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나의여행기 화성 명당에 자리잡은 조선 시대 양반가옥 정시영고택

작성자이재형수정일2020-12-01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자리잡은 조선시대 고택이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는 이 집은 네비게이션 안내를 받아도 구불구불한 시골구석에 자리하고 있어서 찾기기 쉽지 않습니다. 궁평항 가는 길에 어렵게 찾아가보니 마치 고향의 부잣집을 떠올리게 합니다.



겨울이라 논밭은 조금 을씨년 스럽습니다. 논밭 위 산등성이에 위에 나지막한 산(해운산, 해발 142m) 아래 고래 등 같은 기와집 한 채가 보입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24호 정시영고택입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돼 보이는 이 집은 1887년(고종24)에 문을 세웠다고 하니 지은 지 133년 됐습니다. 안 채는 이보다 50여년 전에 만들어졌으니 약 180년 된 집입니다.




고택 입구에 정시영고택 안내문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어보니 나지막한 동산이 둘러싼 명당터에 자리잡은 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집 옆 작은 동산에 올라서 보니 전체적으로 남북으로 길게 만들어진 '월(月)' 자형입니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양반 가옥의 모습을 보이는 주택이라고 합니다. 옛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말 그대로 으리으리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보통 가정집에 솟을대문이 있는 경우는 드문 일인데요, 정시영고택은 거대한 솟을대문이 있어 위압감을 느끼게 합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행랑채, 바깥채, 안채, 사랑채 등이 남북으로 길게 연결된 집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집이 얼마나 큰 집이었는지는 사랑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채는 집 안의 가장인 남자 어른이 잠을 자거나 식사를 대접하는 방입니다. 사랑채는 보통 방 한 칸이 전부인데, 이 집은 방이 여러 칸입니다. 손님들이 그만큼 많이 왔나봅니다. 그리고 대문 좌우측에 문간채(행랑채)가 있습니다. 보통 행랑채는 하인들이 살던 집이었는데요, 금방이라도 마당쇠가 달려 나올 것만 같은 집입니다.



사랑채 건물 맞은 편에는 광이 많습니다. 광은 가을에 추수한 곡식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창고죠. 부잣집은 먹을 곡식이 많아 광에 보관을 했습니다. 광에 곡식을 얼마나 많이 보관하느냐에 따라 부잣집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시영고택은 무려 5개의 곳간이 있기 때문에 재력을 간접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화성시에서 부잣집 소리 좀 듣고 살았을 듯합니다.



사랑채 안쪽으로 중대문이 있는데요,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채가 나옵니다. 문이 잠겨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요, 숟가락을 끼워놓았기 때문에 잠시 열고 들어가 봤습니다. 'ㄷ'자 형태의 전형적인 한옥 형태입니다. 안채는 안방마님을 비롯한 여성들의 공간입니다. 여성들이 남편이나 친척 외에는 남자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여성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제한하던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 배치입니다.



정 중앙에 대청마루가 있고 그 왼쪽으로 부엌, 안방 첫 방이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부엌, 건넌방, 마루가 있습니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 시골 외할머니 댁에 가면 이렇게 널찍한 대청마루에서 할머니가 쪄주시던 옥수수와 수박을 먹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대청마루는 여름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더위를 식히기에는 그만이었죠. 이 집은 뒤쪽에 야트막한 동산에서 바람이 불어와 더 시원했을 겁니다.



대청마루 안쪽에는 쌀을 보관하던 커다란 뒤주 2개가 놓여 있습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물건이죠. 부잣집이었기 때문에 이 뒤주에 쌀이 떨어지지 않았겠죠. 매일 뒤주에서 쌀을 퍼다가 밥을 짓던 그 시절의 할머니,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안방 쪽 천정 벽에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모관대를 쓴 분도 있고 최근에 살았던 분으로 추정되는 사진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국가민속문화재 지정서(1984년 1월114일 지정)도 있습니다.




툇마루에는 멧돌이 있습니다. 그리도 오래된 절구통도 보입니다. 지금은 절구통 대신 믹서기가 대신하고 있죠. 이런 맷돌, 절구통 보기도 힘들고요. 툇마루에 앉아 멧돌을 돌리며 두부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지금은 없지만 멧돌에서 고소한 두부 맛이 나는 듯 합니다.




안채에서 북쪽으로 난 문을 열고 나가면 바깥채가 나옵니다. 'ㄱ'자 형태로 툇마루와 안방, 건넌방, 창고 등을 갖춘 집인데요, 바깥채는 이 집을 관리하시는 분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지만 방에 살림살이가 있습니다.




마당에는 오래된 우물이 있습니다. 아직도 우물을 퍼서 사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바깥채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올라 고택을 바라보니 어릴 적 시골에서 살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바라보니 고향집 생각도 나고 그리운 부모님 얼굴도 떠오릅니다.



정시영고택은 나지막한 산등성에 있기 때문에 안산과 서신면 일대 논밭이 한 눈에 보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그만큼 뷰(view)가 좋은 명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을 추수를 끝낸 평화로운 마을 풍경을 보니 제가 정시영고택에 사는 나으리가 된 기분입니다.




정시영고택은 외부에서 보더라도 규모가 큰 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돼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집터가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고 있어서 북쪽 대문에서 보면 장방형의 좁은 쪽만 보이게 되는데요, 이런 구조 때문에 연구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이 고택은 소유자가 따로 있기 때문에 방문시 꼭 허락을 받고 구경해야 한다는 게 아쉽습니다.



정시영고택은 약 180여 년 전에 지어진 양반고택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집입니다. 집 주면에 호두나무, 대추나무, 감나무와 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고요, 목련나무 등 꽃나무도 많아서 봄에 찾아오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이라는 노래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나지막한 자연 동산에 파묻힌 정시영고택은 화성을 방문할 때 꼭 한 번 들러볼만한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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