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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가을여행주간/조병화문학관에 담긴 애달픈 사랑/안성으로 문학기행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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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시 한편 적어 봅니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조병화

 

낙엽에 누워산다

낙엽끼리 모여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마시고 산다

비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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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 조병화 문학관에 다녀왔습니다.

시인의 호는 편운(片雲)

직접 도안한 편운동산입니다.

양쪽에 대문이 있고, 문학관청와헌,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한 묘막 편운재가 있지요.

시인의 호인 편운은 조각편(片), 구름운(雲)자를 써서 구름조각이 되어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던 심정을 뜻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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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시인은 1921년 5월 2일, 이곳 경기도 안성 난실리에서

아버지 60세, 어머니 40세에 얻은 귀한 늦둥이로 태어났습니다.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9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상경하게 됩니다.

1943년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동경고등사범학교 재학 중에 일본의 패전으로 귀국, 서울중학교 물리교사로 재직하게 되지요. 전공이 특이하게도 물리랍니다.

1949년 시집’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등단하여 시인의 길로 들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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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조병화 문학관은 시인이 대지를 제공하고 국고의 지원을 받아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늘 즐겨 쓰던 베레모와 파이프도 전시되어 있어서 시인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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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시인은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고, 시도 쓰는 사랑과 고독을 품고 사신 분이셨습니다.

시를 쓰면 동네 가게 아주머니한테 먼저 읽어 주고 어떠냐고 물었다는 시인의 소탈한 시는 그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수필을 읽듯 그냥 읽어 내려가면 그 안에 담긴 사랑도 고독도 바로 알 수 있지요.

 

고독하면 할수록 쓰고 또 썼다는 시인은 53권의 시집을 남겼고,

30여권의 수필집과 화집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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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더 많이 살기 위해 독서를 하고 여행을 했다고 하는 시인은 참 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독서와 여행은 인생을 더 많이 살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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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문학관에서 새로 알게 된 시인의 못다 한 사랑 이야기는 심금을 울립니다.

당신의 먼 얼굴이 비쳐 오르도록 술을 마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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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여인과의 숨겨진 로맨스

시인이 돌아가시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는 50여 장의 편지와 그림을 하나하나 읽어 보니

연인을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가슴에만 품고 살았을 그 시간들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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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도 마음이 아파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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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묘막으로 지었다는 편운재로 향합니다.

엄마가 아이들 업고 있는 하얀 동상이 인상적이지요.

평소에 나의 종교는 어머니다라고 할 만큼 시인의 효심은 지극해서 서재 한켠에 고인을 위한 재단을 만들어 놓고 위안을 삼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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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들어서기 전, 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살은 죽으면 썩는다’라고 씌어 있는데

부지런하셨던 시인의 어머니께서 평소에 늘 하시던 말씀이랍니다.

시인은 이 말을 평생 되새기며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살 수 있었다고…

 

편운재는 11월 20일까지 한시적 개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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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집필실의 모습을 그대로 조성해 놓았다는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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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도 수채화처럼 담백하게 그렸던 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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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월급의 대부분을 문인들과 마시는 술값 밥값으로 소진할 만큼 많은 예술인들과의 교류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 예술 하던 분들은 자유분방하여 동가숙서가식 했던 것에 비해 시인은 가정에 충실했었기에 사랑방으로 애용되었다고 하네요.

작가 김수영이 한동안 포로수용소에 갇혀 실종되었었는데 살아있다는 소식을 처음 전한 곳도 혜화동 102번지 시인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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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헌은 정년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집으로 집필이나 휴식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꿈의 귀향이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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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가 우거진 길을 지나가면 왼편에 모자 상이 있고, 조병화 시인, 부인 김준 여사,

‘해마다 봄이 되면’시비 앞에 어머니 진중 여사가 묻혀있는 묘역이 나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참 아늑한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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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나면 가을은 더욱 깊어지겠지요.

많은 이야기들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참 좋은 계절입니다.

묵혀둔 시집 한 권 들고 문학기행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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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가을여행주간 조병화문학관 편운재 편운조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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