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경기북부 생생후기 > 남한산성 이야기

추천여행기

남한산성 이야기

Facebook에 게시물 공유하기Twitter에 게시물 공유하기Email에 게시물 공유하기Print에 게시물 공유하기Share

2007년 처음 출간되었을 때 답답함을 꾹꾹 눌러 담으며 읽었던 남한산성을

우리 도서관 독서모임에서 이달의 책으로 선정해서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읽기 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우리나라 상황과

병자호란의 이야기를 한국사 쌤으로부터 강의를 들었습니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병자호란 후 끌려갔던 수많은 우리 백성들.

그들이 청나라에서 당했던 치욕적인 일들.

그리고 임금이 남한산성에 47일을 있는 동안 서울, 경기의 백성들이 당했던 고통에

아픔을 느끼며 혼자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문장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읽히기는 커녕 남한산성 안의 상황처럼 느리게 읽혀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남한산성에 가 보고 싶어서 선생님 모시고 다녀왔어요.

인조가 계속 기거하던 내행전도 들러보고 서날쇠가 드나들었을 것 같은 암문

그리고 칸이 와서 인조가 행하는 망궐례를 내려다 봤던 벌봉도 멀리서나마 보고 왔습니다.

선생님은 남한산성을 치욕의 역사로 보지 말고 아름다운 성으로 보라고.

인조는 남한산성에서는 항복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

김훈의 남한산성입니다. 내용과는 달리 표지가 참 예쁘지요.

보통 풀, 잡초는 그 질긴 생명력으로 백성을 뜻하기도 하는데

앞 표지의 풀은 약간 쓰러져 있고 뒷표지에서는 똑바로 서 있습니다.

시듦과 곧음의 그 사이에 남한산성이 놓여있었다는 어떤 분의 말이 생각납니다.

남한산성 입구

남한산성 투어는 행궁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으로 2,000원이고 매주 월요일 쉽니다.

남한산성 안내 팻말

유네스코문화유산이 된 후부터인지 아니면 그 전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암튼 프로그램이 많은 것 같아요.

시간에 잘 맞춰서 가면 무료해설도 들을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남한산성의 지붕

저는 궁궐에 가면 지붕 위의 잡상을 늘 눈여겨 보는 것 같아요.

잡상은 요괴를 물리치고 액운을 막는다는 의미로 올려둔 토우를 말하는데

삼장법사부터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 그 뒤롤 잇는다고 해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삼장법사와 그의 제자들인지 궁금해지네요^^;;

행궁의 모습

남한산성에 여러 번 갔었는데 행궁에 들른 것은 처음이에요.

남한산성행궁은 인조 2년(1624년)에서 인조 4년(1626년)까지 대대적으로 축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강화도로 가려고 했는데

청나라 군데가 너무 빨리 오는 바람에 봉림대군을 비록산 다른 왕족들은 강화도로 피란을 갔지만

인조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남한산성으로 가게 되었다고 하네요.

모든 준비는 강화행궁에 준비를 해 두었는데 갑자기 남한산성으로 가게 되어 먹을 것도 부족하고

함께 간 군사들도 무기도 모든 것들이 부족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을 슬픈 역사로 보지 말라고 했지만

너무나 단아하고 예쁜 행궁과 남한산성을 보니 절로 슬퍼지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관람객들

내행전은 임금의 침전으로 행궁 내 건물 중 가장 격식이 높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을 읽다보면 끝까지 싸우자는 주전파 김상헌과

청과 화친을 하자는 주화파 최명길의 끝없는 말싸움을 하지요.

그들이 치열하게 말싸움을 했던 곳이 바로 이곳 내행전이에요.

다른 곳은 불을 땔 수 조차 없이 열악했던 환경이어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못 하는 인조가 나오고. 그리고 책에는

‘ …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라는 그 문장의 인조가 있었던 곳도 바로 이곳 내행전이구요.

남한산성의 모습

명나라가 스러져 가지만 명을 배신할 수 없었던 우리 인조는 1월 1일 이곳에서 망궐례를 행합니다.

정축 원단에 남한산성 내행전 마당에서 조선국왕이 북경을 향하여 명의 천자에게 올라는 행사.

그 망궐례를 멀리 벌봉에서 칸이 내려다 봅니다.

