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뛰어난 건축물 중 하나인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성벽의 일부를 앞으로 돌출시켜서 적의 침투를 조기에 관찰하거나,
측면에서의 공격이 가능하도록 만든 시설물을
치雉라고 합니다.
성벽을 만들 때는 모서리 부분이 조망하기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
치의 형태를 이루게 하며 휴식과 감시를 할 수 있도록
누각을 설치하는데 이러한 방어시설을 각루角樓라고 부릅니다.
수원화성에서는 위치를 안내하는 지도에 4곳의 각루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서북각루, 동남각루, 서남각루,
'방화수류정'이라고도 부르는 동북각루.

▲방화수류정(동북각루)에서 바라보는 용연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의 건립일은 1794년입니다.
수원화성이 완성된 해는 1796년 8월이었으니
건축은 계속 진행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방화수류정이 완성된 1794년(갑인년)에
제주도는
아주 극심한 (연이은) 흉년이 들어 구호양곡을
제주로 보낸 일이 있지만
태풍이나 풍랑 등으로 수송이 실패하여
제주에 사는
모든 백성들에게 돌아갈 구호미로는
절대 부족이었던 상황에서 거상이었던
김만덕의 결단이 있었기에
아사 직전의 제주에 살던 백성들은
큰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세계사에 있어서는 같은 해에 5년간에 걸쳐 이어진
프랑스대혁명이 7월에 막을 내립니다.
시기와 장소는 다를지라도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백성이 배불러야 나라가 튼튼해진다고 할까?
배고픔은 때론 역사를 바꾸게 할 화약고와 같아서...
조명에 도움을 받아 '나 여기에 있어'라며 위치를 알리던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를 바라보기도 하고,
동북각루 또는 용연으로 이어지는 길과
내가 걸어왔던 길을 다시 봅니다.

방화수류정(동북각루)와 동북포루 사이에 있는 암문. 무지개 모양의 홍예식 암문을 지나면 용연으로 길은 이어집니다.누구에게나
쉽게 노출되는 문도 있겠지만
위치상 후미진 곳에 적에게 노출되지 않으려는 작은 비밀문(암문)을
다섯 곳에 만들었다고 전해요.
전시에 군수품을 내부로 몰래 전달하려는 목적이 있으며,
수원화성 북암문의 구조는 다른 암문들과 차이가 있어요.
▲방화수류정(동북각루)의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