 역시 이 숲속에 있기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정상 아무데나 걸처 앉아  고요하게 조용히 고요히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본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소리처보자.     "나는 자연인"이다.   라고... 검단산 정상에 서면 팔달댐과 두물머리가 보이고 그 건너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조망된다.  그 강을 양수대교가 연결해서 나란이 중미산,유명산,용문산,백운산등의 경기 명산들이 눈앞에 펼처진다. 검단산을 힘차게 오르다보면 숨이 턱에 막힐 중턱에 오르면 마치 산림욕장에 왔을법한 착각이 들 정도로  울창한 소나무 군락지를 만날수있다.  소나무, 상수리나무,밤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훌룡한 산림욕도 즐길수 있다. 여기에  좀더 오르다 보면 확 트인 전망과 함께 한쪽에 곱돌 약수터를 만나게된다.   이런 곱돌 약수터를 만나거든  잠시 배낭을 벗고 시어가자.   흘린땀은 씻고,  산아래 하남시를 바라보자.   그리고  물맛좋은 약수를 수통가득 담아 올라가자. 검단산 등산코스안내:   1,코스:  산곡초교 등산로 :  산곡 초등학교>> 통일기원돌탑>>정상 (2,6km. 소요시간 1시간 30분,   2코스:현충탑등산로: 창우동(에니메이션고)>>곱돌 약수터>>정상 (3,1km, 소요시간 1시간 40분,  3코스: 유길준 묘 등산로: 창우동>>유길준묘>>전망바위>>정상 (3,5km, 소요시간 1시간 50분,   4코스: 아랫배알미등산로: 아랫배알미>>감시초소>>정상( 2,1km, 소요시간 1시간 20분,  5코스 : 윗배알미 등산로 : 송전탑>>삼거리>>정상 (3,5km, 소요시간 1시간 40분 ) 검단산 가는길 : 외곽순환고속 타고 중부고속도로만남의 광장 지나 하남IC로 빠져서 광주방향으로 가다가 은고개 정상에서 올라가는방법이 있으며 서울에서 가는 또 한가지는 방법은 88올림픽 도로 를 타고 미사리를 지나 팔당교에서 우회전 지하차도 위 신호등에서 좌회전해서 골목을 지나 올라가면 된다. 주변 가볼만한곳: 미사리조정경기장,구산성지,팔당댐,확트인 한강을 바라보며 추억의 통기타 가수들의 라이브를 들으며 낭만적인 밤을 보낼수있는 미사리카페촌이 있다. 주변먹거리: 검단산주변엔 각가지 종류의 음식점들이 들어차있어 정갈하고 저렴한 먹거리가 충분히 있다.  특히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다는 장어구이가 좋다.    거기다가  구수한 보리밥, 산행후 시워한 막걸리한잔과 더불어 파전, 도토리묵 으로 등산여행을 끝마치면 어떨까.

작성자작성일2011-07-08 18:38:54

[수원] 비오는날 산책하는 즐거움 - 캠퍼스 거닐기
[추천여행기] [수원] 비오는날 산책하는 즐거움 - 캠퍼스 거닐기

  장마철,  집안에만 있기 아쉽다면 가까운 캠퍼스로 산책을 나서보자.  산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입안에서 맴돌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연수 작가의 책 제목이다. 책속에서 산책의 즐거움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산책에서 얻는것은 생각보다 많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초록을 만날 수 있는 곳 가까운 캠퍼스로 나서보자.  걷기여행의 열풍이라고 할만큼 각 지자제에서 둘레길을 만들고 있는데, 멀리 떠나기에 망설여진다면, 가까운 캠퍼스를 거닐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비오는 날 슬리퍼나  유행하는 장화를 신고 예쁜 우산 하나 받쳐들고 걷는 즐거움을 즐겨보자.  초록은 더 싱그럽게 변신하고, 그동안 보아 온 세상이 한결 깨끗하게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웅덩이를 만나면 모른척 아이같이 첨벙하고 지나치기도 하면서... 카페서 커피한잔의 여유 누리기 카페에 앉아 빗방울 떨어지는 처마 바라보며 커피한잔, 바리스타가 친절하게 내려주는 커피향을 마시며 적정한 농도를 자랑하는 드립커피 한모금, 서비스로 나온 천연재료로 만든 사과쿠키, 고구마쿠키 맞보기, 비법좀 알려주세요했더니 테스트중이라며 살짝 마무리하는 센스. 곧이어 만나기로 한 사람이 모이자. 조용했던 카페가 시끌시끌 웃음으로 채워지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이제 밖으로 나가볼까!  * 카페 가배두림 아주대점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43-13 전화 : 031-215-4538  www.coffeeofdream.com 아주대학교 산책 도서관을 지나 올라간다. 20년이 되어가는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공기가 신선하다. 비에 젖어 선명해진 나무와 촉촉한 대지가 내뿜는 신선함을 호흡한다. 나무계단을 오르고, 에스자형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삼십분이 훌쩍, 배꼽시계가 속삭인다. 대학가 답게 싸고 먹을거리가 많다. 오늘은 비오는 날  '태화장'으로 간다. 수육을 시킨다.  수육한접시가 차려지고 국수를 넣은 설렁탕이 나온다.  먼저 상추에 수육한점, 부추, 기호에 따라 마늘, 양파, 쌈장을 얹혀 싸서 먹는다.  입안가득 부드러운 고기가 씹히고 야채와 어우러져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난다.  설렁탕에 원하는 대로 간을 한다. 지칠 즈음 맛집탐방으로 끝내는 비오는날 대학가 산책은 생각보다 저렴하면서도 즐거운 하루를 선사한다. 자 떠나 볼까.  * 태화장(아주대) :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89-11, 전화 : 031-213-6998   수육백반 : 7000원, 돼지국밥 : 6000, 장국밥 : 5000원

작성자bok작성일2011-07-07 14:05:34

[한국민속촌]여행후기
[나의여행기] [한국민속촌]여행후기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도 될것이고 우리 문화의 소중함도 일깨워 주고자 한국민속촌을 방문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물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두딸은 처음보는 절구며 초가집이며 아름다운 전각이며 그네를 보면서 마냥 신기해하면서도 행복해 하는것 같았다 전통혼례식도 관람하고 말도 타보고 돌다리도 건너보면서 아이들은 과거로의 여행을 해본다.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과 풍광을 벗삼아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다^^ 주입식 공부로 정서가 메말라가는 아이들에게 민속촌 여행은 정말 가뭄의 단비처럼 좋은 경험이 되었다^^

작성자작성일2011-07-03 15:04:41

산악전문여행자의 경기 과천 관악산 이야기 속을 거닐다.
[추천여행기] 산악전문여행자의 경기 과천 관악산 이야기 속을 거닐다.

