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나의여행기 조선 왕실사찰 '회암사'는 왜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작성자권지은수정일2020-08-31

 



회암사는, 고려말 전국 사찰의 총본사이자 조선전기 선종의 본찰
고려말 조선초 아마도 가장 큰 규모의 가람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창건에 상당한 역할을 한 무학대사가 머물렀을 뿐 아니라
태조가 정사를 보기도 하고 왕위를 물려준 뒤 머무르기도 했을 만큼 왕실과 가까워
이성계의 '또 다른 왕궁'이라고까지 불린 왕실 사찰이었거든요.

그런데~~ 미스터리한 것은
이렇게 큰 사찰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기록 하나 남아있지 않을 만큼
회암사의 모든 것이 깔끔하게 지워져 버렸다는 사실!
대체 조선 왕실사찰 '회암사'는 왜 사라져야 했을까요.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사적 제128호 회암사지 발굴조사 사업을 진행하면서 출토된
유물의 보관, 전시, 교육을 위해 건립한 역사 박물관으로 2012년 10월 19일 개관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건립된 박물관인 만큼 내외부 전시 공간이 세련되고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더라구요.


[박물관 관람시간]
3월~10월 09:00~18:00 (입장 마감은 17:00)
11~2월 09:00~17:00 (입장 마감은 16:00)
휴관일: 1월 1일, 설날, 추석,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화요일 휴관)
예약 및 문의: 031-8082-4187

[박물관 관람료]
어른 2,000 / 청소년 1,500 / 초등 1,000원




회암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회암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책이 3권 전해지고 있는데요.
그 중 하나인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명종 4년(1174년) 금나라 사신이 회암사에 들렀다는 기록이 있어

12세기 후반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다,라고만 추정하고 있습니다.
 





회암사와 관련있는 승려들: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

1328년 인도의 승려 '지공선사'의 뜻에 따라 그의 제자인 '나옹선사'가 크게 중창하였고
조선시대 이르러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머물면서 왕실의 후원으로 많은 불사가 이뤄졌습니다.
태조가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 궁실을 짓고 살아 '왕의 행궁'으로서의 역할도 했다고 전해지며
효령대군, 정희왕후, 문정왕후 등 왕실 인물들의 후원을 받아 왕살사찰로 존재했었습니다.





조선왕실의 행렬: 왕이 참여하는 공식행사에는 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대규모 호위병사와 의장기, 무기, 고취악대 등이 동원됐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재연한 모형
​.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에는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은, 지붕 위 잡상



용, 봉황, 범, 연꽃 등 왕실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무늬를 사용한 기와
들도
섬세하고 고급스럽습니다.
이곳이 왕이 머물렀던 곳임을 증명하는 유물들이구요.




용두라는 지붕 장식이구요


토수라는 처마 끝 장식입니다. 특히 토수는, 장식적인 역할 뿐 아니라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가 썪지 않도록 하는 기능적인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회암사지박물관 내에서
가장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은 위 사진 속 '청동금탁'이라고 하는데요.
현재 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건 복제품이고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전시 중이라고 합니다.
금탁은 건물 추녀 끝에 달았던 종 모양의 금속 장식으로
금탁을 만들 때 제작을 후원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겉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금탁 겉면에 씌어 있는 '명문'을 통해서

무학대사, 태조 이성계, 신덕왕후 강씨, 의안대군 이방석 등이
제작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회암사는
현재 터만 남아 있는 유적인데요.



3권의 책에 남아 있는 기록
을 바탕으로 모형과 영상을 통해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습니다.
회암사라는 사찰의 규모와 위상이 어떠했는지, 왕실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사찰의 중심 건물(흔히 대웅전이라고 하는)인 '보광전'입니다. 2층으로 보이는 1층짜리 건물.

회암사는 일반적인 사찰 건축과 달리
궁궐 건축의 건물구조나 양식이 나타나는데
이 또한 모형으로 잘 구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서승당'이라고 승려들이 참선하는 선방으로 사용된 건물은
바닥보다 45cm 정도 높게 설치된 'ㅌ'자 형의 침상식 구들이 서로 마주보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군대 내부반 침상 연상하시면 된다는. 



건물 구석구석 온기를 골고루 보내기 위해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 설계된 구들인데요.
4개의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49일간 온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절개 부위가 녹아있는 부처상' 등은
회암사에 큰 화재가 있었음을, 그 때문에 이 큰 사찰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추정하는 근거가 됩니다.




중종의 계비였던
'문정왕후'가 아들 '명종'의 만수무강가 후손 탄생을 기원하며
불화 400점을 제작, 회암사에 공양했다고 하는데요.
숭유 억불의 기조 아래에서도 왕실 여인들의 불심은 지극했나 봅니다.
하지만 불화 제작에 상당량의 금이 사용되어서 그에 대한 원성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400점의 불화는 대부분 흩어져 미국와 일본 등에 6점이 확인되고 있으며
'약사여래삼존도' 등 일부만 회암사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박물관에서 공부한 내용을 직접 확인하러
'회암사지' 유적이 있는 곳으로 나가 보았는데요.
봄에는 '왕실 축제'도 열리나 봅니다. 올해는 4월 27일에 열렸더라구요.




