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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이수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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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콘텐츠관리자작성일2018-11-22 10:35:41

이수 선생 묘1
이용안내
  • 지역

    성남

  • 주소

    성남시 분당구 궁내로 52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숙공 이수(李晬, 1569~1645)는 인조대의 종친(宗親)으로 자는 명원(明遠)이며, 시호(諡號)는 충숙(忠肅)이다.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 1524~1581)의 손자이자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 1538~1611)의 아들이다.
학문이 뛰어나 1583(선조 16)년 15세 나이로 부정(副正)에 봉해졌고, 임진왜란 때에는 선전관(宣傳官)으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후 선원록(璿源錄)의 편수(編修)에 참여하였으며 1613(광해군 5)년 귀천군(龜川君)으로 진봉(進封)되었다. 1617(광해군 9)년 전라남도 순천에 유배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관직에 복귀하게 되었다. 1624(인조 2)년에 이괄(李适)의 난 때 공을 세우고,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에도 인조를 강화도로 호종하여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소덕대부(昭德大夫)에 올라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을 역임하였다. 죽은 뒤 정1품 벼슬만 기록할 수 있는 현록대부(顯錄大夫)에 오르기도 했다.
이수선생 묘는 부인 정씨와의 합장묘이고, 조성된 봉분 아랫부분에는 각각 팔각 호석을 설치하여 봉토의 유실을 방지하였다. 그 좌우에는 망주석(높이 172㎝)과 문인석(높이 172㎝)이 한 쌍씩 배치되어 있다. 또한 묘역에는 상석(31X98X162㎝)과 혼유석, 향로석(높이 36㎝)이 있다. 고석 대신 방형의 석재 2개로 상석을 받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며, 망주석에는 염의(簾衣)와 운각(雲角)을 장식하였다.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문인석은 안정적인 신체 비례를 갖추고 있으나, 홀을 쥐고 있는 양손이 미숙하게 표현되었다. 봉분 사이에는 묘갈(높이 174㎝)이 세워져 있다.
비신(67X21X150㎝)과 하단이 마멸되었으나 전면의 대자(大字)를 통해 묘에 묻힌 사람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나머지 삼면에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이 지은 묘갈문을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이 기록하였으나 마모가 심한 상태이고 건립 연대 역시 미상이다. 묘역 아래의 신도비(높이 279㎝)의 비문은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가 찬하여 전해지다가 1897(광무 1)년에 비로소 10세손 부호군(副護軍) 이승휘(李承徽)가 비신 앞뒤에 글씨를 쓰고, 9세손 이봉현(李奉鉉)이 전액(篆額)을 올려 완공하였다. 비문의 말미에는 12세손 이장섭(李章燮)이 건립 과정을 서술한 추기(追記)를 새겨 놓았다. 또한 개석에는 팔작지붕을 얹었고, 방부에는 안상(眼象)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