드디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본격적인 여름이다.  매년 이맘때 쯤이면 누구나 할것 없이 출렁이는 푸른바다를 상상하고 바다로 향하는 계획을 짠다.   그리고 설레임으로  휴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것이다.   올 여름엔 복잡한 바닷가 보다는 숲을 향해 떠나는 여행을 시도해 해보는 것이 어떨까.  자.  떠나자. 딱딱한 콘크리트 숲을 잠시 떠나서 울창한 숲이 있는  가까운  관악산으로 이야기가 있는 숲 여행을 떠나보자.    관악산은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과 안양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등 3개의 관할 관청이 관리하고  해발 629m의 바위가 많은  악산이다.   관악산은 수도권에 있으면서 지하철이든  버스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쉽다.   어느 곳에서 내리더라도 등산로로 진입하거나 접근성이 아주 좋다.   또 한 정상에 오르면 수도 서울을 한 눈에 바라볼수 있어서 많은 등산객들이 오고가는  수도권의 명산이다.    오르는 산길에선 사시사철 맑은계곡을 끼고 오를수있고, 울창한 숲속에선 항상 시원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산행할수 있다.   그 반대쪽으로는  인왕산과 서로 마주보고 있고,  그사이에서 수도권의 젖줄인 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관악산은 옛날부터 개성 송악산, 가평 화악산, 파주 감악산, 경기도 포천 운악산과 함께 경기도가 자랑하는 "오악"의 하나였다.  아름답고 빼어난 수십개의 바위 봉우리들이 많다.  그리고 관악산엔 민족의 영원을 기원하는 효령대군의 혼이 깃들어 있는 고찰 연주암이 버티어 있고,  우리 옛 선비들이 이곳에서 은은이 들리는 연주암 산사의 스님들이 두드리는 목탁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하던 곳이다.   그리고 관악산을 과천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관악산 초입에서 제일 처음 만나게 되는 문화유산이 있다.   그 곳은 경기도민속자료 제  9호로 지정 되어 있는  과천향교이다.  여기서 향교를 알아보자.   향교란 조선시대 중,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국가교육기관으로서 주로 양민 이상이면 공부할 수 있는 곳이다.    공부하는 내용은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이나 역사를 공부했었다.   과천향교는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조선 태조 7년에 관악산 기슭에 세워졌었는데 화제가 자주 발생하고 과거를 보는 사람도 없어 터가 좋지 않다고 여겼단다.   그래서  숙종 16년에 지금의 이곳으로  옮겼다 한다. 관악산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다음과 같은  설이 내려오고 있다. 붉은 바위봉우리들로 이루어진 관악산은  봉우리 정상이 마치 큰 바위 기둥을 세워놓은 듯한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 또는 "관악" 이라고 했다.   관악사의 옛 지도에서는 "관악"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악" 자체가 산을 뜻하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뒤에 "산"이라는 이름을 덧붙이지 않은 것이 관례였다 한다.  이렇듯 관악이라는 산이름이 붙은 것은 관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가 되었다.   처음의 산이름은 주위의 산들에서 으뜸으로 간다는 뜻이라 했다.   이렇듯 이름도 거창한 관악산에서 올여름엔 복잡한 해변은 잠시 비켜가 보자.  그대신 계곡으로 떠나 보아라.   울창한 숲이 있고 ,  계곡이 있는 여유로운 풍경을... 이곳이 진정 행복한 모습이지 않는가.  관악산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한가지 해보자.   때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장군 강감찬과 관악산에 얽인 전설은 이렇다.   관악산은 그 북쪽 기슭 낙성대에서 출생한 강감찬의 저설이 여러가지로 내려온다.  어느날 하늘의 벼락 방망이를 없애려 산에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벼락 방망이 대신 이 산의 칡을 모두 뿌리째 뽑아 없앴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작은 체구의 강감찬이지만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는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였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전설이 유래가 되었지만 지금의 관악산주변에서는 그 많던  칡넝굴이 남아있지 않고,  곳곳의 바위에 아기 발자국같은 타원형 발자국들이 보인다.  관악산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일찍이 고려 숙종 원년 김위제가 김위제가 "지리도참설"에 의하면 남경 천도를 건 의할때  삼각산 남쪽을 오덕구라 말하고, 그 남쪽의 관악은 모양이 날카로와 화덕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남쪽 봉우리 삼성산 중턱에 있는 삼막사에는 몽고 항쟁 때 적장 살리탑을 살해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삼층석탑이 지금도 남아 있다.   물론 관악산은 그보다 더 옛날에 이미 한강을 중심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의 삼국이 치열한 쟁탈전을 펼치고 당나라를 몰아낼 때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었다. 산을 향해 오르다보면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는 관악사지를 만나게된다.    관악사지는 1999년 10월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의 발굴조사에 의해 다섯 곳의 축대와 10여채의 건물이 있었던 조선시대 절터임을 확인하였다.   발굴조사 때 발굴된 유물로 확인한 결과 15세기 전반에  사찰 조영을 시작해서  15 세기 후반에  전체 사역이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8세기말 산사태로 인해서 폐사 되기까지  존재했었다 한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는 관악사지지만 옛날엔 명종 5년엔 (조선왕조실록) 관악사의 승려  "계은" 이 호랑이 가죽을 바쳐 상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아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관악사지 한쪽으로는  너비 6 .8m 높이 3m 의 암벽 하단부에 암각되어 있는 글씨가 있다.  이것은 당시 관악사에 있었던 승려나 불사에 참여했던 장인이나 시주자의 이름으로 추정 된다. 오르다보면 만나게 되는 문화재 경기도민속자료 제 104호 연주암 3층 석탑이 사찰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리고 산악전문 여행자가 추천하는 관악산 등산여행 코스가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교 서울대학교를 끼고 올라가는 글을 가장 많이 애용하는 코스다.    많은 사람들 이곳을 관악산 입구라 부르고 이곳에 관악산 관리사무소도 있으니 어찌보면  관악산의 입구가 되는 것인가...?    어쨌튼  여러 음식점과 매점이 즐비한 관악산 입구 주차장을 지나면 매표소가 나오는데 이곳을 통과하면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이 코스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관악산,  서쪽으로 삼성산이 차지하고 있는데 산행에 익숙한 사람은 암봉으로 이루어진 관악산을  종주하는 능선을 오르면 된다.     대부분의 등산인들은   하나의 산을 목적지로 삼고 산행을 시작하지만 산의 특성상 능선을 따라 서로 다른 이름의 산을 연계해서  산행하면 관악산을 또 다른 모습으로 둘러볼 수 있는 특별한 코스가 될 수가있다.    종주 코스의 백미는 관악산의 최고 암릉인 팔봉능선. 관악산 정상에서 삼성산 쪽으로 뻗은 여덟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팔봉 능선이다.    팔봉능선은  강원도  '설악산 공룡능선의 축소판'으로 착각할 정도로 이런 저런 모양으로 생긴  바윗길로도 유명하다.    많은 등산여행자들이   이런 팔봉능선을 경험하기 위해 멀리서 일부러 찾아올 정도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쨌튼  삼성산에 올라 무너미 고개로 하산해서  다시 팔봉능선을 타고 연주대까지 오르는 종주 코스는 다른 관악산 코스에 비해  좀더 많은 시간과 땀을 흘려야 하지만   다양한 볼거리와 스릴을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등산여행이 될수있다.  • 관악산 가는길 관악산 가는 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산행 기점을 중심으로 신림동, 과천, 안양등 다양하게 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정문 앞 관악산 공원 입구, 지하철 4호선 사당역, 지하철 4호선 과천역, 과천유원지, 시흥향교앞 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 등산코스:  등산코스는 안양,과천,관악구등 3개지역으로 나눌수 있는데 여기서는 과천지역에서 등산하는 코스를 기준한다.           1,관악산 입구(2.1km /40분) >2,호수공원 >3,제4야영장(1.8km / 40분) >4,삼막사(2.1km / 50분) >5,무너미고개 >6,팔봉능선(4.2km / 2시간) > 7,오봉능선/학바위능선(4km / 1시간 20분) >8,연주암(800m / 20분) >9,연주대(4.15km / 1시간 10분) >10.제4야영장 > 관악산 입구,    소요시간: 약 4시간 30분정도, 총 걷는 거리는 약 13,6km 이다.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주변 문화재:  1. 연주대, 2. 연주암 3층석탑, 3. 효령대군 영정, 4. 관악사지가 있다.  

