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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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여행기 세계문화유산 융릉과 건릉 그 숲길을 따라

작성자민경덕수정일2020-09-01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화성 여행은 이른 아침의 숲길 산책으로 시작했어요. 말로만 듣던 융건릉을 왜 이제야 방문했을까 싶을 만큼 여운이 남았던 여행이었습니다.
이곳의 자취를 더듬어 보면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기에 융건릉과 수원 화성의 여행 코스는 온 가족이 함께 돌아보아도 좋겠습니다.

 

 



 

융건릉 관람시간과 입장료

2-5, 9-1009:00-18:00(매표 마감 17:00)

6-809:00-18:30(매표 마감 17:30)

11-109:00-17:30(매표 마감 16:30)

일반 (25-64) 1,00010인 이상 단체 800

 

 


 

역사문화관부터 둘러봅니다. 융건릉은 융릉과 건릉 2개의 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융릉은 추존 장조의황제와 현경의황후 홍 씨의 합장릉이고,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선황제와 효의신황후 김 씨의 합장릉입니다.
장조의 황제는 영조와 영빈 이 씨의 아들로 태어나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사도세자로 알려져 있어요.

 

 

 

 



조선 왕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 519년을 지속한 한 왕조의 무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귀중한 역사지이기 때문입니다.
신들의 정원이라고도 할 만큼 당대의 예술과 문화가 집약된 현장이기도 합니다.
조선 왕조의 능 119기중 42개가 왕과 왕비의 능인데 그 중 40개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십자로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융릉이 나오고 왼쪽 길은 건릉이 나옵니다
.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융릉으로 먼저 발길을 옮겼어요.
봄의 정령인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었더군요. 이제 봄의 햇살이 따가운 계절이 와도 이 숲길은 커다란 그늘을 이루며 방문객을 숲의 아늑함 속으로 이끌어 주겠어요.
 

 

 

 



조선 왕조의 왕릉은 도성으로부터 십 리 밖 백리 안에 두어야 한다는 원칙도 깨고 이곳 화성까지 이르러 최고의 명당에 능을 조성했으니 그 효심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걸어가는 부자도 정조의 효심을 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홍살문에 도착하니 융릉의 모습이 보입니다. 보통은 정자각과 능침을 일직선으로 놓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아버지의 갑갑함을 덜어 주려는 듯 능침의 시야가 훤히 트여 있어요.


 

 

 

 



향로와 어로가 보입니다
. 의미를 모른다면 무심결에 걷게 되겠지만 "향로는 제향 시 향과 축문을 들고 들어가는 길입니다. 오른쪽 어로로 걸으십시오"라고 적혀 있어요.
어로는 제향 시 왕이 걸어가는 길입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으로 어로를 따라 걷고 있더군요.



 

 

 


1762
년 장조(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서울 배봉산 아래에 묘를 만들고 수은묘라 했어요.
1776
년에 정조가 왕에 오르자 장헌세자로 존호를 올리고 묘도 영우원이라 칭하였어요

.



 

 



1789년에 현재의 화산 아래로 이장하면서 현륭원이라 하였고, 현경의황후 홍 씨를 1816년에 합장하여 원을 조성했어요.
이후 고종때 (1899) 사도세자가 장조의 황제로 추존되자 융릉이라 하였습니다.

 

  

 

 


 

융릉의 경우 난간석을 생략하고 병풍석만 두른 형태이며 화려하게 장식을 했습니다. 문석인은 복두를 쓴 왕릉 형식이 아닌 금관 조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조선 왕릉만 돌아다니면서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 같네요. 아마 당시 문화와 예술을 대표하니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요?

 

 

    

  

건릉은 정자각과 능침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왕릉 형식을 취했어요. 조선 22대 정조선황제와 효의신왕후의 합장묘입니다.
합장묘임에도 융릉과 건릉은 혼유석이 하나인 것도 다른 왕릉과의 차이점이었어요

 

   

 

정조는 즉위 후 아버지 장조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노력하였으며, 왕권을 위협하는 노론 벽파를 정계에서 물러나게 하였습니다.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이유도 왕권을 강화하고 체제를 정비하여 당쟁을 멀리하기 위해서였어요. 규장각을 설치하고, 신분과 상관없이 능력과 학식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였습니다.
이후 실학을 발전시키고, 조선 후기의 문예 부흥기를 가져오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어요.
특히 계획 도시 수원 화성의 축조는 당시 기술과 문화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어요.
아버지 옆에 묻어 달라 했지만 어느 왕릉보다도 화려한 융릉에 비해 소박한 건릉의 모습에서도 정조의 효심을 알 수 있어요.

 

    

 

 

융릉과 비슷한 구조이지만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그 밖에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등을 배치하였습니다.

 


 

 


잠시 툇마루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으면 일상의 분주함도 사라지고 사색의 시간을 갖기 좋은 곳입니다.
효심 깊은 정조의 발자취를 따라 수원 화성에서 융릉과 건릉까지 숲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고 가족 나들이 코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행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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