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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여행 -대로사 우암 송시열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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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동안 여주의 구석구석을 많이 돌아봤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안가본 곳이 많은걸 보면

양파처럼 까도 까도 볼거리가 많은 곳 또한 여주라 생각 됩니다 .

​대로사라고 해서 처음엔 무슨 사찰이름인가 했을 정도로 명칭에서 풍겨져 나오는 이름은 사찰 느낌인데요.

대로사는 왕명에 의하여 송시열을 제향하기 위하여 세우고 그 해에 사액되었는데 이때는 송시열에 대한

존칭인  대로의 명칭을 붙여 대로사라 불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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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오후  늦은 시간에 찾아서 문이 닫혀 있음 어떻게 하나 했는데 다행이 문이 열려 있어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보았는데요 . 일생을 주자학 연구에 몰두한 거유로 이이의 학통을 계승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고 예론에 밝으며 뛰어난 학식을 지녔고 많은 제자를 길러낸 분의 사당을

접하고 보니 왠지 좋은 기운을 얻고 가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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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사 입구에는 추양제 건립과 관련된  대로사 기적비, 대로사 추양재 기실비가 있는데요.

대로사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되는 곳은  바로 추양제였습니다.

예론을 중시했던 학자의 길을 현재에서도 실현하고 있는 듯 예절학교로 사용되는 건물인데요 .

고택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고 있어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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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을 제향하는 대로사의 내력을 적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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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사에 와서 놀란점 하나 바로 오랜 세월을 보여주는 은행나무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

사실 개인적으로는 가을 노랗게 은행나무 단풍이 들때  꼭  다시 찾고 싶은 곳입니다 .

물론 비교를 하려면 여름에도 다시 한번 파릇한 모습의 은행나무도 담아봐야 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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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사비 우측으로는 대로서원이 있는데요. 건물의 규며는 전면 6칸. 측면 4칸의 큰형태로

바닥에 넓게 마루를 깔고 몇개의 기둥이 지붕을 이룬 누각의 모습 입니다 .

대로서원의 내부 한쪽면에는 강한사라는 현판이 붙어있답니다 .

앞서 송시열은 여주에 머물 때마다 이 곳에서 영릉( 효종의 능)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또 후진들에게 북벌의 대의를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 후일 정조가 영릉에 행차하다가 이 말을 전해듣고

수행한 김양행에게 이 사우를 세우게 하였으며, 또 친히 비문을 지었다고 전해져 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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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고종 8)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과 사우에 대한 훼철를 단행할 때 전국에 송시열을 제향하던

서원 및 사우가 44개소나 되던 것이 모두 헐렸으나 오직 이 대로사만은 ‘강한사’로 이름을 바꾸어 남게 되었다.

서적이나 기타 목판 등이 산실되고, 겨우 외모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 정조 때 사액시 대제학인

김종수()가 쓴 ‘대로사()’의 현판이 현재 사묘 안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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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입구엔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들어갈 수는 없지만 입구에 두 그루의 향나무가 왠지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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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사 뒷편으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 여름날 이곳에서 황포돛배도 타고 인근 신륵사 구경도

하면서 역사적으로 우암 송시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여주여행길에 들려봐도 좋을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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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대로사 여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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