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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추천여행 – 고려말 조선초 최대의 가람이었던 회암사의 역사를 담은 곳 “회암사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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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추천여행 / 화암사지박물관 / 보광자

 

언제였던가 기억도 가물거린다.

한 10년쯤 되었나 싶다.

천보산 산행을 하기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고 정보에 나온대로 버스를 타고 길을 찾아 갔었다.

그 때 생각지도 않았던 귀한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회암사지였다.

그때는 발굴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들어갈 수도 없었고 먼 발치에서 바라만 봐야 했었다.

 

회암사지 올라가는 입구에 회암사지 박물관이 새로 생겼다.

작년 10월에 생겼다니 얼마 안 되었다.

양주에 사는 지인의 안내로 회암사지 박물관에 갔었다.

 

회암사는 고려말과 조선초기에 있었던 최대의 가람이었다.

고려말에는 전국 사찰의 총 본산이었고

조선초기에는 태조 이성계, 효령대군, 정희왕후, 문정왕후 등 왕실의 인물들이 회암사에 대규모의 불사를 일으켜

전국 제일의 수선도량이 되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과 한문으로 회엄사지라고 적혀 있는 벽면의 모습

 

회암사지는 1964년에 사적 128호로 지정되었다.

모두 10차례에 걸쳐 발국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1997~2012년

그러니까 작년까지 조사가 완료 되었고 박물관도 완공 됐다.

 

 

 

회암사지 박물관 안내도의 모습

 

회암사지 박물관 안내도

 

 

 

벽면에 붙어 있는 꽃무늬 장식의 모습

 

회엄사지박물관 내부의 모습

 

지공선사의 그림과 설명이 적혀 있는 판넬

 

지공선사

 

 

 

나옹선사의 그림과 설명이 적혀 있는 판넬

 

나옹선사

 

 

 

무학대사의 사진과 설명이 적혀 있는 판넬

 

무학대사

 

 

 

회암사지 박물관에 가면 시청각실에서 영상으로 회암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아래 사진들은 영상을 보며 설명 들었던 내용중 일부다.

 

 

회암사의 모형 모습

 

회암사지 발굴 조사 결과 보통의 다른 사촬과는 다르게 궁궐과 유사한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왕실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던 도자기류와 기와류 등 귀중한 유물이 다량 출토 되었다.

이런 점으로 보아 고려 말부터 조선초 최대의 사찰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회암사지 보광전의 모형 모습

 

보광전

 

고려말 나옹선사가 회암사 중창함으로서 회암사는 지금과 같은 거대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왕실 사찰로서 입지를 더욱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색의 목은집에 실려있는 “천보산회암사수조기”에는 고려 말에 다시 지은 회암사의 규모와 전각이나 불상 등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중 건물 262칸과 15척의 불상 7구, 10척의 관음보살을 조성하였다.

나옹선사가 입적한 후에도 부속 건물과 불상 조성이 계속 되었다.라는 내용을 통해 고려말 조선초 최대의 왕실 사찰로 회암사의 위상을 알 수 있다.

 

 

 

 

회암사지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영상 모습

 

회암사지 모형 앞의 스크린에서 나오는 회암사지에 대한 영상

 

영상속의 남성이 회암사지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회암사 모형의 조감도

 

조선시대의 회암사

회암사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보호 아래 성장하였다.

조선 건국 후 다음 해부터 태조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회암사의 주지를 맡았다.

태조는 회암사를 자주 찾기도 하고 내신들을 보내 토지를 하사하기도 했다.

조선 전기에는 왕실과 관련된 중요한 불교 행사의 대부분이 회암사에서 시행 되었다.

이처럼 회암사는 조선 왕실의 막강한 정치, 경제적 후원을 바탕으로 조선중기까지 조선시대 최대의 사찰로 그 위상이 높았기 때문에

당시의 왕실 문화나 불교 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멍이 뚫려 있는 청동금탁의 모습

 

청동금탁

청동금탁은 건물 추녀끝에 다는 경쇠의 한 종류로 풍령, 풍탁, 첨마라고도 한다.

금탁은 바람에 흔들려서 소리나는 몸체와 추녀에 매달게 하는 연결부로 이루어져 있다.

청동금탁은 보광전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금탁에는 모두 134자의 명문이 남아 있는데

‘왕사 요엄존자 조선국왕 왕현비 세자’로 시작하여

조선이 만세토록 전해질 것을 발원한 내용과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이 절이 회암사란 것과 그 중창시의 시주자들을 알 수 있어 절의 연혁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조선왕실의 행렬을 재현한 모습

 

조선왕실의 행렬

왕이 참여하는 공식적인 행사에는 왕의 존재와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대규모의 호위 병사와 깃발, 무기를 동원했다.

한편 어가 행렬은 좋은 볼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백성들은 직접 왕 앞에서 상언할 수 있으며, 왕은 정치가 잘 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청기와와 왕실관련기와를 전시하고 있는 모습

 

 

청기와의 모습

 

청기와

 

청기와와 왕실관련 기와

청기와는 중국 명나라 황실에서 유행한 것으로 평기와에 유약을 발라 청색이 드러나도록 구워낸 것이다.

청기와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 재정적인 부담이 컸고, 왕실의 권위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청기와는 모두 수키와이고 주요 건물에서 1~2점씩만 제한적으로 촐토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건물 지붕에 상징적으로 올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대장전에서 출토된 청기와를 볼 때 청기와의 대부분이 용마루 한 가운데에 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황제만세”명 기와나 효령대군이 후원한 “천순3년”명 기와를 통해 회암사에 대한 왕실의 관심과 지원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유리 진열장 내에 전시되어 있는 많은 유물들

 

 

청화백자 파편의 모습

 

조금씩 깨져 있는 다양한 도자기 그릇의 모습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 유물들

 

도자기 파편과 어느정도 형체가 남아 있는 도자기가 전시되어 있는 모습

 

흙으로 빚은듯한 인형의 모습

 

용두(용의 머리)

 

용두

 

용두는 용의 머리 부분을 형상화한 장식 기와이다.

내림마루 끝 부분에 단독으로 설치하거나 추녀마루에 잡상과 함께 설치한다.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용두는 티어나올 듯 부릅뜬 눈과 크게 벌린 입이 당장이라도 포효할 듯 기백이 넘치고 생동감이 느껴진다.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용두는 그 크기나 형태를 볼 때 조선전기 회암사의 높은 지위를 입증하는 종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회암사지박물관은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너무 늦은 시간에 방문했던 관계로 문 닫을 시간이어서

후딱 1층만 둘러보고 나왔다.

2층은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왔다.

 

다음에 다시 한 번 가야겠다.

발굴 조사가 완료된 회암사지도 가보고 박물관도 천천히 다시 관람하고 싶다.

 

 

회암사지박물관

경기도 양주시 율정동 299-1

031-8082-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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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기도 양주 추천여행 – 고려말 조선초 최대의 가람이었던 회암사의 역사를 담은 곳 “회암사지박물관”"

  1. GGi Tour 2013/01/21 9:36 오전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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