작성자작성일2011-07-02 21:29:37

2011 경기국제보트쇼 다녀왔습니다.
[추천여행기] 2011 경기국제보트쇼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해양 축제, 2011 경기국제보트쇼 및 코리아매치컵 세계요트대회 다녀왔습니다.^^ 경기도의 남쪽, 안산 탄도항과 화성 전곡항,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항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축제는 경기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 중 하나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번글에서는 전곡항에서 열린 요트경기대회를 중심으로 경기국제보트쇼 행사 모습을 정리해 봅니다. 요트대회 행사장은 전곡항 쪽에 꾸며져 있습니다. 전곡항에는 마리나도 설치되어 있답니다. 전곡항의 좌우 방파제 중 경기중계를 하고 있는 왼쪽 방파제 모습입니다. 누에섬과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한 요트들의 모습이 아름답네요 :-) 경기 중인 요트들 모습을 주루룩 올려 보겠습니다. 요트들의 경기 모습이 제법 역동적이었습니다. 두 항구는 행사장에 마련된 두 가지 교통수단으로 연결되는데요. 전곡항과 탄도항을 연결하는 교통수단 두 가지 중 하나인 셔틀열차 모습입니다. 다른 하나는 임진강에서 행사를 위해 전곡항으로 왔다는 황포돛배입니다. 행사장 한쪽에는 경기관광공사 홍보 부스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요트경기대회 영상 하나 올려 봅니다. 동영상 보기

작성자작성일2011-06-12 17:25:04

바다낚시터와 방파제 산책 - 화성 궁평항 이모저모 2
[추천여행기] 바다낚시터와 방파제 산책 - 화성 궁평항 이모저모 2

전편에 이어 두번째 글입니다. 이번에는 방파제 모습을 이모저모 담아 봤습니다. 안내도에서 보시다시피, 바다를 향해 봤을 때 좌우로 방파제가 있습니다. 왼쪽 방파제에는 지난 2009년 5월 문을 연 바다낚시터가 있답니다. 방파제 안쪽 모습은 이렇습니다. 물이 빠진 때라 그런지, 수심이 제법 낮았습니다. 때마침 머리 위로 갈매기군도 날아가는 군요^^ 왼쪽 방파제를 따라 쉬엄쉬엄 걷다 보면 어느덧 바다낚시터에 이릅니다. 입구 모습은 이렇습니다. 기본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 정도까지 이용 가능합니다. 잔교는 Y 자 형태인데, 좌우 끄트머리에 각각 쉼터도 있습니다. 잔교 좌우 끝부분에서 본 모습입니다. 낚시터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국화도 입파도 승선장과 매표소가 나옵니다. 선착장 끝까지 내려가면 바다와 더욱 가까워집니다 :-) 방파제 난간 주위로 무가지 같은게 걸려 있는데, 처음에는 광고전단이겠거니 생각해서 그냥 지나치다가, 뭔가 한번 살펴봤습니다. 광고도 들어 있지만, 지도와 함께 일종의 여행안내전단 같은 것이었습니다. 쓸만하니 궁평항 가시면 하나 챙겨 보세요~ 왔던 길을 되돌아 건너편 방파제로 넘어 갔습니다. 무언가 많은(!) 왼쪽 방파제 보다는 심심합니다. ㅎ 낚시하시는 분들만 조금 보이구요. 예전에 이 끝부분에는 정자가 있었는데요. 망가져서 이렇게 자리만 남아 있네요. 잔해(?)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쉽네요. 정자에 앉아서 바라보는 바다가 참 운치있었는데 말이죠. 가능하다면 복구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오른쪽 방파제 오른쪽으로는 갯벌과 궁평해수욕장이 보입니다. 갯벌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는 갈매기를 비롯한 각종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날이 쨍 하지 않아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아쉽네요. 오묘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사진기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납니다. 물이 빠진지라, 갯벌 체험장에는 많은 가족들이 저마다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방파제 주변 모습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다음편에서는 갯벌과 궁평해수욕장 모습을 담아 보겠습니다.^^ 궁평리 정보화마을 홈페이지 보기