박물관 주차장에 유치원 버스가 엄청 많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하기 딱 좋은 공원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시멘트 공장과 밭이 있던 곳인데 '회암사지' 유적임이 확인된 후
양주시에서 1997년부터 매입해서 발굴 작업을 진행해 왔다고 합니다.




특이하게
회암사의 일주문은 일반 사찰의 일주문 형태와 달리
중국의 '패루'처럼 화려한 스타일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일주문에서부터 사다리꼴로 좁혀지면서 어도(왕이 걷는 길)가 이어지고
어도에는 돌이 깔려져 있습니다.

전체 유적지는 천보산 남쪽의 완만한 경사면에 만평 정도 넓이의 평지에 자리잡고 있구요.
북에서 남쪽으로 계단식으로 8개 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2~8단지 외곽에는 담장이 둘러져 있습니다.
종교적인 영역과 생활 영역, 정치적 영역이 공존하고 있고
건물 배치가 고대 가람 배치를 따르면서도 궁궐의 건물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배치했다고 합니다.




회암사지에서
온돌 유적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것이 바로 배수 체계인데요.
천보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사찰 내외부로 끌어들여
지상과 지하로 유기적으로 연결해 활용하면서
최종적으로 남쪽의 연못지로 흘러가 모이도록 설계해 놓았다고 합니다.
기능적인 면 뿐 아니라 조경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섬세한 배수 설계라고 하네요.



중간 중간 배수가 되도록 집수구(요즘으로 따지면 맨홀)가 있습니다.



거대한 맷돌인데 이걸
1~2사람이 인력으로 돌렸을 거라고 합니다.
두부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발굴 작업을 하면서 복원된 우물!
새로 만든 거라 오래된 석조 유적과 확연히 색이나 형태가 구분됩니다.
우물을 발굴할 때 유물이 많이 나올 것으로 발굴팀이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의외로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큰 실망을 하기도 했다는 발굴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네요.




최대 16명까지 사용 가능
했을 거라고 추정되는 깊이가 4.7m나 되는 해우소 건물.
학자들이 처음 이 해우소 유적을 냉빙고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었다는데
석실 내부 퇴적토에서 기생충 알이 나와서 해우소(화장실)였음이 확인됐다고 합니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뒤에 손을 씻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사진 속 유적입니다


보광전 앞에 설치된 정체 모를 단은, 아마도 불을 밝히는 단지가 올려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설사님이 이해를 돕기 위해 이미지를 보여주시기도 했는데요.
회암사지 유적을 방문할 때에는 가능하면 해설사 해설을 필히 들으면서 둘러보시길 추천합니다.
해설 없이 보면 고고학이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겐 그냥 돌덩이로만 보일 것 같거든요.
해설을 들으면서 상상을 더하면서 유적을 둘러보면 그 심심한 풍경이 흥미진진한 장면으로 바뀐다는.

문화관광해설은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10:00~17:00 (화~일요일)
예약문의: 031-865-4080



요긴
보광전지인데요. '보광전'은 광명으로 불법을 시방 세계에 널리 비춘다는
법신불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봉안하는 법당입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
정면 5칸, 2층으로 보이는 1층짜리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합니다.

회암사 관련 기록은
이색의 목은집에 가장 많은 내용이 전해져 온다는데
발굴된 유적지가 주는 정보몇몇 서적에서 전하는 기록만으로도
사라져 버린 건물을 다시 구현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보광전 뒤쪽에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청지'!
전형적인 궁궐 건물로 아마 이성계가 머물며 정무를 봤을 것으로 생각되는 공간입니다.



유적 동북쪽 끝에 위치한
'부도탑'.
6m 정도 높이의 팔각원당형 석조 부도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불탑으로 추정됩니다.
8각의 기단 위에 용, 기린, 꽃 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고
하늘에서 보면 연꽃이 피어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답니다.



회암사지는 명종 때 없어졌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기록이 전혀 없어서
이 조선시대 최대 가람이 그것도 왕실의 비호를 받던 왕실사찰이
대체 언제 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는데요.
'카더라' 찌라시로 전혀지는 가설은 있지만... 그것은 공식적으로 인정된 역사가 아니고
아마도 숭유억불의 사회적 분위기와 권력싸움의 정쟁 속에

누군가에 의해 파괴되고 철저히 지워진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입니다.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11(율정동 299-1)
Tel : 031-8082-4170~8

 

 

권지은의 프로필 이미지
작성자권지은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경기도와 글쓴이에게 있으며, 불법복제 임의도용을 금지합니다.

경기도관광포털 모든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