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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정도전선생사당

관광 역사관광 향교/사당/서원

작성자콘텐츠관리자작성일2018-07-24 09:35:36

정도전선생사당1
정도전선생사당2
정도전선생사당3
정도전선생사당4
정도전선생사당5
이용안내
  • 지역

    평택

  • 주소

    경기 평택시 진위면 은산길 80-15

  • 문의전화

    031-8024-3213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며, 조선개국의 으뜸공신인 삼봉 정도전(鄭道傳)을 모신 사당이다.

정도전선생의 사당은 송탄 출장소에서 1번 국도를 따라 북진하다 하북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3정도 가면 진위면 소재지가 나오고, 
이곳에서 16번 군도를 따라 3km정도 가면 '삼봉집 목판본'이라는 팻말이 보이고 조금 더 가서 보면 은산2리 마을 중턱에 
정도전선생 사당이 위치한다.

정도전은 고려말기와 조선초기의 대학자이며 탁월한 정치가로서 숭앙을 받아오던 중, 제1차 왕자의 난(1398년) 때에 이방원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뒤 모든 훈작이 삭훈되었다가, 후세에 와서 경복궁 재건을 계기로 정도전의 위업이 높이 평가됨으로써 
고종2년(1865) 9월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한양의 설계자인 정도전의 공훈과 지위를 회복시키고 시호를 내려 제사를 받들어 
후손을 세움에 관한 조항을 마련하라는 명을 신정왕후(24대 헌종의 모후)의 명으로 내렸다. 1870년 문헌(文憲)이라는 시호와 함께 
유종공종(儒宗功宗)이라는 편액을 하사하고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고, 16대손 정응기(鄭應夔)를 사손(祀孫:조상의 제사를 맡아
 받드는 자손)으로 정하여 묘를 세우고 이를 주관하게 하며 대대로 음직(蔭職:고려·조선 시대 부(父)나 조부(祖父)가 관직생활을 했거나 
국가에 공을 세웠을 경우, 그 자손을 특별히 과거를 보지 않고 등용하는 제도)을 세습하게 하였다. 이로써 억울하게 죽은 한이 풀어지게 
되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하여 무덤을 만들지는 못했다.

고종9년(1872) 봄에 정도전의 후손과 죽산부사(竹山府使) 이현경의 주도하에 양성현 양성원면(현재의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 287번지에 
3간 남짓한 문헌사라는 사당을 지은 후, 같은 해 4월 2일 국왕의 정도전에 대한 제사를 죽산부사가 대신해 인근 7개 고을 수령과 함께 사당에
서 올렸다. 그 후 1912년에 봉화정씨문중(奉化鄭氏門中)에서 옛 양성현 성은면 산하리 287번지(현재의 진위면 은산리 287번지)로 사우를
 옮겨 증축하였고, 1922년 봄에 18대손이 조상의 묘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여러 종친들이 상의하여 제사를 지내는 단을 설치하였으며, 
장소가 좁아 1930년 당시 종가터인 은산리 202번지로 이전하였으며 이후 1970년에 해체하고 북동쪽 20여보 앞으로 내서 증개축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6년 3월 5일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된 사당의 규모는 대지 6,000㎡이며 정도전의 시호를 따서 지은 문헌사와 삼봉집 목판을 보관하는 
판각고로 구성되며, 솟을대문(좌우의 행랑채보다 기둥을 훨씬 높여 우뚝 솟게 짓는 대문)인 외삼문, 좌측 담장에는 호박돌로 쌓고 위에
 기와를 얹은 협문이 있다.

사당인 문헌사는 정면 3간, 측면 2간의 맞배지붕이며 "유학으로도 으뜸, 나라에 대한 공적으로도 으뜸'이라는 뜻의 
'유종공종(儒宗功宗)'이라는 현판이 중앙에 걸려 있고, 사당 내부에는 정도전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다. 
문헌사의 정면에는 솟을대문 형식인 3간 규모의 외삼문인 홍전문이 있는데 원형초석에 원형기둥으로 공포형태는 이익공으로 맞배지붕의
 한식 골기와를 얹었다. 종중을 중심으로 매년 봄가을에 제향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