작성자작성일2011-06-06 23:35:31

전문산악인의 경기 의왕
[추천여행기] 전문산악인의 경기 의왕 "오봉산" 이야기,,

  오봉산은 의왕시 왕곡동에서 의왕시청 쪽으로 간다.  경수산업도로에서 보면 건너편으로 봉우리 다섯 개가 나란히 바라보인다.  산에 오르면 바다가 보이며, 끝에서는  봉우리가 한개 더 있어 봉우리 여섯 개의 모습으로 보이는 산이다.  해발 205 m 의 한남정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오봉산걷기는 등산자체를 즐기는 것보다는  오봉산 산책길을 걸으면서  오봉산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알아 간다는 것, 어떤 전설이야기가 있는지 생각하며 걸어보는 것이 좋을듯 싶다.    어쨌튼 오봉산도 한가지 정도는 내세울만한 곳이 있다 .  그것이 병풍암이다.   등산로 초입에서 의왕시청을 끼고 조금 오르다보면 좌측으로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암벽이있다.  그것이 암벽 등반등반 훈련장으로  알려진 병풍바위이다.  인근 청계산,모락산, 백운산, 덕성산과 더불어 의왕시의 대표적인 5개 산중에 하나이다.    오봉산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2가지가 내려오고 있다.  의왕시청 홈페이지와 의왕시 왕곡동 청풍김씨 문중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오봉산에 내려오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과연 어떤 이야기가 꼭꼭 숨어있는지 이 여행자가 파헤쳐 본다.  지금부터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의왕시에 사시는  어르신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다.    의왕시청을 지나 오봉산 정상으로 조금 오르다보면 죄측에 울창한 수림속에서 우뚝 솟아있는 암벽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등산학교 암벽 교육장으로 사용하거나 전문 암벽 등반가들이 자주 찾는 병풍 바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여행자도 오래 전엔 이곳에서  가끔 암벽 등반을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암벽 등반루트가 생기게 된 것은 1985년과 6년 사이에 수원 맥산악회와 적십자 구조대원들이 몇개의 루트를 개척하여  등반을 하던 곳었다  그후 1992과 3년 수원 돌비알 산악회에서 더 개척을 해서 지금은  총12개의 암벽 등반 루트를 새로 개척했다.  접근성이 좋고, 어프러치도 짧아 이지역 클라이머들은  자주 찾는 곳이다.  루트는 높이18 m, 폭 30여m 정도이며 등반 루트은 페이스, 크랙, 오버행 등으로 되어 있다.  암질은 검은색과 회색을 띠고 있으며 변성암이다.  암질은 단단해서 바위에 클링 홀드가 많이 있어 미세하지만 자세히 보면 홀드와 스텐스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특히 페이스는 대충 보기엔  잡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크랙은 수직벽이며 오버행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잡기좋은 작은 클링 홀드들이 많다.  크랙은 날카로운 형태를 하고 있어 크랙클라이밍을 즐기는데 제격이다. 암각이 확실해서 레이백이나 스태밍이나 레이백으로  오를 수 있다.  볼트가 대부분 멀리 있거나 아예 없는 루트도 있다.  따라서 크랙등반을 할 경우 프렌드를(바위틈에 끼우는 암벽등반장비) 이용해서 오르는 것이 안전하게 등반 할 수 있다.   병풍바위가 차지하고 있는 곳은 여기저기 쉴 수 있는 의자가 갖추어져 있고, 하룻밤 야영이나 비박도 가능한 공터가 있다.  하늘을 지붕삼아 별을 헤아리며 하룻밤 숲속에서 야영을 하는 것은 어떨까.  야생에서 하루 밤을 지새는 것이야말로  아무 여행자나 쉽게 경험 할수 없는 것이 아닌가.  오직 땀흘려 여행하는 등산,트래킹,야영,비박,캠핑여행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1, 오봉산에 내려오는 첫번째이야기 옛날 중국에서 죄를 짖고 도망처온 중국사람이 이곳 오봉산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마침 우연한 계기로  그의 곁에 앉았던 청풍김씨 성을 가진  한 분이 그를 불쌍히 여기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음식을 주고 옷도 새로 마련하여 주면서 며칠 쉬다가 가라고 하였다.   마침 그 때 그 청풍김씨댁 할머니가 중환이어서 매우 위독한 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에 그 중국사람은 할머니의 병환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도저히 소생할 가망이 없음을 판단하고 청풍김씨에게 말을 이렇게 건네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저이지만 노부인의 병환으로 아무래도 회춘하시기가 어려운 고비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타국에 와 생면부지인 당신을 만나 나는 겨우 고생을 벗어나 이제 몸도 다 회복하였습니다.   이에 당신께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아무것도 지니지 못하였으나, 다만 중국에서 약간 배운 기술이 있는지라 저 노부인을 모실 산소라도 하나 보아 추천하겠습니다." 청풍김씨는 이 중국 지관의 말이 하도 고마워 함께 산소자리를 보러 나섰다.  저 앞에 바라보이는 오봉산을 건너다 보고 함께 그리로 가자 하였다.  중국 지관의 뒤를 따라 오봉산에 이르러 그 뒤편으로 가니 어느 집 한 채가 있는 곳까지 가서 이 집터가 고지라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광중이 될 자리까지 지정하여 주는데 그 자리란 바로 그 집의 장독대가 있는 지점이었다. 청풍 김씨는 딱하였다.   아무리 자기 노모님을 모실 자리로서 명당을 추천 받았다 하지만 어엿이 살림을 차리고 있는 집에 들어가 그 집터를 산소자리로 양보해 달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시간을 끙끙거리다가 큰 마음을 먹고 그 집에 들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찾아온 뜻을 말하였다.   처음부터 승낙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역시 그랬다.   뿐만 아니라 그 집 주인에게는 이만저만한 노여움을 산 게 아니었다.   청풍 김씨는 결국 사과의 말을 하고는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청풍김씨가 그 집터에서 돌아온 그날 밤에, 그러니까 집터를 산소 자리로 양보하여 달라고 말을 건네었다가 오히려 잘못 되었다고 사과까지 하고 돌아온 그날 밤에 어찌된 영문인지 오봉산 뒤, 그 집에 불이 나서 몽땅 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또한 이 청풍김씨 댁 노부인도 그 시각에 운명하고 말았다. 마을에서는 이야기 거리가 생겼다.   멀쩡히 집짓고 사는 이에게 산소자리로 내어 달라고 한 것도 이야기 거리인데, 거절하였더니 그 날 밤으로 이상하게도 원인 모를 불이 나 집 한채를 몽땅 태웠고, 그뿐 아니라 청풍김씨댁 노부인이 또한 시간을 맞추어 운명하셨으니 더욱 그러하였다.   따라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청풍 김씨네에서 그 집터를 산소자리로 하려고 일부러 불을 질렀다느니, 혹은 불이 난 것은 그 집터가 청풍김씨네 노부인 산소자리로 이미 하늘이 정해 준 것이어서 그렇다느니, 그것은 하필이면 그 불이 난 밤에 노부인이 운명하실 것이 무엇이냐? 그것으로도 이미 하늘이 정하여 준 것이다.  등등 말은 꼬리를 물고 이어나갔다. "이제 노부인을 모실 자리도 확정되었으니 저로서도 그간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가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어쨌건 산소자리를 위한 이야기가 당시 양가 사이에서 시작되었고 결국은 원만한 합의를 얻어 그 타버린 집터에 청풍김씨는 묘를 쓰게 되었다. 장사를 치르기 전날 중국에서 온 사람은 다시 청풍 김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노부인을 모시기 위하여 땅을 파서 광중을 만들 때 얼마큼 파 내려가면 펑퍼짐한 돌이 부딪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 더 파지 마십시오. 꼭 지켜야 합니다."다시 그 막내는 놀랜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돌 아래 펼쳐졌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돌 밑에는 돌로 된 옥동자 다섯 개가 앉아 있었고, 그들을 향하여 그들 보다 조금 더 큰 옥동자 하나가 서 있었다.   흡사 옥동자 다섯에게 무엇인가 일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 이 막내는 너무 놀라 쳐들었던 돌을 놓는 순간 무엇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생각하고는 그 돌 위에서 이 구석, 저구석 밟아 보았다.