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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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여행기 여주 '명성황후 생가'에서 구한말 일본의 만행을 되돌아보다

작성자권지은수정일2020-08-31

 

올해가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1919년으로부터 한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과 일본그 어느 때보다 심한 갈등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장 저 자신부터 역사 의식과 지식을 좀더 단단하게 갖춰야겠다는 생각으로 다녀온 
경기도 여주의  '명성황후 생가와 기념관'!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기억을 더듬어 보니 8년 전에 가 봤었네요. 
당시 보수 공사가 한창이라 제대로 못 봤었는데 
이번엔 안내판 해설 하나하나 꼼꼼히 읽으며 둘러 봤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기념관을 먼저 보고 → 생가 → 민속마을 → 감고당 순으로 관람하라고 안내해 놨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명성황후 관련 공연 행사장으로 사용되는 문예관
제가 방문했던 날 특별한 공연이 없어서 입구 사진만 찍었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명성황후 기념관 입구 모습입니다. 
커다간 태극기가 걸려 있어요.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특별전시실에선 '조선문무백관 흉배를 만나다' 전시가 진행 중.

황룡, 현무, 주작, 백호, 청룡 등 동물과

문무 백관 흉배의 사용한 동물-학과 호랑이-를 표현한 자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흉배 동물로 거북이를 사용했었다고 하네요.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기념관 상설전시관에는 명성황후 일대기를 중심으로 유물(친필 간찰첩 등), 

 

여흥민씨 족보, 민치록, 민유중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흥 민씨가 왕비가 2명이나 배출된 집안이었네요. 인현왕후와 명성황후! ​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 명성황후추모비 : 명성황후의 애국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제작되었다는 추모비.

두 개의 직사각형은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기둥이며 역사의 중심에 있는 명성황후의 모습을 비문으로 표현했고, 

조각 상층부에는 빛의 표현으로 우리 민족사에 길이 빛날 명성황후의 상징으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 명성황후순국숭모비 : '명성황후는 개화기에 개혁을 추진하던 중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북궁에 있는 건청궁 내 옥호루에서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 당하였습니다.

1981년 건청궁 내 동쪽 구릉지에 건립하였던 이 숭모비는

건청궁의 복원과 개명으로 인하여 이전 대상지를 물색하던 중

명성황후 시해 제112주기를 맞이하여 2007년 10월 8일 현재의 위치로 이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 명성황후가 태어나서 8세까지 살았던 집.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16살에 왕비가 되었고

시해 당한 후 능은 청량리에 있다가 1919년 고종이 떠나자 경기도 남양주 홍릉에 합장됐습니다.

이 집은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소 관리를 위해 지어졌던 묘막.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 민유중 묘·신도비 : 신도비는 묘로 가는 길목에 세워져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비.

민유중(1630~1687)은 인현왕후의 아버지로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의 장인이자 명성황후의 6대조 할아버지.

민유중은 1850년(효종1년)에 과거에 급제한 뒤 승문원, 예문관 등 요직을 거쳐 충청도관찰사, 성균관 대사성, 호조판서, 병조판서를 역임.

기단석의 몸통은 거북이, 머리는 용 형상을 하고 있으며 민유중 묘는 이곳에서 150m 떨어진 곳이 있다 합니다.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 명성황후 탄강구리비 : 명성황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고종 41년(1904년) 명성황후의 고향 집에 세운 비.

이 비가 있던 자리에는 명성황후가 어린 시절 공부한 별당이 있었다 합니다.

명성황후는 철종2년(1851)에 태어나 고종3년(1866) 왕비로 책봉됐고 고종 32년(1895) 시해됐습니다.

고종34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명성황후'로 추봉됐습니다.

사각 받침돌 위베 비석 몸체를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형태로 되어 있으며

비 앞면에는 '명성황후가 태어난 마을'이라는 뜻으로 '명성황후 탄강구리'라 써 있고

뒷면에는 '1904년 5월 어느 날 두 손을 맞잡고 절하며 눈물을 머금고 공경히 쓰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글씨는 명성황후 아들인 조선 제27대 임금 순종 황제의 친필이라 합니다. 비각은 1970년 보수.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중기 살림집의 형태를 잘 보여주는 한옥입니다..

위 사진은 행랑채. 대문 들어가자 마자 있는 건물. 주로 하인들이 생활하던 공간.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사랑채. 남자 주인과 귀한 손님이 생활하는 공간.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사랑채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 노모나 미혼 자녀의 거처로 사용되는 별채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안채 : 집안의 여성들을 위한 공간.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인 북쪽에 위치.
안방, 대청, 건넌방, 윗방, 다락, 부엌으로 구성.

