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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이경석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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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콘텐츠관리자작성일2018-11-22 10:38:55

이경석 선생 묘1
이용안내
  • 지역

    성남

  • 주소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 50-7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은 인조에서 효종, 현종의 3대에 걸쳐 나라에 공헌한 재상이었다. 본관은 전주,
자는 상보(尙輔), 호는 쌍계(雙磎) 또는 백헌(白軒)이다. 아버지는 유간(惟侃)이며 어머니는 개성고씨 대호군 고한량(高漢良)의 딸이다.

이경석은 1613(광해군 5)년 진사가 되고 1617년 증광별시에 급제하였으나, 이듬해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 상소에 가담하지 않아
삭적되었다. 1623(인조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호종하였으며,
1627(인조 5)년 정묘호란 때는 체찰사 장면(張晩)의 종사관으로서 강원도 군사 모집과 군량미 조달에 힘썼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대사헌, 부제학으로서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고, 이듬해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비문을 찬진(撰進)하였다.
1642(인조 20)년 심양에서 돌아와 대사헌, 좌의정 등을 거쳐 1649(효종 1)년에 영의정에 올라 효종의 북벌정책에 참여하였다.
1668(현종 9)년에 궤장을 하사받았다. 이와 관련한 사궤장과 <사궤장연회도첩> 이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930호로 지정되었다. 이경석은 벼슬에서 물러난 후 성남의 판교로 옮겨 살다가, 뒤에 지금의 석운동에서 만년을 보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방산서원(方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백헌집(白軒集)』등 유집 50여 권이 있다.

그의 묘는 부인 전주유씨와 합장묘이며, 2단의 사성으로 후면을 정리하였고 봉분 앞에는 장대석을 쌓아 기단을 조성하였다.
봉분 좌우에는 망주석과 금관조복형(金冠朝服形) 문인석이 각 1쌍씩 서 있다. 망주석은 8각으로 극히 화려하며 석수 조각이 양각되어 있다.
봉분 중앙에 혼유석, 상석과 계체석, 4각과 6각의 향로석 2기, 장명등이 있으며, 봉분 우측에 상석과 4각 향로석 등 다수의 석물이 있다.
신도비의 규모는 총 높이 475cm, 비 높이 259cm, 너비 84cm, 두께 40cm이다.

비문은 박세당이 짓고 이광사가 쓰고 전액을 하였으며 1754(영조 30)년에 건립되었으나, 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마모되어
1975년 개수하였다. 묘갈은 1751(영조 27)년에 건립되었는데, 갈문은 현손 광회와 광사가 각각 짓고 썼다. 비의 규모는 53X22X162cm이다.

이경석 선생 묘는 1985년에 경기도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으며, 전주이씨 백헌공파 종중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