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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여행기 파주 임진각에 가면 꼭 들러봐야 할 곳 6·25전쟁납북자기념관

작성자이재형수정일2020-11-12

경기도 파주 하면 분단의 상징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임진각과 망배단, 자유의 다리,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녹슨 경의선 증기기관차 등입니다. 그만큼 전쟁의 아픔이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6·25전쟁 중 납북된 사람들의 기록을 따로 모아놓은 곳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입니다. 엊그제 임진각에 갔다가 둘러봤습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로 153
개관시간 화~일요일 09:30~17:00
관람료 무료(주차는 임진각 관광단지)
문의 031)930-6000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이곳은 통일부에서 2017년 11월에 개관했는데요, 임진각 입구에 있어도 사람들이 잘 몰라서 많이 찾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한 번 다녀와 보니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가진 납북자들의 기록이 많습니다. 임진각에 가면 꼭 한 번 들러보실 곳입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통일부에서 설립한 국립 6·25전쟁 납북자기념관(이하 납북자기념관)입니다. 이 기념관은 납북자 및 그 가족들의 명예 회복과 더불어 국민들과 함께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평화통일 의지를 다지기 위한 공간입니다. 기념관은 1층 전시관과 옥상 전망대로 구성돼 있습니다. 1층은 '임시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주제로 미디어와 6·25에 대한 특별전시실입니다. 그리고 2층은 상설전시관입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납북자기념관에 들어가면 입구 옆 안내센터에 방문자 기록을 해야 합니다. 코로나19 때문이죠.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니 천장에 대형 상들리에가 눈길을 끕니다. 포토 샹들리에입니다. '소용돌이 속으로'라는 주제로 납북 이전에 찍은 납북자 가족의 사진으로 구성됐습니다. 소용돌이 형상의 이 조형물은 뜻하지 않은 전쟁으로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간 납북자와 그 가족의 삶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진과 영상으로 구성된 이 조형물은 소용돌이를 돌아 본격적으로 '납북'을 이야기할 전시공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1층은 특별전시관 '임시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를 전시 중입니다. 6·25 한국전쟁 중에 북한과 벌였던 미디어전쟁에 대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 25일 아침,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 각 신문사 기자들은 북한의 침략을 알리는 호외를 발행했습니다. 이튿날 이들 신문사는 국방부의 남침발표 담화문을 머리기사로 보도했습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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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9월 28일 서울이 북한군에 점령되면서 9월 서울이 다시 수복될 때까지 신문 발행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6·25전쟁 보도 사진과 기사들은 해외 주요 시사잡지에 게재되어 전쟁의 과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었습니다. 당시의 신문과 한국전쟁 기사를 시간을 뛰어넘어 볼 수 있습니다. 종군기자나 포로를 비롯한 참전 군인들의 회고록이 발간되어 한국전쟁에 대한 다각적인 시선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전쟁 포화 속의 기록자가 종군기자입니다. 총과 칼이 아닌 펜과 카메라로 무장하고,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투 현장을 누비는 또 하나의 병사가 종군기자죠. 6·25전쟁에서도 그들은 있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주재 특파원 잭 제임스 기자의 전쟁 발발 뉴스 최초 보도를 시작으로, 6·25전쟁의 첫 기사 그리고 정전협정까지 3년간 남북한의 전쟁 소식을 알리기 위해 국내외 종군기자들은 위험천만한 전투현장의 일분일초를 전장의 군인들과 함께했습니다. 종군기자들이 사용했던 영문타자기가 인상깊습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특별전시관에서 눈길을 끈 것은 심리전입니다. 냉전체제가 가속화되면서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심리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등장시켰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심리전 효과를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펼쳤죠. 1947년부터 미국의 극동지역 사령부 정보참모부에서는 심리전과를 두어 본국의 정책을 기본으로 선전매체를 생산하도록 하는 하위 조직을 두었습니다. 6·25전쟁 발발 후 대한민국 국방부 정훈국은 미 심리전과의 검열 속에 다양한 선전물을 생산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이런 심리전물(삐라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다음은 2층 상설전시관으로 가보겠습니다. 이곳에는 납북의 배경과 원인, 납북의 전개과정과 납북자의 고통, 귀환노력과 납북자 가족의 아픔, 납북과 인권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 등이 벽에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납북관련 자료도 많고요. 어느 납북자의 양복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설명과 각종 자료를 통해 북한이 왜 무고한 사람들을 납북시켰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먼저 '납북(拉北)자'는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상설전시관에 설명된 자료를 읽어보니 6·25전쟁 이전에 남한에 거주하던 국민으로서 6·25전쟁 중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북한에 강제로 끌려가 북한 지역에 억류되거나 거주하게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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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북한은 구체적인 납북 계획을 세웠습니다. 남한에서 유명한 정치인, 유명 배우, 언론인, 공무원 등 엘리트 계층뿐만 아니라 18~45세의 무고한 민간인까지 강압적으로 북으로 이송했습니다. 약 10만여 명의 유명인 및 무고한 사람들이 끌려갔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최초의 전국 단위 납북자 명부인 '6·25사변 피랍 납치자 명부'에 82,959명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북한으로 끌려갔죠? 