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대군의 얼이 서린 호국도량, 관악사지]
관악사 창건에 관해 연주암지에 신라 문무왕 17년 의상조사가 의상대를 창건하는 동시에 관악사를 개산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태종 11년(1411)양령대군과 효령대군이 충령대군에게 세자위를 전위한 후 관악산에 올라 전위에 따른 심정을 달랬다고 하는데
효령대군은 이곳에서 2년간 수양을 하며 관악사를 고지(古址자)로부터 현 위치로 이축하면서 40간의 가람을 건설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1999년 과천시가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에 의뢰하여 발굴조사를 한 결과 도자기편, 기와편 등 출토유물이
15세기전반부터 18세기까지 나오고 있어 이곳 관악사지는 효령대군이 이전 조성한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관악사지는 적어도 6개 이상의 건물이 있었으나, 이는 일시에 건립된 것이 아니고 시기에 따라 일정한 가람을 건립하고
이것이 수해에 의해 폐사되며 인근으로 옮기거나 혹은 그 자리에 대지를 조성하여 새로운 가람을 건립하여 명맥을 유지하다
18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찰건물은 급경사 지역에 석축을 쌓아 평탄하게 만든 후 평탄대지를 따라 누층적으로 축조하였는데
이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인공적인 건물과 자연지형과 조화를 꾀하려는 전통적인 산지 가람의 배치 방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유일하게 소실된 것으로 조사된 연주대 바로 밑의 다지구 건물은 구국기도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