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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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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관리자수정일2012-11-02

회암사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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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이다. 그러나 회암사가 지어지기 이전에도 이곳에는 이미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전기에 이색(李穡)이 지은 “천보산회암사수조기”에 의하면, 고려 우왕 2년(1376) 지공의 제자 나옹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불법이 크게 번성한다.”는 말을 믿고 절을 크게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하는데,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다.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다. 이후 순조(純祖) 21년(1821)에 경기지방 승려들이 힘을 모아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등 세 선사의 부도(浮屠)와 비(碑)를 중수하고 옛터 옆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라 하여 절이름을 계승하였다. 이 사찰은 가람배치에 있어 평지가 아닌 산간에 있는 절이면서 8단의 단축을 이루면서 남쪽에 남회랑(南回廊)을 둔 것은 고려시대의 궁궐이나 사찰배치의 특징을 보인다. 부근에는 고려시대에 세운 나옹의 행적을 새긴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 제 387호)를 비롯하여, 지공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9호), 회암사무학대사홍융탑 (보물 제 388호) 등 중요 문화재들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