숙종13년에 지어진 집으로 당시 건물로 남아있는 건 바로 이 안채 뿐. 

안채 일부가 1996년 수리, 보수 과정을 거쳤고... 나머지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가 지어졌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별채 옆에는 커다란 무궁화 나무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국화지만 옛날 양반 가문에 흔히 심는 나무는 아닌 것 같은데 

아마도 후대에 생가를 재보수하면서 심은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이곳 명성황후 생가에 정말 잘 어울리더라구요.​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입구에 한국어, 영어, 일본어로 음성해설이 나오더라구요.
가능하면 일본인들이 꼭 방문해서 들었으면 싶었습니다.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명성황후 생가 유적지에는 조선후기 취락의 모습을 보여주는 '민가 마을'이 있는데 

 

그 한편에 있는 소원 바위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은 첫번째 부인 오씨와 사별한 뒤

 

두번째 부인 한창부인(한산 이씨)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모두 일찍 죽었다고 합니다.

이후 부인과 함께 이 바위 아래에서 정성으로 기도한 뒤 민치록이 53세 되던 해에 명성황후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민치록의 기도를 들어 주었다고 하여 이 바위를 '소원 바위'로 불렀다고 하네요.

​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 소원바위 바로 옆에 위치한 감고당. 
감고당은 숙종비였던 인현왕후의 친정집으로 명성황후가 8세 이후부터 왕비로 간택되기 전까지 살았던 집.

 

원래 서울 안국동 덕성여고 본관 서쪽에 위치했었지만 1966년 도봉구 쌍문동으로 옮겨져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여주시에서 '명성황후 성역화 사업'으로 2008년에 이전 복원했다 합니다.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행랑채, 중간채, 사랑채, 안채 등 건물 배치 및 구조는 생가와 비슷한데요.
위 사진 속 사랑채에 유리문을 사용한 건 개화기 특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 사랑채. 개화기의 흔적인 듯 유리로 된 문이 인상적입니다.

  • 오른쪽 정렬
    왼쪽 정렬
    가운데 정렬
  • 굵게


▲ 사랑채. 개화기의 흔적인 듯 유리로 된 문이 인상적입니다.

  • 오른쪽 정렬
    왼쪽 정렬
    가운데 정렬
  • 굵게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행랑채 건물이고요.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안채의 부속 건물로 중간계층인 청지기 등이 살던 공간인 중문채. 

명성황후 생가 관련 사진


그리고 ㄷ자 형태의 안채 건물.




'감고당'은 인현왕후와 명성황후, 우리나라의 왕비 두 분이 머물렀던 집입니다.

인현왕후 또한 당파 싸움에 희생됐던 비운의 왕비였지만 온화한 성품으로 평가받는 편이죠.

 

조선의 국모였던 선대 할머니의 존재가 명성황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네요.

명성황후가 그녀를 롤모델 삼아 어릴 때부터 왕비를 꿈꿨는지 알 수도 없고

왕비가 되고자 한다고 될 수 있던 시대도 아니지만...

 

역사상 한 집안에서 왕비를 두 명이나 배출해 낸 가문이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유교적 가치관으로 보자면,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들, 강한 이미지 때문에 부정적 평가도 있지만다 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세를 이용해 외세를 막는 외교술, 고종의 정치적 동반자로서의 모습 등이 확실히 부각되는 듯 싶어요.

특히 당시 조선에 머물던 외국인들(이사벨라 비숍, 언더우드 선교사 부인, 이노우에 일본 공사, 윌리엄 샌드 미국 서기관 등)이 

명성황후의 인품과 학식에 대해 평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적이고 호기심이 강하고 의지가 강했다는 것.

생가와 유적, 기념관 등을 둘러 보면서 '명성황후'에 대해 느껴지는 것도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추진력이 있는 성품이었습니다. 

명성황후 시해에 참가했던 자객이 남긴 '마지막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한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일국의 국모로서 최후까지 당당했던 여성으로 명성황후를 기억하게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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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 09:00~17:00 (11월~2월) / 09:00~18:00 (3월~10월) 
관람 시간 종료 전 30분 전까지 입장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주차료는 있어요: 경차 500원, 소형 1000원, 대형 2000원)

주소: 경기도 여주시 명성로 71 (능현동 250-3) 명성황후 생가 
대중교통 이용시: 여주터미널에서 5분 거리 

전화: 031-887-2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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