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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반월성지

관광 역사관광 산성/성곽/보루

작성자관리자수정일2012-11-02

반월성지1
반월성지2
이용안내
  • 지역

    포천

  • 주소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청군로3290번길 19

  • 문의전화

    031-538-2114

둘레 1,080m, 동서 길이 490m, 남북 길이 150m. 현존 성벽 높이 4∼5m. 사적 제403호.

산성의 형태가 마치 반달과 같다고 해서 반월산성이라고 부른다.
테뫼식 석축산성인 반월산성은 동쪽과 서쪽은 험준한 산맥으로 차단되고,
그 사이에 축석령에서 시작된 고교천이 남에서 북으로 흘러가며 형성된 분지의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동서남북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반월산성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기록이 없으며, 『여지도서(輿)』,
『대동지지()』등 후대의 문헌에서는 1618년(광해군10)에 판관 이성구가 개축하여
1623년까지 사용하였으며, 둘레가 1,930척이고 성안에는 두세 곳의 우물 및 장령, 삼대,
기우제단, 성황사 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산성은 1994년강남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 의하여 지표조사가 실시되었고,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구조와 성격이 밝혀지게 되었다.
 

성벽은 내탁에 의한 판축을 주로 하였다. 성돌은 대부분 주변지역에서 채석한 것으로 보이는 화강암이며,
축성방법은 지형적 여건을 감안하여 암반을 수직에 가깝게 파들어간 뒤 1∼2단을 형성한 다음, 암반 상부를 다듬고,
그 위에 35×17㎝∼43×20㎝ 크기의 잘 다듬어진 석재를 쌓아올렸다. 각 단은 2∼6㎝ 정도 퇴물림을 하였고,
바른층쌓기로 정교하게 쌓아서 틈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급경사 지역에는 유단식 성벽 쌓기를 하였다.
 

성벽 위에 여장시설은 확인되지 않으며, 성벽 안쪽에는 대략 7∼8m 정도 폭의 회곽도()를 만들어
병력의 신속한 이동과 배치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문지()는 남문지와 북문지 두 곳이 확인되었다. 남문지는 남벽에서 서쪽으로 꺾이는 지점에 설치되었으며,
반월산성의 주출입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지의 폭은 2.64m이고 길이는 11m 정도이다.
북문지는 북벽 평탄대지 위에 설치되어 있는데 구조는 평거식이며 규모는 길이가 7.5m, 폭이 1.48m이다.
 

치성()은 남치성, 서치성, 북서치성, 동치성 등 모두 네 곳이 확인되었다.
남치성은 남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규모는 길이 13.9m, 너비 8.8m, 현존 최고높이 5m이다.
서치성은 서벽의 중간지점에 있으며, 길이 14.3m, 너비 4.6m이다. 북서치성은 서벽과 북벽이 만나는 회절부에 위치하며,
길이 9.2m, 너비 4.5m, 현존 높이 2.9m이다. 동치성은 동벽이 남쪽으로 꺾이는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 6.6m, 너비 5.9m, 현존 높이 4.5m이다.
 

건물지는 헬기장 주변과 망대지 뒤쪽, 현재 성안으로 진입하는 출입구 부분 등 여섯 곳에 걸쳐 확인되었다.
장대지는 두 곳이 있으며, 우물지도 두 곳이 확인되었다. 우물은 원형으로 돌을 쌓아서 만들었으며,
직경은 1.7m 정도이고, 6-7단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다.
 

반월산성에서는 기와 및 토기조각 외에도 석기류와 철기류 등 귀중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1995년 발굴조사 때 출토된 “(마홀수해공구단)” 명() 기와는 고대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마홀()은 고구려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설치했던 군명인데 암키와에 돋을새김으로 글자를 찍었다.

토기류는 무문토기편에서부터, 백제토기로 추정되는 원저호들과, 통일신라대의 완과 대부완, 단경호류등 긴 시간대에
걸친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 외의 유물로는 철제 초두()와 철낫, 철제도끼, 철촉() 등이 있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반월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성되어 통일신라시기까지 사용되다가 고려시대에는 폐성이 되었으며,
조선시대 광해군 10년 후금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개축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반월산성의 중심 연대는 대략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데, 고구려에 의하여 초축()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단언을 내리기에는 아직 증빙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