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돌을 쳐들기 전까지는 기우뚱거리던 그 넓적한 돌이 이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꽉 제자리에 이가 맞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아까 무엇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는 바로 그 다섯 개 옥동자 앞에 서 있던 옥동자의 머리가 부러진 것으로 여겨졌고, 그 머리가 부러지기 전에 그 넓은 돌이 그 키에 걸려서 기우뚱거렸을 것임이 분명하였다.   이윽고 상여 앞에서 긴급 가족회의를 열면서 광중의 돌을 제거할 것인가 말 것인가 를 의논하였으나 끝내는 중국 지술사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그 돌위에 그냥 하관을 하고서 묘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옷을 가다듬어 입고는 이번엔 떠나는 인사를 하였다. "이제 저는 중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죄명이 누명으로 밝혀져 역적의 누명이 깨끗이 씻겼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야 합니다. 거듭 부탁드리겠는데 광중에 펑퍼짐한 돌이 나타나거든 그 이상 더 파내려가지 마시고 그 돌 위에다 그냥 하관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더니 훌쩍 길을 떠나 중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드디어 장례날이 되었다. 산역을 하고 상여를 모시고 온 집안이 떠들썩 하였다.   산소자리까지 상여를 모시러가 광중이 다 되기를 기다리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일하던 사람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광중을 파는 주위에서 꾸부리고 있던 화장꾼들도 한 몫 거들고 있었다. "더 파야지.  너무 얕지 않아?"  "아냐, 그만 파라고 했어.  여기 봐.  돌이 놓여있지 않아?" " 그렇지만 이렇게 광중이 얕아서야 … " "상관없어,  더 파지 마. " "이럴 게 아니라 상주에게 직접 보이고 결정하세." 결국은 상주인 청풍김씨에게 가서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처분을 바랬다.   청풍김씨는 이 이야기를 듣더니 직접 가 보았다.   분명히 중국 지관이 말한 대로다.   그러나 광중으로서는 너무 얕아 보였다.   그도 혼자 결정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일단 작업을 중단시키고 급히 가족회의를 열기 위하여 산소 가까운 곳에 대기중인 상여 앞으로 가서 구수회의를 가졌다.   이 때 광중을 파던 산역꾼들도 한동안 쉬기 위하여 광중으로부터 멀리 떠나 나무그늘 밑으로 갔고, 다만 청풍 김씨네 막내 아우만이 홀로 광중을 지키고 있었다.   원래 광중을 파게 되면 반드시 누군가가 지키고 있게 마련이다.   혼자 광중을 지키고 있던 막내는 지금 말썽이 되고 있는 펑퍼짐한 돌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슬며시 광중으로 들어섰다.   다시 그 펑퍼짐한 돌 위에 올라 서 봤다.   그런즉 밑에 무슨 돌이 있는지 어떤지 그 돌이 기우뚱거렸다.   무심코 그는 그 돌 한쪽 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밑을 내려다 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그 펑퍼짐한, 흡사 구들장 같은 돌을 들어 올리면서 내려다 보는 순간, 그는 '윽!' 하면서 다시 돌을 놓아 버렸다.   그 순간 무엇인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 넓적한 돌은 제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산소가 다 치성되고 나서도 이 막내는 그러한 광경이 너무나 무서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산소에 관한 비밀은 이 막내만이 알고 그냥 지켜져 온 것이다. 한편 중국으로 돌아간 지술사는 자기 아버지에게서 꾸중을 듣게 되었으니, 갖은 고생을 겨우 끝내고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이렇게 나무라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너는 너의 목숨을 아껴주고 구해준 조선땅의 청풍김씨 댁을 은혜는 못 갚을지언정 역적의 집안으로 인도하였으니 그럴 수가 있느냐. 어서 되돌아가서 그 산소를 옮기도록 하여라." 아들이 그 연유를 물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중국 지관은 그제야 한숨을 푹 쉬면서, "그럼 되었고, 그 부러진 것이 바로 다섯 개 옥동자 앞에 서 있던 옥동자의 목이 틀림없소.   그렇다면 이제 역적은 사라지고 그 대신 정승이, 그것도 6정승이 나올 것입니다.  " 하면서 저으니 마음을 놓는 듯 하였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조선 땅에서는 가장 좋은 길지로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되는데요." "아직 멀었다.    너는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 그 자리는 5정승을 거느리고 역적 모의를 하는 또 하나의 옥동자가 있었느니라.   그가 바로 그 집안을 역적의 집안으로 만들 후손이니라."   중국의 지술사는 새삼 자기 아버지의 지혜에 탄복하고 그 길로 다시 조선으로 건너와 청풍김씨댁을 찾았다.   뜻하지 않게 다시 만난 청풍김씨 댁에서는 이만저만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지관은 들어서자마자 자기가 잡아준 산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제의하면서 서둘렀다.    그 때의 청풍김씨의 막내도 한자리에 있었다.   이제는 더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숨겨서는 안되겠다고 판단을 하자 그제서야 여러 사람들, 즉 집안식구와 중국 지관앞에서 그 날, 장례식날 광중에서 겪은 일을 모조리 차근차근 이야기하였다.  그 후에 정말로 이 청풍김씨 집안에는 6정승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저 오봉산 봉우리가 그 산 이름처럼 다섯 개지만 사실은 가만히 바라보면 한쪽 끝에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모두 여섯 개 봉우리, 즉 6정승을 암시하는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2, 오봉산의 내려오는 두번째 전설   군포시 당정동 새전마을에서 의왕시로 넘어가는 길 옆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다.  이것이 '오봉산 장군바위'라고 한다.  이 바위엔 아기장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오랜 옛날 살림이 정말 어려운 여인네가 이쁜 옥동자를 낳았다. 하지만 이 아낙네는 워낙 살림이 가난하여 아기를 낳자마자 우물에 나가 쌀을 씻어 솥을 앉히고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일을하고  방에 들어와 보니 아기가 없어져버렸다.  아낙은 여기저기 아기를 찿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아기가 천장에 올라가 붙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아낙은 신기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얼른 끌어 내려 몸을  살펴보니 갓난아기의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 있었다.  기겁을 한 산모는 이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뇌리를 스쳐지나간 것은 '역적' 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가 범상이 아니라면 반드시 자라서 엉뚱한 행동을 할 것임에 틀림없고, 그렇게 되면 집안의 앞날은 뻔한 노릇이었다.   따라서 얼른 문 밖으로 나가 뜰에 놓여 있던 큼직한 맷돌 밑장을 들고 왔다.  그리고 갓난 아이를 이불로 덮고 그 위에 맷돌짝을 올려 놓았다.  그 순간 뒷산인 오봉산에서 용마가 나와 바위 위로 뛰어내려 오다가 그만 무릎을 꿇고 죽었다.  그 용마는 이 집에 태어난 아기장수를 태워서 하늘로 오르기 위하여 기다리던 말이었는데, 그만 아이가 숨을 거두는 순간 용마도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 바위에서는 흡사 말 발굽 같은 자국이 남았고 세상 사람들도  이 아기장수 와  용마의 이야기를 믿으면서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출처 : 의왕시청 http://www.uw21.net/ • 오봉산 찿아가는 길은 ... 의왕시청으로 가야한다.  주소>> (경기 의왕시 이동 24-1) 의왕시청 주차장에 무료주차를 할 수 있으며 시청을 바라보면서 시청 건물 좌측으로 돌아가면 테니스장이 나오며 이곳 테니스장 안으로 들어가 우측문으로 빠져 나가 등산로를 타고 곳바로 5분쯤 200여m 올라가면 병풍암이다.   오봉산 등산루트는 >> 의왕시청주차장 >> 병풍암바위앞 >> 약수터 >> 오봉상정상까지 왕복 2km , 소요시간 약 1시간 정도 소요 된다.