그리고 ‘ …조선은 저러한 나라였구나. 성이 이야기 속 같을수록 성문이 스스로 열리기는 쉽지 않겠구나…’

그리고 홍이포를 쏴서 헤쳐버릴까한다는 용골대의 말에 칸은 ‘ 쏘지 말라. 저들이 에법을 행하고 있지 않느냐…

정초에 화약냄새는 상서롭지 못하다..’라고 말합니다.

남한산성까지 쫓겨와 명을 향해 예를 행하는 인조와

그들이 예를 행하고 있는 중이나 쏘지 말라는 칸이 참으로 대조적으로 느껴졌던 장면입니다.

직접 가서 보니 엄청 먼 거리인 것 같았는데 홍이포가 저기서 이곳 내행전까지 날아온다고 하니 새삼 놀라웠습니다.

관람객들

병자호란 당시 왕이 군사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호궤를 이곳에서 행했으며

한봉에서 청나라 군이 홍이포를 쏘아 외행전 기둥을 맞췄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의 모습

이제 행궁을 나와 북문을 지나 연주봉에 올랐다 서문을 지나 수서장대로 해서 남문 쪽으로 내려오는 길을 갔습니다.

관람객들

여행하기 좋은 5월이지요. 어제는 덥고 자외선이 강할 거라는 예보가 있어서

우리 모두 모자에 선글라스, 물까지 준비하고 단단히 나갔는데

약간 바람도 불고 많이 덥지 않아서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이날 7.5km정도를 걸었고 1만보를 조금 더 걸어서 운동 잘 한 날이었어요.

모두들 집으로 돌아와 딥슬립했다는 이야기들로 커톡방이 좀 시끄러웠네요^^

남한산성 지도

이렇게 아름다운 남한산성이 백숙, 불륜… 이런 단어들과 함께 떠오르는 게 많이 안타깝습니다.

누군가 치욕스런 역사가 있던 곳이라 해서 그렇게 편하해 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암문

남한산성에는 5개 정도의(?) 암문이 있다고 하는데 대장장이였던 서날쇠가

김상헌의 부탁을 받고 임금의 문서를 전하러 떠났던 곳이 이곳이 아닐까…

남한산성의 모습 남한산성의 모습

옹성은 성문을 보로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겹을 더 둘러 쌓는 이중의 성벽을 말합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확보를 위해 성벽에 덧대어 설치한 시설물로 다른 성에서는 찾기 어렵다고 하네요.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의 모습 남한산성의 모습 남한산성의 모습 높은 곳에서 바라본 남한산성

연주봉 옹성에 올라서 바라본 풍경인데 미세먼지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미세먼지는 정말 어떻게 해야 없어지는 것인지ㅠ.ㅜ

남한산성의 모습

내려오는 길은 또다른 느낌을 줍니다.

그동안 남한산성에 올랐을 때는 숨차고 힘들고 간혹 아름다운 풍경들이 보였는데

선생님과 함께 그리고 책을 읽은 친구들과 함께 오르니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가슴 벅참과 아픔이 가슴에 그대로 내려 앉네요.

남한산성의 모습 남한산성의 모습 남한산성의 모습

원래 임금은 남문으로 다니는데 청에게 항복하러 나가던 인조는

곤룡포도 입지 못하고 이곳 서문을 통해 삼전도로 나갔습니다.

길이 너무 가팔라서 말이 나아가지를 못하자 인조가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하지요.

임금이 이 길을 걸어감으로써 이곳 남한산성의 백성들은 고통이 끝났을 것이고

수많은 사대부 여자들은 소현세자와 함께 청으로 끌려가 이루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는 정치가들의 몫인데 항상 그 고통은 백성들의 몫인 것 같습니다.

저는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칸 앞에 포박해 가야할 인물은 김상헌이라고 생각했는데

성 안에서 자경을 하려고 했던 김상헌은 나중에 청으로 끌려갔다 오기는 하지만

다시 돌아와 오래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김상헌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싸우자는 게 그의 명분이었을 테지만

왠지 오래오래 살았다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구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김상헌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던 것 만큼은 인정해줘야할 것도 같습니다.

0 추천

TAG 남한산성 남한산성행궁



댓글작성은 로그인하신 후 가능합니다.

해당 페이지의 만족도 조사에 많은 참여 부탁 드립니다.
오류신고 잘못된 관광정보를 발견하시면 신고해 주세요
만족도 조사

해당 페이지의 만족도 조사에 많은 참여 부탁 드립니다.


  • Facebook
  • KakaoTalk
  • Google Plus
  • Kakao Story
  •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