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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

관광 역사관광 문화재/기념물

작성자콘텐츠관리자작성일2018-11-22 10:25:52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1
이용안내
  • 지역

    성남

  • 주소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

분당구 율동 도랫말에 관찰사 한혜(韓惠, 1403~1431)의 아들 문정공 한계희(韓繼禧, 1423~1482)의 후손이 최초로 정착하였다.

한계희의 묘를 분당저수지 위쪽에 쓰고 이 일대를 사패지(賜牌地)로 받고 그 후손이 세거하면서 ‘한씨촌’을 형성하였다.
한계희는 조선 초 기내훈구파에 속하는 유학자로 시호는 문정이다.
우승지, 좌승지, 공조참판, 이조참판, 이조판서, 좌찬성을 역임하였고 특히 세조의 신임을 받았다.

최항 등과 함께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447(성종 8)년 『의방유취(醫方類聚)』 간행을 주관하였다.
그는 아들 여섯을 두었는데, 한사문(韓士文, 1446~1507)은 시호는 공간이며 대사헌, 병조참판, 공조참판, 공조판서,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서천군에 봉해졌고, 한사무(韓士武, 1452~1482)는 한성판관, 한사신(韓士信)은 삼등현령, 한사개(韓士介, 1453~1521)는 시호가 영흥이며 영흥부사와 해주, 광주, 진주 등의 목사를 역임하였다.

한사무의 아들 한승원(韓承元)은 정선군수, 한승형(韓承亨)은 성주목사, 한승정(韓承貞)은 대사간,
한승인(韓承仁)은 호군, 한승의(韓承義)는 처사였다.

분당구 율동에는 주로 한사신의 차남 도정공 한석(韓碩, 1479~?)의 후손이 많은데, 한석은 훈련원도정 겸 오위도총부부총관, 아들 한인원(韓仁源)은 동북현감, 한예원(韓禮源)은 감찰, 한지원(韓智源)은 교리를 역임하였다.

한지원의 아들 한술(韓術)은 참판, 한회(韓懷)는 승지였다.
충성공파 후손인 한순흠(韓淳欽, 1933~)의 19대조로 호조참의와 승정원 부정자를 지낸 한욱(韓勖)의 장남 한귀영(韓貴榮)은 어모장군,
차남 한귀익(韓貴益)은 용양위부사가 되고, 한귀익의 아들 한진선(韓振善)은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한계희 신도비의 건립 연대는 1483(성종 14)년으로 조선 초의 전형적 양식으로 화관석, 비신, 기대로 이루어져있다.

화관석과 비신이 하나의 화강편마암으로 되어 있으며, 규모는 화관석 72X23X52cm이고 비신 61×18×152cm, 기대 115×59×44cm이다.
신도비문은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찬하고 안침(安琛, 1445~1515)이 전과 글씨를 썼다.

한사문의 신도비는 총고 231㎝의 규모로 기대의 하부 전‧후면에는 각각 구획을 나누고 그 안에는 안상문을, 상부에는 연당초문을 조각하였다.
1508(중종 3)년에 세웠으며 신용개(申用漑, 1463∼1519)가 찬하였고 신흠(申欽, 1566∼1628)이 전과 글씨를 썼다.
한사개의 신도비 총고는 206.5㎝이고 전면에는 운문, 상단 중앙부에는 초승달이 조각되어 있는데 신도비에 해와 달이 조각된 경우는 드물다.

김안로(金安老, 1481~1537)가 찬 하였으며 1521(중종 16)년에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