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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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여행기 수원 팔달구 금보여인숙 그곳에 100년된 여인숙이 있었네!

작성자이재형수정일2020-11-12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여인숙 아시나요? 어느 여성분 이름이 아닙니다. 옛날 여관 중 등급이 낮은 숙소를 여인숙이라 불렀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금지했던 '야간통행금지' 제도가 있었습니다. 밤 10시만 되면 라디오에서는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라는 방송이 흘러 나왔죠. 밤 12시가 되어 사이렌이 울리면 거리는 고요해졌습니다. 요즘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이 제도는 1982년까지 치안상의 이유로 시행되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그 옛날의 통행금지와 함께 성장해온 곳이 바로 여인숙이었습니다. 시간이 늦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막차를 놓친 사람들은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머물다 가곤 했죠. 요즘은 모텔, 호텔 등 다양한 형태의 숙박업소에 밀려나 여인숙을 찾아보기가 힘들죠. 그런데 경기도 수원시에 100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여인숙이 있습니다. 팔달구 북수동 팔부자거리의 '금보여인숙'입니다.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금보여인숙이 있는 거리의 이름은 정조가 화성을 지으며 전국 8도의 부호와 상인들을 성 내로 이주하게 한 데에서 유래합니다. 그래서인지 여인숙 역시 '금은보화(金銀寶貨)'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네요. 시간이 흘러 팔부자거리는 벽화 골목으로 꾸며졌습니다. 행궁동 하면 벽화골목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여인숙만은 빛바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변함없이 품고 있습니다.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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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보여인숙이 있던 팔부자거리는 1961년까지는 우시장이, 1980년대 초까지는 청과물 시장이 크게 들어서던 곳입니다. 저녁이 되면 술 한잔을 걸치고 여인숙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상인들이 많았죠. 이제는 뒷골목의 아련한 추억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품팔이 노동자들이 이 여인숙을 따뜻한 둥지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네 부모님이 살고 있는 시골집을 떠올리게는 집이 수원 시내 한복판에 버티고 있습니다. 금보여인숙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들의 밤을 데워줄 연탄이 쌓여 있고, 12개의 반 평짜리 방들이 'ㅁ'자 구조로 빙 둘러 있습니다.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마당에는 여주가 익어가고 있고, 자전거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도 있네요.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집은 100년전 그 때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마치 TV에 나오는 오래된 드라마 세트장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비록 작은 방이지만, 두 다리 쭉 뻣고 잘 수 있다면 대궐 부럽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거쳐간 여인숙 방에는 그만큼의 이야기가 있겠죠. 그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낼 수만 있다면 아마도 베스트셀러가 되고도 남을 겁니다. 그 이야기 주인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몇 년 전에 뜻있는 사람들이 팔부자거리의 금보여인숙을 찾았습니다. 그 이유는 오랜 주택을 개조하여 동네에 예술을 가져온 '대안공간 눈'의 행궁동 프로젝트 때문이었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브라질의 젊은 여성작가 라켈 셈브리(Raquel Lessa Shembri)는 오래된 여인숙의 모습에 매료됐습니다. 그녀는 금보여인숙의 담벼락에 물의 근원을 뜻하는 '수원(水原)'에서 헤엄칠 황금물고기를 그렸습니다. 3년여의 작업 끝에 완성된 황금물고기는 이 동네 역사를 이어갈 미래를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벽화골목의 대표적인 그림으로 말이죠.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하지만 지난 2016년 10월, 행궁동 벽화마을의 벽화들이 페인트로 훼손됐고, 황금 물고기 벽화도 훼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문화시설로 지정해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수원시와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개발을 요구하는 일부 주민들 사이에 갈등 탓이죠. 아이러니하게도 벽화를 그렸던 라켈은 2016년 6월 출산 중 사망하였는데, 이는 마치 황금물고기가 그 뒤를 따라간 듯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금보여인숙을 찾아갔던 날, 달방을 사는 60대 중반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 돌아온 그는 오전이 되어서야 라면을 끓여 먹은 후 마당 수돗가에서 그릇을 닦았습니다. 사진을 찍는 내게 뭘 그리도 많이 찍냐며 핀잔 아닌 핀잔으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수원 금보여인숙 관련 사진

금보여인숙은 단순히 오래되기만 한 건물이 아닙니다. 그 툇마루와 창틀에는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애환이 서려 있습니다. 담벼락의 황금물고기는 예전의 황금빛을 잃었지만, 여인숙만큼은 옛 삶의 흔적을 간직한 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재산을 재개발, 재건축이란 미명으로 허물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세월을 켜켜이 안고 있는 금보여인숙은 우리의 귀중한 역사이자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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