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은이성지

관광 테마관광 종교성지

작성자관리자수정일2020-11-06

은이성지1
은이성지2
은이성지3
은이성지4
이용안내
  • 지역

    용인

  •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632-1

  • 문의전화

    031-338-1702

  • 영업시간

    매일 00:00 - 24:00
    미사 매일 11:00(월요일 제외)

  • 휴무일

    연중무휴

  • 이용요금

    무료

은이마을은 박해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모여 살게 되면서 시작된 교우촌으로, '은이'(隱里)란 글자 그대로 숨어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은이공소는 1836년 1월 13일, 조선 최초의 선교사 프랑스인 모방 신부가 소년 김대건에게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와 첫영성체를 주고 신학생으로 선발한 곳이다. 또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가 1845년 11월경부터 이듬해 부활대축일까지 약 6개월동안 기거하면서 사목활동을 전개한 곳이다. 곧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지가 바로 은이 공소로서 바로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는 조선 땅에서는 처음으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고, 체포되기 직전 공식적으로 최후의 미사를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


김대건의 본관은 김해이고, 증조부는 김진후(비오, 1738∼1814)이며. 조부는 김택현이다. 부친 김제준(이냐시오, 1796∼1839)성인과 모친 고 우르술라의 장남으로 충청도 솔뫼에서 출생하였다. 대건의 아명은 재복(再福)이며, 보명(譜名)은 지식(芝植)으로 관명(冠名)은 대건(大建)이다.
김대건의 가문에 처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분은 증조부 김진후였다. 그는 1791년(신해박해)에 체포되어 1801년(신유박해)때 유배되었다가 1805년 다시 잡혀 충청도 해미에서 10년간의 옥중 생활 중 1814년에 순교하였다. 김대건의 조부 김택현과 가족들은 1827년 경 박해를 피해 충청도 솔뫼에서 용인으로 피신하여 골배마실(한덕동 경유)에 정착하였다. 이때 소년 김대건의 나이 7세 였다.


'골배마실'이라는 지명은 이곳이 옛날부터 첩첩산중인데다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서 뱀마을, 즉'배마실'이라고 부르던 동네에서 시작되는 산골짜기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골배마실 성지는 김대건의 소년시절의 향취가 남아있는 곳이요, 성소의 꿈을 키우던 장소로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기다리며 신앙에의 열정을 키운 장소이다. 사제가 되어 돌아와서는 어머니와 첫 상봉한 장소이기도 하다. 옛날부터 신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김대건 신부의 집터가 있던 장소로 알려져 왔던 이곳은 1961년 양지 본당 5대 정원진 루가 신부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돌절구와 갖가지 생활도구, 즉 맷돌, 우물터, 구들장 등을 발견하면서 성지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