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나의여행기 여주 가볼만한곳 천년의 가람 고달사지

작성자신명숙수정일2020-08-28

 

지난 추석명절 연휴 마지막 날 고즈넉한 풍경을 자아내는 여주 고달사지를 찾아 갑니다. 이곳에 가면 볼거리 보다는 뇌리속에 남아 있지 않은 그 무언가를 상상하기에 넘치도록 적합함이 넘쳐나 이따금식 찾게되는 곳입니다. 다른 계절보다는 겨울철에 찾으면 그 묘미가 더한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흰눈이 내린 날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는 기분이란 이른 새벽 집을 나와 첫차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선 그 어느해 겨울날 같은 느낌을 받곤 하는데요 고달사지는 크게 발굴지에서 보여지는 것으로 '가'구역 수행 및 생활 영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선종 산원에서 가장 중요한 설법 공간인 법당지와 승려들이 모여 좌선하는 공간인 승당지, 승려들이 머무르는 요사채 등으로 나뉘어 집니다. 또한 '나'구역는 불전 및 영당 영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높이에 따라 3단으로 조성된 대지에 불전 영역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터가 배치되었던 것을 알 수 있어 가름하며 상상속의 옛 고달사지를 그리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는 고달사지입니다. 누구와 함께여도, 혼자하는 여행으로도 찾기 편한 곳이 이곳으로 대중교통으로는 다소 불편한 곳이기는 하지만...가을날에 이곳 풍경이 궁굼하여 찾은 여주 가볼만한곳 고달사지입니다.

 

 

 

경사도가 완만하게 자리하고 있어 옛 사찰이 있을때 또한 동선이 어렵지 않았음을 보여주는데요 푸른 잔디와 곳곳에서 보여주는 흙이 있는 곳에는 건축물들이 있었음을 알려주는듯 합니다. 국보1점, 보물5점, 사적1점과 휴형문화재 1점 이외에 출토유물들이 출토된 곳입니다. 규모 또한 넓어 옛 사찰의 규모를 가름하게 됩니다. 그래도 중간 중간에 사리한 문화재들이 있어 가름하기에는 더 용이한 것 같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면 그 규모가 더욱 넓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입구에 수 백년된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그 나무 또한 이곳의 역사를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별도의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어 주차장에 주차 후 자박자박 걷게 됩니다.

 

 

 

 

우선 옛 절터를 뒤로하고 짧은 구간이지만, 걸어서 원종대사탑, 승탑이 자리한 곳을 먼저 찾게되는데요 어느 정도 거리까지는 잘 조성된 길이라 무리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추적 마지막 연휴날 찾았던 터라 주변에는 밤나무들이 밤송이를 땅에 떨어트리고 있어 길을 걷다 잠시 멈춰 보고 다시 걷기를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옛 절터 고달사지를 찾을 때는 꼭 함께 찾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보기드문 부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려함과 정교함이 보여지는 원종대사탑입니다. 보물 제7호원종대사탑, 원종대사 승탑과 함께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구름 무늬와 거북이가 몸을 앞으로 두고, 머리는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데요 용 네 마리가 구름 속으로 날고 있으며 위의 받침돌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탑 몸돌의 네 면에는 문짝 모양이 다른 네 면에는 사천왕 입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원종대사 찬유는 869년 신라(경문왕 9)태어나 958년 고려(광종9)에 입적한 고승으로 연대는 원종대사탑비의 비문에 따르면 977년(고려 경종2)추정됩니다.

 



500m앞으로 오를 것인가? 또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인가? 무척이나 고민을 하게 됩니다. 지난번 처럼 이번에도 뒤로하게 되는데요 훗날의 과제처럼 느껴지는 여주 상교리 석실묘를 찾아야겠습니다.


 

 

돌계단을 오르게 된 것은 국보 제4호 여주 가볼만한곳 고달사지 승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곳을 찾을때는 혹시 터만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작은 의구심이 들었는데요 막상 올라오니 떡하지 자리하고 있는 승탑을 보고는 이젠 꼭 올라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고달사지 승탑은 고달사지에 남이 있는 고려시대의 승탑으로 764년 통일신라시대(경덕왕 23)에 지어진 사찰로 전해집니다. 고려 광종 이후에는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사찰의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으며 이를 덥고 있는 지붕들은 두꺼운 편으로 모서리의 끝부분마다 꽃 조각이 달려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고려시대 전기인 10세기 무렵 세워졌을 것이라 추정하는데요 돌을 다듬은 솜씨가 세련된 우수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장엄함, 아름다움 등등 형용하기 부족할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원종대사탑비 보물 제6호입니다. 고달사지에 세워져 있는 비로 원종대사 찬유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신라(경문왕 9년) 869년에 태어난 원종대사가 958년(고려 왕종9)90세로 입적하자 광종은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 이름을 '혜진'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1915년 비 몸이 넘어지면서 여덟 조각으로 깨어지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 오다가 지금은 여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있을 것을 보게 됩니다. 거북 머리가 약간은 무섭게 보이며, 용머리에 가까우며 목이 짧고 앞을 또바로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점, 비 머리의 표현이 격동적이며 소용돌이치는 구름무늬 장식이 복잡한 것이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이어지는 탑비 형식이라 합니다.

 

 

 

 

원종대사탑비 진품을 볼 수 있는 여주박물관 여마관 1층 로비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유리관 내에 보존되어 있지만 진품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여주박물관 여마관 관람시간 : 09 : 00~17 : 00 11월~2월 / 09 : 00~18 : 00 3월~10월 매주 월요일 휴관

상주하고 있는 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석조대좌 보물제8호입니다. 이는 부처나 보살이 앉는 자리로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는 불상이 놓여 있지는 않지만, 보존 상태가 아주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764년(신라 경덕왕 23) 건축된 사찰로 전해지나 누가 지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보는내내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던 석조대좌입니다.



 

 

 

  

비가림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석조입니다. 이는 승려들이 물을 담아 두거나 곡물을 씻을 때 사용하던 용기로 원형, 팔각형, 직사각형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지만, 직사각형 형태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건물 안, 절의 우물가나 취사장 가까이에 두기도 하고, 중심 공간으로 진입하는 곳에 두고

부처님 앞에 나갈 때 손을 씻거나 입을 헹겨 몸을 청결히 하는 용도로 쓰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해 보입니다. 당시 석공의 기술력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수한 돌 다듬기 기법과 돋보이는 예술성이 뛰어난 석조이며, 석조를 통해 옛 고달사의 내력이나 위상을 알 수 있는데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7호입니다.


여주 고달사지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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