작성자작성일2011-06-06 03:13:11

수산물 직판장이 유명한 화성 궁평항 이모저모 1
[추천여행기] 수산물 직판장이 유명한 화성 궁평항 이모저모 1

경기도 서남쪽, 바다 건너로 충청남도와 접한 화성시에는 아름다운 포구와 섬들이 많습니다. 그 중 수산물 직판장이 유명한 궁평항은 수산물 뿐만 아니라, 사진애호가들에게는 낙조 출사지로, 가족을 동반한 여행객들에게는 갯벌체험으로, 강태공들에게는 낚시로, 휴가철에는 해수욕장으로 두루두루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참, 인근 국화도와 입파도 유람선 선착장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어서 더욱 편리한 곳이기도 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시작점은 수원역 입니다. 수원역전 남쪽 버스승강장에서 서신면 궁평항으로 가는 버스가 여러 대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궁평항으로 가는 방법이 약간 복잡(?)합니다. 400번과 400-1번을 타면 종점인 서신터미널에서 일단 내립니다. 거기서 대기하고 있던 궁평항 행 버스로 갈아타는데요. 어느 차가 궁평항으로 들어가는지 기사님께 물어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보통 번호판 앞에 궁평항이라는 팻말을 올려 놓고 있습니다. 반대로, 궁평항에서 수원쪽으로 넘어가는 버스는, 궁평항 정류장에서 갈아탈 필요 없이 바로 수원까지 갑니다. 일반적인 배차나 노선에 대한 사항은 경기버스정보시스템 홈페이지를 활용하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경기버스정보시스템 홈페이지 보기 지점별 대략적인 이동시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원역전 정류장에서 서신터미널까지는 1시간에서 1시간 20분 내외, 서신터미널에서 궁평항 정류장까지는 10분 내외가 소요됩니다. 서신터미널에서 차를 갈아타는 경우, 시간대가 맞으면 금방이지만, 안그럴때는 20분 내외로 대기합니다. 종합하면, 편도 1시간 30분 정도는 걸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궁평항 입구에는 간단한 정류장 표시만 있고 휑 합니다.^^;; 버스는 매시 25분과 55분에 출발합니다. 궁평항 입구 모습은 이렇습니다. 오른쪽 길로 조금 더 올라가면 화장실과 궁평리 갯벌체험장, 궁평해수욕장 방면 진입로가 있고, 그 반대편으로는 매점과 홍보관, 수산물직판장, 바다낚시터 등이 있습니다. 안내소 뒷편에서 본 수산물 직판장과 광장 모습입니다. 공연장처럼 꾸며 놓은 곳이 있는데,  반원형으로 기둥들이 서 있는 게 보입니다. 무언가 하면, 12지신상입니다.^^ 바닥을 보아하니, 분수도 나오나 봅니다. 수산물 직판장 외관입니다. 크게 두 개의 동으로 나뉩니다. 안팎으로 식당도 있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인 시장 탐방입니다. ㅎ 역시, 서해여서 그런지 조개 종류가 많이 보이는군요~ 크고 작고 모양도 정말 다양한 조개들이 풍성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장어와 광어들이 가득 들어찬 수조도 보이구요~ 갑오징어라고 흔히 불리는 참오징어도 참하게 수족관에서 헤엄치고 있네요^^ 농어와 넙치는 알겠는데, 요 앞에 있는 녀석들은,,, 놀래미는 아니고,, 나중에 찾아 봐야 겠습니다.^^;;; 보통 킹크랩이라고 많이 부르는 왕게도 보입니다. 서해바다에서 나는 놈은 아니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귀하신 몸 장어와 넙치(광어) 모셔 봅니다^^ 이렇게 수산물 직판장 모습을 담아 봤습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작성자작성일2011-06-05 19:05:57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 걷기좋은
[추천여행기]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 걷기좋은"수원화성성곽길"트래킹코스

