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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 가볼만한 곳 – 고려 공양왕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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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반드시 망하는 때가 옵니다. 현재 유럽의 기원이자 유럽문화의 모태이며, 오죽하면 로마에 의한 평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로마제국이나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제국처럼 결코 망할 것 같지 않았던 나라들도 언젠가는 망하는 때가 오지요. 오히려 드리운 그늘이 넓을수록 마지막은 더 허무하고 안타까워서 역사를 읽다 보면 그 덧없음에 책장을 덮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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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라가 망하는 때에는 격렬한 파열음과 함께 또 반드시 슬프고 애절한 사연들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백제의 멸망에는 낙화암의 비극이 있었고 천년왕국 신라의 마지막에는 마의태자의 애닲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 역사의 빛나는 한 시절이었던 고려에도 마찬가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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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알다시피 고려의 마지막 왕은 공양왕입니다. 고려의 34번째 왕인 공양왕은 1389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후 신돈의 자손이라는 누명을 쓰고 폐위된 창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한편으로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애초에 공양왕은 사신의 소망은 필부로 천수를 다하는 것이라면서 왕위에 오르기를 거부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이나 역사적 흐름은 누가봐도 이성계가 새로운 왕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으며 망한 왕조의 왕이 가야할 운명이란 십에 팔구는 죽음이고 운이 좋다 해도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삶 뿐이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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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비운의 임금 공양왕의 묘로 알려진 곳은 강원도 삼척과 경기도 고양 두 곳에 있습니다. 영면의 자리인 묘조차 두 곳이 된 기구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성계 세력에 의해 공양왕은 왕위에 추대되지만 곧 1392년 이성계에게 왕위를 뺏기고 폐위됩니다. 그리고 강원도 간성에 머무르다가 1394년(태조 3년) 3월 14일에 강원도 삼척 궁촌리로 유배지가 옮겨졌으며 그해 4월 17일 궁촌리 마을입구 고갯길의 고돌산 살해재에서 아들인 폐세자 왕석과 함께 처형되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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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416년 조선 태종은 공양왕(恭讓王)으로 추봉하고 사신을 보내 그의 능에 제사 지냈다는 것입니다. 현재 고양의 묘에는 왕비인 순비 노씨와 합장되어 있으며 조선 태조의 즉위 3년만인 1394년에 고릉(高陵)이라는 능호가 붙여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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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양왕의 죽음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공양왕은 폐위 뒤 개경에서 원주로 추방되고 다시 삼척으로 옮겨졌으나 그 곳에서 탈출하여 개경으로 돌아가고자 고양군에 은신하던 중 자신을 잡으러 온 이성꼐의 군사를 피해 달아나던 중 근처의 연못에 투신자살하여 일생을 마쳤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이때 공양왕의 삽살개도 따라 못에 빠져 죽어 충견을 기념하기 위해 석구를 능 앞에 세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공민왕은 왕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성계는 우왕과 창왕을 죽이고 ,제 20대 신종의 6대손인 왕묘를 찾아 왕위를 맡긴다.마흔 다섯이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나는 평생 동안 먹은것, 입는 것이 풍족했고 시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 나이에 왜 내가 이런 큰일을 맡아야 한단 말인가!- 결국, 그는 2년 8개월 만에 고려가 아닌 조선의 왕 이성계에게 왕의 자리를 넘기게 된다. 공양왕ㅇ은 이성계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을 예감하고 밤을 틈타 송도개성의 궁궐을 탈출해 무작정 남쪽으로 내달렸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사방이 캄캄해졌을 때 산 저쪽에 불빛이 하나 보였다. 어슴푸레한 그곳을 살펴보니 절이었다. 문을 두드리니 한 스님이 나와 물끄러미 왕의 행색을 살피더니 갑자기 주르르 흘렀다. '어찌하여 천하의 주인이 집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셨는지요?' 하지만 쫒기는 임금을 숨겨주었다가는 자칫 화를 입을 수도 있어 스님은 공양왕에게 '저희 절은 위험하니 동쪽으로 10리 정도 떨어진 한 누각에 가 계시면 저희들이 매일 수라를 갖다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고 공양왕은 그 누각으로 가 절에서 날라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하였다. 이로 인해 식사리의 명칭이 유래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공양왕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그 후 왕이 평소에 귀여워하던 청삽살개가 어느 연못 앞에서 자꾸 짖다 돌연 물속으로 뛰어들어 빠져 죽었다. 이를 잉상히 여긴 사람들이 못의 물을 퍼내어 보니 옥새를 품은 왕이 왕비와 함께 죽어있었다. 비통에 잠긴 친족들은 연못 뒤에 조그마한 봉분을 만들어 왕의 시선을 안장하였다. 그후 이곳은 왕릉골이라 불리게 되었다.이 왕릉에는 다른곳에선 볼 수 없는 개모양의 석상이 있는데 이는 죽음으로 왕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린 충견 삽살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것이라 한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의 왜소하고 소박한 능은 국운이 다한 고려왕조의 비애를 느끼게 한다.