지금도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생사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 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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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북한은 왜 선량한 시민들을 납북시켰을까요? 북한은 체제 확립에 필요한 지식인 등 인적자원 수탈과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납북을 감행한 겁니다. 전시관에 있는 1950년도 '반동분자 및 월람자 명단'(정동파출소) 을 보니 20대부터 40대까지 젊은 사람 위주로 납북을 시켰습니다. 직업을 보니 경찰, 형사, 형무소간부, 상업, 공장지배인 등 다양한데요, 경찰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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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중앙에 '죽음의 행진'이라는 4분짜리 영상을 보니 북한은 남조선 인민들을 북으로 전출시키라는 명령을 전파했는데요, 그 이후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한 집안의 가장들이 영문도 모른 채 북한으로 끌려가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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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후 한국정부는 북한이 자행한 납북피해를 인지하고 납북자명부를 작성하는 등 문제해결에 적극 나섰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납북자는 없다'며 황당한 주장을 계속하면서 납북자들의 생사확인마저 거부하고 있습니다. 피해가족들은 아직도 기다리는데 말이죠.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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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자료 중 눈길을 끈 것은 중학생 납북자입니다. 1950년 가을 북한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인민군은 학생들까지 의용군이란 이름으로 강제로 동원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조동명 역시 숨어 지내다 발각돼 끌려갔습니다. 그 때 나왔던 통지표가 전시돼 있습니다. 종착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무고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지금 이 학생은 북한에서 잘 살고 있을까요?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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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피해가족의 생활상을 재현해놓은 곳입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가장이 보이지 않죠? 북한으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밥상을 보면 아버지이자 남편 밥과 수저도 놓여 있습니다. 언제나 돌아오나 하고 기다렸지만 오지 않습니다. 채울 수 없는 가장의 빈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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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이후 납북자 귀환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전시 납북자문제는 납북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현재 진행형의 고통입니다. 1950년 6.25전쟁 그 시간 그대로 멈춰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전시관에는 납북자들의 당시 사진과 오래된 시계가 걸려 있습니다. 납치된 그 시간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옷'이란 전시물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져옵니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마카오 천으로 맞추셨다는 아버지의 회색 양복입니다. 아무도 몰래 아버지 웃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봅니다. 소매가 흔들흔들 어깨 허리 품도 헐렁헐렁 아버지가 나를 안아주고 계신데 나는 아버지를 꿀어안지 못합니다.
<최영재(납북자 최영수의 아들)>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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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영상실에서는 6·25전쟁과 전시 납북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을 상영합니다. 영상은 총 3개가 상영됩니다. '1950년, 납북자 이야기'(6분), 다큐멘터리 '물망초의 꿈'(48분), 에니메이션 '아빠 금방 올게'(11분) 등입니다. 영상실 옆에는 휴게실을 겸한 디지털 라이브러리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휴대폰 충전도 할 수 있고요, 창밖을 바라보며 임진각 근처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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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관을 본 후 옥상 전망대로 올라갔습니다. 임진각, 평화누리광장은 물론 북한 땅이 저 멀리 보입니다. 남북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어감에 따라 파주 임진각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통일에 대한 열망 때문이겠죠. 하지만 납북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가 빨리 돌아오길 오늘도 기다립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이들의 바람이 점점 더 멀어지는 듯 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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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임진각에 있는 국립 6·25전쟁남북자기념관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전시납북 피해자의 문제를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로 인식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납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을 위로하며 가슴 아픈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곳이죠. 우리의 소중한 가족, 이웃이었던 납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며 무사생환을 기원합니다. 살아있다면 반드시 만나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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