원래 수원화성 성곽은 지금의위치 보다 남쪽으로 약 8 km 떨어진 화산 아래가 중심이었다.  그런던 것이 조선조 정조13년 (1789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현제의 위치인 수원으로 옮기면서 그 아래에 있던 관공서와 민가들을 팔달산 아래로 집단 이주시켰다.  현제의 수원은 그때  형성된 것이다. 수원화성 성곽길은 산책로가 잘 닦여있어 한결 걷기가 쉽다.  넓다란 잔디밭과 더불어 도시와 숲이 함께 어우러져있고, 요즘은 성벽주위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숲이 성벽을 타고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신선한기분과 느끼게 해주며  걷는동안 주변에서 아름다운풍광을 자아내고있다.   가끔씩 관광객들을 가득 태우고 오고가는 청룡열차가 성곽주위를 왕복하는 모습도 매우 행복해지고 낭만적인 모습이다.  성벽을 따라 걷는 동안은 모든 시름을 접고,  행복할수있다.  길가에는 아름다운 야생화 와 이름모를 풀, 울창한 나무들이 숲을 형성하고있어  누구라도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한다.   또한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사적 제 3 호 로 지정되어있어 전세계 여행자들이 많이 찿는 세계적으로도 자랑할만한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재이다.  동쪽지형은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는데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50 개의 시설물로 아름다운 성곽을 이루고있다.  이중에 수해와 전란으로  7개의 시설물이 소실되었으며, 지금은 약 40개의 시설물이 남아있다. 성벽둘래가  약 5.7 km 이고, 성곽을 따라  폴코스를 걸어도  약 10km 내 외 이므로 걷기 코스로도  큰 무리는 없는 듯하다.  수원성곽의 시설은 거리의 규모와 그 기능에 따라 51개의 시설물로 축조 되어있다.   주요시설 23개소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한국교유의 누각을 설치하였다.    당시 실학자로 불리우는 유형원과 정약용의 성설을 서계의기본 지침으로 삼아,  영의정 체재공이 성역을 주관하고 화성유수 조심태 등이 전력하여 이룩한 것으로 우리나라 성곽중에서는 가장 과학적으로 구조물을 치밀하게 배치 하면서도 우아하고 장험한 면모를 갖추었다.   특히 성곽의 축조에 석재와 전을 병용한것 화살과 창검을 방어하는 구조뿐만이 아니라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  용재를 규격화하고 거중기 등의 기계장치를 활용한 과학기술에서 우리나라의 성곽건축 축조기술사상 가장 특기할 일이다.어쨌튼 터널 터널 성곽길을 걷노라면 정조에 대해서 많이 군금해진다. 그래서 자료를 찿아보았다.   정조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중 수원화성 성곽의 축성동기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  수원성곽의 축성목적은  군사적목적 보다는 정치적목적이 더 많았었다.  조선 22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예절한 효심이 가장 큰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양파간 싸움에서 조선의 정치는 살벌했었다.  정조가 제임했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노론의 근거지인 한양을 떠나 과감한 개혁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이 정조는 필요로 했다.  이러한 의지를 굳혔던 정조는  양주에 있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화성으로 옮기는 일을  시작하게된다.  영조때 양파벌간에 살벌한 대립을 하고있었고, 당시  세자였던  사도세자를 어린 정조가 보는 가운데 뒤주에 갇혀 8 일만에 굶겨죽는 일이 벌어 지게된다.  사도세자가 한창 방황하고 고뇌할때,이를 이해하지않고 오히려  그  비행을 고발하고 처참한 죽음으로  몰고 간 일파 입장에서는 그의 아들인 세손인 정조 역시 미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왕위를 물려봤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튼 영조는 죽고, 정조가 그 왕위를 물려봤았다.  하지만 정조의 마음속은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에 대한 애처러운 마음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즉위 13년 되던해,  정조 18년 1월부터 20년 9월까지 2년 10개월동안  지금의 수원에 세계에 자랑할만한 화려하고 웅장한 수원성곽을 쌓았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을 화성으로 옮기고,  그곳을 '형룡원' 이라는 이름을 붙혔다.   정조는 이  새로운 도읍의 이름을  화성으로 하고,  49세의  나이로  한많은 생을 마감 한다.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버지 사도세자와 더불어 화성과 함께 개혁을 꿈꾸었던 일대기도  마감하게 되고 끝나게된다.  역대 임금중에 가장 지략과 무예,군사에  능한 군주가 정조였던것이다. 이쯤에서 여행자는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일대기도 군금해졌다.   사도세자  ( 장헌세자)  탄생과 뒤주속에서 억울한죽움을 당할때까지의 과정을 알아보기로 하여 과거로 돌아가봤다.   비극은 숙종때 남인과 서인이 대립하던 시기였다.  궁에서는 두 세력간의 대립이 살벌했었다.   당시 남인을 대표하는 장희빈과, 서인을 대표하는 인현왕후의 갈등으로 촉발된 것이라 할수있다.   숙종은  두여인이 소속된  남인과 서인을 적절히 기용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결국 나중엔 장희빈을 사약을먹여 사사하고, 남인을 몰락시키게 되지만 서인의 기득권은 기득권은 인정해주게된다.   당시 남인의 보호를 받고 있던 세자 (장희빈의 아들 ) 를 배척하면서  사도세자의 비극은 시작됐다.  