 

또한 공양왕릉이 있는 곳은 왕릉골 식사리란 곳인데 ‘식사리’라는 지명의 유래가 공양왕이 숨어지내면서 절에서 가져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했다고 하여 먹을 식 절 사, 식사리가 되었다는 것이죠. 공양왕의 죽음과 묘의 유래와 관련하여 둘 중 어떤 사연이 맞는 것인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묘조차 제대로 알 수 없을 만큼 그 누구도 죽음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않은 것은 망국의 왕이 감수해야 할 비애라고만 치부하기엔 너무 가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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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공양왕 묘를 찾았습니다. 고양의 공양왕릉은 사적 제191호로 지정되어 새로 보수되었지만 비운의 왕릉이어서인지 초라하기가 이를 데 없는 모습입니다. 원 지명이 식사리 왕릉골인 이곳은 발전을 거듭한 세월 속에서도 유독 시간에서 비켜나 있는 듯 여전히 궁벽하고 또 외롭습니다. 내가 머물렀던 한시간여 동안 지나는 사람도 둘레길을 걷는 아주머니 두분 외에는 볼 수 없었구요. 생전에도 외롭고 고적한 삶이었는데 돌아가서도 이런 모습인가 싶어 측은함이 밀려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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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왕릉을 살펴보면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더랬습니다. 분명 왕릉인데 왕과 왕비의묘, 더 해봐야 왕 밑으로 후궁이나 왕자 묘 정도나 있어야 할 곳에 묘가 너무 많은 겁니다. 더군다나 공양왕 부부 묘 바로 위로도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건 왕의 머리 위에 누운 형국이라 이게 무슨 개족보인가도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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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홍살 경계선이 둘러쳐진 곳만 왕릉이고 나머지는 조선시대 다른 집안 사대부들의 묘인 듯 했습니다. 고색도 창연하고 묘비에 적힌 판부사 장군 등 고위 관직명들로 미루어 꽤 명문가였나 봅니다. 고려와 조선은 왕조가 다르니 당연 군신의 의는 없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돈도 권력도 있었을 명문가에서 왜 이런 무례를 범한 것일까 의문을 가져보게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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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굳이 다른 사람, 그것도 한때나마 왕이었던 이의 머리맡에 자기 조상의 묘를 쓰는 무리를 하면서 탐을 낼만큼 이곳이 명당이라는 말도 될 것입니다. 공양왕 묘 바로 곁은 아니지만 길 하나 건너에도 조선 왕실의 후궁과 왕자들의 묘도 여러기 있었구요. 실제로도 조용한데다 볕도 잘들고 양 옆으로 기세가 높진 않아도 병풍처럼 산세가 이어진 모양이 풍수에 별로 조예가 없는 내가 봐도 좋은 자리 같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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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잠시 머물다가 다시 온 길을 돌아나왔습니다. 그리고 흥망성쇠의 덧없음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는 것입니다. 공양왕도, 또 그 공양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도, 고려도 조선도 이제는 모두가 사라진 이제에 이르러 그때를 되돌아보면 아무리 부귀하고 영화로워 봐야 한바탕 꿈이고 후세 사람들의 한낱 얘기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로구나 싶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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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한을 품고 돌아간 공양왕의 묘 앞에서 국가를 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고 또 망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면 흥하고 저러면 망한다 할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달이 차면 기우는 것처럼 한번 일어난 것은 반드시 스러진다는 것만은 알겠습니다. 불현듯 삼국지에 나오는 결사 한대목이 생각납니다.

“어지러운 세상일 끝난 데 알 수 없고 하늘의 뜻 넓고 넓어 벗어날 수 없어라 천하 솥발처럼 나뉘었던 일 이제는 한바탕 꿈으로 돌아갔건만, 뒷사람이 슬퍼함을 핑계로 부질없이 떠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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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양왕릉
주소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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