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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여행기 경기도 여주 가볼만한곳 - 영릉英陵,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 조선왕릉 최초 합장릉

작성자수정일2014-01-08

경기도 여주 가볼만한곳 / 영릉 / 조선왕릉

 

8남2녀를 두어 조선 왕비 가운데 가장 많은 자녀를 둔 왕비가 영면하신 영릉英陵입니다.

지난 연말, 여주시 능서면 조선 4대 세종(1397~1450)과 비 소헌왕후(1395~1446)심씨의 합장릉인 영릉을 방문했습니다.

여주에 자리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심씨의 능인 영릉 입구.

영녕릉英寧陵으로 부르지요.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인 영릉英陵과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인 영릉寧陵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와서 시간이 촉박해 오늘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인 영릉英陵만 뵙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 영릉과 효종 영릉이 나란히 자리한 영녕릉 안내도.

전체 구역도를 볼까요?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효종 영릉구역, 기와집이 보이지요.

제사 준비를 하는 곳으로 왕릉을 관리하던 능참봉이 상주하던 재실입니다.

대부분 조선왕릉 재실이 멸실되거나 훼손된 상황에서 효종 영릉의 재실이 옛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 건축물로 평가받지요.

다음에 다시 방문해 효종 영릉을 살펴봐야겠습니다.

영릉 입구 야외에 전시중인 세종시대 천문관측기구들.

세종은 재위 32년 동안 훈미정음 창제, 쓰시마섬 정벌, 측우기 제작 등 정치, 경제, 과학 전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죠.

우리나라 과학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던 때가 세종 시기인 15세기입니다.

영릉 입구, 별자리 위치를 살펴보는 천문기기인 둥근 혼상과 고도와 방위,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하던 간의를 모형으로 제작해 야외에 전시해놓았습니다.

고문헌 자료를 토대로 실제보다 약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이외에도 세종시대 천문기기와 과학기술도구 등이 많아 아이들과 함께 오면 좋겠지요.

훈민문을 지나 소나무 우거진 능역으로 들어갑니다.

능역으로 들어갑니다.

1446년 소헌왕후가 승하하시고 지금의 서울시 내곡동 헌릉 서쪽에 영릉을 조성하였습니다.

1450년 세종 승하후 합장하였지요.

홍살문을 지나 참도를 따라 정자각으로 향합니다.

세조 때 영릉이 불길하다는 의논이 있었으나 서거정이 반대하여 옮기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 이 곳으로 옮겼습니다.

천장하면서 원래 영릉 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신도비 등 석물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묻혔습니다.

정자각 서쪽 수라간. 제례 음식을 준비하던 수라간은 최근 복원하였지요.

고요한 한겨울, 긴 세월을 품은 소나무 숲속 능역은 평화롭습니다.

간간이 단체 여행객들이 능을 둘러 봅니다.
홍살문을 지나 참도를 따라 정자각이 나타나네요.
수라간과 수복방이 정자각 서쪽과 동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쪽 수라간이 사진에 보이네요.
정자각 뒤로 봉분 언덕이 보입니다.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능 가운데 하나가 영릉입니다.
정자각 뒤, 주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성했습니다.
1977년에 복원한 수라간.
산릉제례 때 제사 음식을 데우고 준비하던 수라간입니다.
주초석만 남아 있던 것을 1977년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습니다.
내부는 큰 가마솥 하나가 안치된 부뚜막이 있는 부엌, 옆의 마루로 구성되었네요.
제례후 축문을 태워 묻었던 석재 예감, 뚜껑이 없네요.
정자각 뒤 서쪽, 사각형의 석함으로 제례가 끝난 뒤 축문을 태워 묻었던 예감입니다.
남양주 정순왕후의 능인 사릉 예감은 석함위에 석물 뚜껑까지 남아 있었지요.
여긴 뚜껑이 없습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합장릉인 영릉.

정자각 뒤 계단으로 올라와 능역을 살펴 봅니다.

능역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하는 곳이 잘 없는데 영릉은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입니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며,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합장릉이라 혼령이 앉아 노는 혼유석이 2좌입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습니다.

무인석이 위엄있게 능을 홍위하고 있습니다.

왕릉의 장생발복을 기원하는 장명등석이 혼유석 아래 가운데 세워져 있습니다.

문인석이 장명등 좌우에 있으며 두 손으로 홀을 쥐고 있습니다.
문인석 아래 무인석이 왕을 호위하고 있으며 두 손으로 장검을 짚고 있습니다.
석마가 문인석과 무인석 곁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장검을 두 손에 쥔 무인이 늠름합니다.
무인석이 늠름하지요.
장군의 위엄이 느껴집니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한 왕릉, 멀리 안산인 북성산이 보입니다.
남쪽으로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중허리에 봉분을 이룩했으며 좌우측에 청룡, 백호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자각 아래 동편 수복방. 능을 관리하는 관리가 머무르던 곳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봉분 아래 동편 수복방을 살펴 봅니다.

제기를 보관하거나 능을 지키는 관리가 거처하던 곳입니다.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발굴하여 1977년 원형대로 복원하였습니다.

가마솥이 2개 안치된 부뚜막이 있는 부엌이 가운데, 왼편에 방, 오른편에 광이 있네요.

수라간보다 규모가 크네요.


조선왕릉은 능마다 조성연대가 다르니 구조가 조금씩 다르고 시대 분위기에 따라 능의 규모가 다릅니다.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은 42기이고 북한 개성의 제릉과 후릉을 제외하면 40기가 수도권에 있습니다.

기회 될 때마다 전통 문화를 담은 왕릉을 찾아 차이점을 살펴 보는 것도 의미 있겠지요.

500년이 넘는 한 왕조의 무덤이 이처럼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은 세계에서도 찾기 힘들다지요.

자랑스러운 세계문화유산이자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입니다.


세종대왕유적관리소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T.031-885-3123~4

http://sejong.cha.go.kr/n_sejong/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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