숙종의 속마음은 세자를 폐하고, 최숙빈의 아들 연잉군과, 박명빈의 아들 연령군 중 하나를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인들에게 세자가 아닌 연잉군과 연령군을 맡긴다는 유언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서인들은 유언을 세자가 아닌 연잉군에게 보위를 넘기는 유언을  받아들이고, 새로 등극한 세자  경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서인들은 이러한 경종을 가운데 두고 다시 두파로 갈라지게 된다.   경종을 왕으로 인정하는 온건 소론과, 경종을 왕으로 인정 하지 않는 강경 노론이 팽팽이 맞선다.   경종은 왕위에 오르자 노론의 압력에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게되고,  왕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주청하는 노론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이제 막  등극한 왕에게  이복 아우를 왕세자도 아닌 왕세제로 책봉하게 하는것은  현제의 왕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이어지는 대리청정의 요구역시 현 왕에게  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경종  2년까지 왕세제 연잉군을 앞세워  장악하던 노론에 맞서 소론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왕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이 왕권을 무시한 반역이라 여기고, 노론 4대신을 탄핵한 신임사화 (1722) 가 그것이다.  이 사화로 노론과 연잉군은 큰 고비를 겪게 되고, 소론이 잠시 득세하게 되지만, 아우를 사랑하는  경종의 마음을 움직인 연잉군은 목숨을 보존하게 된다.  그후 1724년 경종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연잉군은  왕위를 물려봤는다영조는 노론과 소론을 똑같이 기용하는 탕평제 실시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생사를 같이 했던 노론과 항상 함께 했고 , 소론은 언제나  그의 목숨을 위협했던 신임사화를 일으킨 원훙으로 치부하게 된다.   영조 등극 25년 뒤, 장자인 효장세자 사망한지  7년후  외아들 사도세자가 태어난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기에  훌룡한 왕제의 재능이라했고, 소론과 노론 양쪽 모두가  유일한 왕세자로  여겼다.  사도세자는 자라면서   영조와  노론과 소론의 힘겨루기를 지켜봤으며, 노론과 소론이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때마다 펼쳐지는 양위소동에서 영문도 모르고 석고대죄 할수 밖에 없었다.   영조와 야당파가 주연하는 정치적쇼에서 상당히 비중있는 조연을 담당할수 밖에 없었다.  이해할수 없는 사건의 반복은 세자로 하여금 근본적 원인을 파헤치게 만들었고,  그 의문은 소론과 노론에 대한 관계와 영조와 숙부인 경종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노론에 대한 반감은 커져가게 되었다.  영조가 툭하면 양위소동을 벌이며 경종이 자신을 대단히 사랑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아버지가 정말로 숙부를 독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한다사도세자의 이런 반노론은 노론은 물론이고 노론의 힘으로 왕위에 오를수 있었던 영조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런후  세자의 모든 정치적 행동은 영조에게 항시 감시할 대상이 된다.   사도세자가 뒤주속에서 죽은 것은 1762년  나이 28세였다.   이때는  왕제로서의 노련함과 덕은  영조를  넘어 백성으로 부터도  존경을 받고 있었다.   노론을 견재하고 소론과 남인을 신임하던 사도세자의 죽음은 어쩌면 10년 전 그의 적자인 혜경궁 홍씨 소생의 자,  가 출생하면서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후계자가 없는 왕은 기반이 취약했고, 과거 신임사화때 목숨을 부지할수 있었던 이유도, 경종을 제외하고 효종, 현종, 숙종의 삼종의 혈맥 을 이은 자손이 연잉군 (영조)  밖에 없었떤 이유가 컸다.  영조에게 왕권의 뿌리이자 자신이 왕이 될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자신이 삼종의 혈맥을 잇는 유일한 왕손이라는 것 뿐이다. 이제 자신의 아들이 사도세자 밖에 없는 상황에서 만약 세자가 적장손 산과 후궁에게서 아들을 보지 못했다면, 사도세자는 어쩌면 영조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목숨을 부지 할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노론은  자신들이 죽인 아버지의 아들인 영조(이산) 을 죽이려 들지만, 이번에는 영조가 왕세손을 보호하게 된다.  왕세손 이산은 할어버지의 보호아래   22대 왕 정조로 왕위를 물려봤게된다.   정조 등극후 노론은 몸을 사릴수 밖에 없었지만, 정조 또한 아버지의 처절한 죽움에서 원수는 기억하지만 성급함은 좋지 않는것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정조 재위 24년 동안 정조의 견제속에 활동을 할 수 없었던 노론은 정조의 아들 순조의 등극 이후 이는 노론을 제대로 견제할수 있다는 정조의 자신감이 지나쳤던 결과로 그의 최대 실수 중 하나가 된다.  다시 기지개를 펴게 되니, 조선왕조의 비극 역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듯 한다.   당시 득세한 노론중 하나가 지금의 안동김씨다. 수원화성 성곽가는길은 >>자가용을 이용할때.. 1 번 국도를 타고 화성행궁,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동수원 IC 나와 화성행궁, 경부고속도로 수원 IC >> 화성행궁, 지하철 .. 수원역>>11,13,36,39 버스승차 >>화성행궁,  수원성곽주변 둘러볼곳,구경할곳,>>수원화성,정조의 어신을 모신 화령전, 화성열차, 국궁 화쏙 체험, 효원의 종 타종, 청룡열차 타고 수원성곽둘러보기,정조대왕능행차연시 체험,이 있다.  기타 자세한 문의는 수원화성우녕재단 홈페이지에 문의 하면된다.  총 걷는거리는 >>5.7km이지만 성벽을 따라 처음 집입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왕복코스로는 약 10km정도 된다.   소요시간은 2시간 30분 소요된다.

작성자작성일2011-06-01 19:5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