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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별 여행코스 「청년 김대건의 길을 걷다」 스탬프 투어

작성자관리자수정일2020-11-18

「청년 김대건의 길을 걷다」스탬프투어

용인시에서는 10월 15일부터 청년 김대건의 길을 걷다 스탬프투어를 시작했습니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김대건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이런 행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행사는 용인, 안성, 당진에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문화사업 공동추진인데 종교를 넘어서 모든 시민이 사색하며 쉴 수 있는 힐링명소로 조성하고 있습니다. 용인시의 스탬프투어 코스인 은이성지와 골배마실성지, 고초골공소와 손골성지를 소개합니다.

은이성지

은이성지 대표이미지

은이성지는 한국인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지이자 순교하기 전 공식적인 마지막 미사를 드린 곳입니다. 김대건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았던 상해 김가항 성당을 2016년 은이성지에 복원 건립하여 향토유적 제7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당진 솔뫼에서 태어나 1846년 순교하셨습니다.
계급과 차별이 존재하던 조선시대의 대한민국 최초의 사제였고 평등과 박애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양반이었음에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념을 지키며 26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종교적인 인물에 국한되지 않고 천연두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국제사회에 구제를 요청하였으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6년 앞선 조선의 지도 조선전도를 만들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려 노력하였습니다.
청년 김대건 길은 이곳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길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박해의 위험 속에서 밤마다 조심스럽게 삼덕고개를 걸어 다니며 사목 활동을 하던 길으로 이 길은 신부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곳이며 청년 김대건이 사제로서 신자들을 위해 열정을 불태운 길입니다. 또한 순교 후 신부의 시신을 안장하기까지의 이장경로이기도 합니다. 청년 김대건 길은 총 10.3km로 약 4시간 정도 걸립니다. 은이성지를 출발해서 신덕고개, 망덕고개, 애덕고개를 지나 미리내 성지까지 그 때 그 당시 신부님과 교우들이 처했던 환경을 생각하면서 걸어 보는 것도 아주 뜻 깊은 일이 될 것입니다. 청년 김대건 길을 걸으며 민족을 사랑했던 김대건 신부의 삶과 열정을 되새길 수 있고 시원하게 흐르는 은이 계곡을 시작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을 걸으며 일상에 지친 마음속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지에 도착하면 예쁜 노란색 박스 안에 스탬프를 찍을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참 예쁘게 되어있습니다. 단풍의 색과 잘 어울리는 스탬프투어 박스!

은이성지 이미지 2장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은이로 182
[스탬프함 위치] 성지 맞은편 청년 김대건길 종합안내판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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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정보
  • [버스]용인터미널에서 은이성지까지 마을버스 84번

골배마실성지

골배마실성지 대표이미지

골매마실 성지는 김대건 신부님이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떠나기 전까지 유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김대건신부의 부친 김재준 이냐시오 성인이 관헌에게 체포되었던 곳이자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어머니에게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드린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박해 받은 신자들이 꼭꼭 숨어들어 두려움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척박한 삶을 살았던 곳입니다.

골배마실성지 이미지 2장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12
[스탬프함 위치] 골배마실성지 안내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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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정보
  • [버스]용인터미널에서 양지파인리조트까지 10, 11번 버스- 도보 30분

고초골공소

고초골공소 대표이미지

고초골공소 경당은 근대기 천주교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한옥이 변모해 가는 흔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소는 작은 성당입니다. 상주하는 사제가 계시지 않은 경우 공소라고 합니다.
용인 고초골공소의 뿌리는 고초골 교우촌이며 교우촌이란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산중에 모여들어 형성된 마을을 일컫습니다. 한국천주교는 1784년에 선교사 없이 책을 통하여 평신도들에 의해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당시 유교사회이던 조선은 천주교를 사악한 종교로 여겨 약 100년 동안 박해를 하여 1만여명의 순교자를 내었습니다. 고종3년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고초골 교우촌 천주교인들은 한양에서 파견된 포졸들에게 잡혀가 순교하고 그들이 살던 고초골 마을은 불타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후 고종23년 1886년 조선과 프랑스의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조선에 선교의 자유가 허락되자 고초골에 다시 천주교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고초골공소는 오랜 박해를 견뎌내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지 불과 5년만인 1891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인근 마을 문촌리의 이주국장군 고택(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96호)의 부속 건물인 잠실(누에를 기르는 집)을 옮겨다 지은 것으로서 민가 건물을 옮겨 종교 건물로 변화시켰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현존 수원교구 한옥 공소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이 건물에서 종교의식과 공동체적 기도생활 그리고 자라나는 자녀들에 대한 종교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그로 인하여 고초골공소 공동체는 그 후 번성하였습니다. 지금도 교인들은 이 건물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고초골공소 이미지 2장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초골로 15
[스탬프함 위치]고초골공소 경당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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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정보
  • [버스]용인터미널에서 학일교차로까지 10, 11번 버스 – 도보3분

손골성지

손골성지 대표이미지

손골성지는 수원시와 용인시에 걸쳐 있는 광교산 기슭에 있습니다. 원래 손골성지에는 교우촌이 있었는데 교우촌은 천주교 박해 시기 박해를 피해 신자들만이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을 말합니다. 손골 교우촌은 현재 손골성지라고 불리는데 이곳은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조선의 언어와 풍습을 익히던 장소였습니다. 손골성지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프랑스선교사 도리 성인과 오메르트 성인을 기념하며 아울러 박해시대때 손골교우촌에서 살았던 순교자들과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기리기도합니다.

손골성지 이미지 2장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로 437번길 67
[스탬프함 위치] 손골기념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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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정보
  • [버스]동천역에서 SM루빌까지 마을버스 17-1번 – 도보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