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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정부 가볼만한 곳 – 정문부 장군 묘와 북관대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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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명량’의 성공이나 드라마 류성룡 처럼 임진왜란를 배경으로 영화와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는 그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거나 사회적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죠. 즉 특정한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은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거울과도 같기에 바로 이 시기에 임진왜란이라는 소재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깊게 생각해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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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선조 25) 왜군의 전면 침공으로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그후 1597년 정유재란을 거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7년 동안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나라까지 동북아 삼국이 전란에 휩싸였던 임진왜란은 중세 동아시아 최대 전쟁이었을 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에 미친 영향 또한 지대했습니다. 먼저 조선은 전쟁으로 인한 국토의 파탄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왕실과 양반의 권위 하락과 유교적 사회 체제에 대한 회의로 급기야 조선이 쇠퇴하는 기원이 되었으며 일본은 토요토미 가문이 몰락하고 새로이 에도막부가 출범하였고 명나라는 조선 출병에 과도한 국력을 쏟은 후유증으로 결국 후금에게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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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7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이순신, 권율, 곽재우, 고경명 등 수많은 영웅들이 나타나 망해가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정문부 장군도 있죠. 농포(農圃) 정문부 장군은 함경도에서 카토 키요마사 군과 맞서 싸운 임진왜란의 영웅입니다. 원래 문관 출신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선조21년 과거에 급제했고 임진왜란 발발 당시 함경도 북평사로 재임 중이었습니다. 이때 선조는 왜군에 쫓겨 의주로 몽진을 하면서 임해군과 순화군 두 왕자에게 근왕병을 모집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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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두 왕자가 근왕병을 모집하러 함경도에 왔을 때 아전인 국경인 등이 반란을 일으켜 두 왕자를왜군에게 넘겨버리죠. 이에 정문부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반란군을 진압하고 경성, 길주 등에서 왜군과 싸워 관북지방을 완전히 수복합니다. 이때의 공으로 길주목사가 되었고 광해군 2년(1610)에 사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인조 때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 끝에 옥사합니다. 그러나 다시 사후 41년(현종 6년) 무죄가 밝혀져 선무원종 1등 공신에 책록되고 좌천성 대제학으로 추증되었으며 함경도 경성에 사당인 창렬사를 세워 제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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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부 의정부에는 경기도 기념물 제37호인 비운의 영웅 정문부 장군의 묘가 있습니다. 정문부 장군의 묘역 입구는 비교적 잘 단장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주변 일대는 대형마트와 건물들로 둘러쌓여 있기는 하지만 통행이 많지 않아 적당히 한적했구요. 묘역 안으로 들어서면 잘 가꿔진 소나무 숲이 먼저 눈에 뜨입니다. 사시사철 무르름을 잃지않고 애국가의 가사처럼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야 말로 구국의 영웅에게 걸맞는 모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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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부 장군의 묘소로 올라가는 계단의 좌측에는 장군의 행장을 적은 신도비를 보관한 신도비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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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도비는 현종 6년(1665)에 세웠던 것을 철종 12년(1861)에 추가로 기록하여 다시 세운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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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측 편에는 또 하나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바로 북관대첩비의 복제비입니다. 북관대첩비는 정문부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아 가토 기요마사 군에게 승리한 전투를 소상히 기록한 전승비로 높이 187cm, 너비 66cm 두께 13cm의 비석에 1500자가 새겨져 있으며 1707년(숙종 34) 당시 북평사이던 최창대가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면(현 김책시 임명동)에 세운 것입니다. 그후 북관대첩비는 1905년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 소장 이케다 마시스케가 일본으로 가져갔고, 반환될 때까지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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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기억 속에 잊혀져 있던 북관대첩비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78년 재일동포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이 1909년 일본 유학생 시절 기고한 글을 보고 야스쿠니 신사에서 북관대첩비를 발견하면서 입니다. 이후 한국 정부는 일본에 반환을 요청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다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10월 20일 한국으로 반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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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화재는 원래 자리에 복원되는 것이 옳다는 원칙에 따라 2006년 북한으로 보내져 원래 북관대첩비가 있던 자리인 함경북도 김책시에 원형대로 복원되었으며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독립기념관, 그리고 정문부 장군 묘역에 복제비가 남아 있습니다. 나라를 구하는 공을 세우고도 오히려 충성을 바친 국가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정문부 장군의 일생만큼이나 구구한 이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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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양편의 비석들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라 가면 이윽고 정문부 장군의 묘소가 나타납니다. 작고 소박합니다. 부인 고령 신씨와 함께 묻혀 있는 합장묘로 봉분 앞에 묘비 상석 향로석이 있고 그 앞 좌우로 1쌍의 문인석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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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차게 될 정도로 북관대첩의 주인공인 임진왜란의 영웅의 묘소에 걸맞지 않는 모습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역적의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일을 생각하면 뒤에 신원되어 이나마라도 묘소가 보존되어 있는 것이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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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으로 가는 오솔길에 마치 인사를 하는 듯한 형상으로 서있는 소나무 하나를 보았습니다. 자연현상이야 우연한 일일 것입니다마는 그것을 보면서 느끼는 사람의 마음에는 우연이란 없는 것이죠. 같은 것을 보면서 저마다 무엇을 느낄지는 그 사람의 그릇에 따라 다른 것일 것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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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래로 내려와 입구를 지나 왼편으로 올라가면 홍살문이 서 있고 그 뒤로 충덕사(忠德祠)라는 정문부 장군을 모신 사당과 재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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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부 장군을 모신 사당은 전국에 모두 세곳이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이곳 의정부의 충덕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함경도 경성의 충렬사,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진주의 충의사입니다. 묘역이 있는 의정부와 장군이 북관대첩의 공을 세운 함경도 경성은 그렇다 치지만 뜬금없게 경상도 진주에는 무슨 연고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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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막은 이렇습니다. 장군이 창원부사로 있을 때 진주를 둘러보고 진주라는 고장의 순박한 풍습과 아름다운 풍광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옥중에서 세상을 뜨기 전에 두 아들에게 유언으로 벼슬을 하지 말고 진주로 내려가 살라 했다고 하죠. 그래서 장군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하여 진주로 내려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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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안에는 정문부 장군의 초상과 위패, 그리고 승전도가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사당 안을 보고 싶어 기웃렸습니다만은 문이 잠겨 있어 문전만 살펴보고 돌아섭니다. 다만 홍살문 뒤 사당 입구의 ‘복지문(復地問)’이라는 현판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국토를 회복하다.’ 장군의 생애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글자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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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한심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커다란 병화를 겪고도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공을 원수로 갚은 것은 정문부 장군만이 아니죠. 의병장 김덕령 장군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고, 이순신 장군은 전쟁 도중 고문으로 죽을 뻔하다가 겨우 백의종군으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곽재우 장군도 고초를 겪고 산 속으로 들어가버렸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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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는 더러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 더러운 세상은 과거에만 있는 것일까요? 나는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정문부 장군의 묘는 의정부 경전철 어룡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가할 때 찾아 장군이 겪은 더러운 세상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세상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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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부 장군묘
경기도 의정부시 산단로132번길 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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