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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죽음, 영창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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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왕자로 태어나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왕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태종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복형제인 방석과 방번을 시작으로 수많은 역모에 엮어 죽임을 당한 왕자들.

그중 광해군의 배다른 동생이자 선조와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은 8살의 어린 나이에 죽임을 당해 더욱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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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에 소재하고 있는 영창대군묘는 아담한 동자석과 문인석이 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원래는 이곳에 있지않고 경기도 광주군 남한산성 아래에 안장되었으나 성남시가 개발되면서 1971년 8월 현재의 위치로 이장되었다.

영창대군은  선조의 14명의 아들 중  13번째 태어난 아들로 유일하게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적통이다. 누이는 요즘 텔레비전 사극으로 꾸며진 화정의 주인공 정명공주이다.

영창대군은 1606년에 태어났다. 영창대군이 태어난 때는 임진왜란의 아픔이 어느정도 극복이 되었던 시기였다.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세자로 책봉했던 광해군을 대신해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마음을 품게 하였다.

하지만 선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선조는 죽으면서 대신들에게 영창대군을 부탁한다는 유교를 내렸다. 이 또한 광해군과 대북파의 미움을 받게 되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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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광해군 5년에 소양강을 무대로 서양갑과 박응서 등 7명의 서출들이 역모를 꾸몄다는 ‘7서의 옥’이 일어났다. 대북파의 이이첨 등은 이 역모 사건에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하였다는 자백을 받아내었고 이로 인해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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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위리안치된 영창대군은 이듬해 봄 강화부사 정항에 의해 살해되었다. <광해군 일기>에는 정항이 온도를 뜨겁게 달구어 증살했다고 되어 있으나 <인조실록>에 의하면 광해군의 밀명을 받은 별장 이정표가 음식물에 잿물을 넣어 영창대군을 죽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광해군일기와 인조실록의 죽음에 대한 정항이 달라 이견이 있지만 어찌되었던 8살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영창대군은 인조반정 이후가 되서야 관작이 복구되어 남한산성 아래에 모셔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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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대군의 무덤에는 동자석이 있는데 두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고요하게 서 있는 모습에서 철이 일찍 든 어린 소년의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또한 귀에 건 큼지막한 귀걸이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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