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나의여행기 수원화성 장안문 주변 성곽길

작성자이진형수정일2021-07-21

수원 전통문화관

긴 장마를 좋아하지 않지만 몇 번의 폭염을 겪어보니 폭염을 누그러지게 해주는 단비에 내 옷이 젖어도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넘칠 듯이 뿌려대던 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버스를 타고 도착했던 동네가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입니다. 버스 정류장 주변으로 한옥기술전시관과 전통문화관이 있어 버스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한옥의 처마 밑을 임시 대피소라 생각하며 비를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수원 전통문화원 앞 고보조명

몇 해 전부터 고보조명(또는 로고젝트)이 등장하면서 바닥광고라는 새로운 홍보 영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밤마다 또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점이 있고 집중도도 높아서 광고 현수막을 제작하는 것보다 고보조명을 제작해 설치 운영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전통문화원에 설치된 고보조명은 문자 없이 일러스트만을 노출하고 있어 수원에서 진행하는 야행(夜行)을 운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세계 주요 도시와의 거리 알림판

화홍문(팔달구 북수동) 주변을 기준으로 세계 주요 도시와의 거리를 알려주는 방향판을 보았습니다. 제32회 올림픽이 7월 23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개최됩니다.
전 종목 무관중 경기가 예정되어 있지만 33개 종목, 324개의 금메달은 변동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하계올림픽 개최지 도쿄까지의 거리는 1,147km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현지에서 감동을 전하는 소식만큼은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물샘 오픈은 상시 대기 중.

화홍문

화홍문과 이어지는 성곽길

방화수류정과 용연을 바라보며

일반 도로보다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성곽 둘레길을 걸어볼 생각이었습니다. 날씨 때문에 화홍문에서 장안문까지 약 360미터 정도 걸었습니다. 높이 4미터가 조금 넘는 위치에서는 방화수류정(동북각루)과 연잎 가득한 용연, 연못 주변엔 늘어진 버드나무의 모습이 어우러져 수원팔경 중 한 곳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수원화성 성곽길

발걸음은 수원화성의 5개의 포루 중 북동포루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동서남북 위치에 따라 색이 다른 깃발을 보게 되는데 남문인 팔달문 주변에서는 붉은색의 깃발을, 북문인 장안문 주변에는 검은색 깃발(사진)을 보게 됩니다. 나머지 동쪽 창룡문은 청색, 서쪽 화서문은 백색.
깃발에 담긴 '巡視(순시)' 돌아다니면서 현장의 사정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두고 병사의 임무가 아닌 여행자의 선택이라 여기며 성곽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북동포루 내부

장안문의 동쪽의 방어진지 역할을 하며 포를 쏠 수 있는 포루 상단부의 모습은 단단히 쌓아올린 치성 위에 지붕이 있으니 누각이 혼합된 느낌입니다. 측면과 전면부를 볼 수 있는 구조라서 전투 시 매복하며 적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지붕이 있기에 확보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추가적인 기능을 엿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수원화성 성곽길 


일정한 간격마다 보게 되는 흑기를 보며 아이스 블랙(커피)이 생각나는 타이밍에 커다란 카페 간판이 없어도 밝혀주는 체인 전구는 '그대가 지금 쉬어갈 곳은 바로 여기'임을 불빛으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북동적대 홍이포와 장안문

튼튼한 성곽의 외부를 서서히 부숴버리는 역할을 하는 공격용 유럽식 화포를 카피하여 만든 중국식 대포-홍이포. 탄알 자체의 폭발력보다 포구에서 날아간 탄알의 사정거리에 압도하게 되는 무기. 안내글에는 사정거리가 700미터라고 하지만 3배 이상의 수준까지 성능이 발전했습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도 수많은 탄알들이 남한산성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생각나는데 병자호란에서 청나라가 사용했던 홍이포의 위력은 막강했습니다.

장안문교차로

홍이포를 구경하다가 장안문 로터리를 통과하는 차량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차하고 있는 1007번 노선(수원대-고속철도 수서역-잠실광역환승센터)은 '공공버스'임을 알리는 별도의 표시가 있었습니다. 기존의 방식처럼 영구적인 노선 운영권(면허)을 버스업체가 소유하지 않고 주체가 공공으로 바뀌면서 해당 노선을 경쟁 입찰을 통해 노선 운영권을 위탁하면 적정한 운송비용을 보장하고, 수요에 맞는 운행노선 정비와 운행 모니터링을 통해 개선된 서비스를 승객에게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장안문

장안문 야경

장안문 현판

수원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입니다. 4개의 성문 중 장안문의 위치에서 한양을 출발한 정조를 가장 먼저 마중하며 신하된 도리를 다할 수 있었고, 도착하여 바로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남문인 팔달문이 아닌) 이곳 북문이 곧 정문이었습니다. 백성이 편안하게 살고, 도시가 융성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수원화성을 완성한 이후에 정조의 재위 기간이 짧았다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비오는 날의 장안문

다시 강해지는 비바람.
남산 아래 허름하고 비바람을 막기에도 버거운 초라한 집에 살았다는 허생이 생각나는 밤. 물론 그는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삯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무능하다고 여겼던 남편 허생에게 도둑질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오라는 말에 단박에 책 읽기를 그만두고 집을 나갑니다. 대출이 어려운 상황에 그의 재주를 믿고 만 냥씩이나 빌려준 대범한 변 부자의 투자로 허생이 손을 댄 사업들은 10배 만큼의 큰 이윤을 생기게 만들죠. 그럼에도 자기 욕심은 없었던. 벌어놓은 것이 많았으니 민간 구휼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도 변 부자에게 갚을 돈이 있었다니 그저 놀라운. ​ 220년 전 양양부사를 역임했던 연암 박지원이 남긴 '허생전'의 줄거리 일부입니다.

앞서 홍이포를 소개하면서 살짝 병자호란을 언급했는데 그런 치욕을 씻어내자며 북벌론이 있었지만 연암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소설에서 허생과 그를 찾아왔던 어영 대장과의 갈등 부분에도 현실의 문제가 담겨있던 것이죠. 명확한 대책도 없이 백성들의 감정만을 자극하여 '북벌'이라는 주장만으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장안문 야경

장안문 야경

옹성에도 무지개처럼 상단부를 둥글게 만든 홍예문을 냈는데 도로에서 차량들이 신호가 바뀌기 기다리며 대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영화 한 편이 생각나고 그것을 응용한 <미드나잇 인 수원>을 상상하게 됩니다. 홍예문을 통과할 때마다 김홍도를 만날 것만 같고, 안경을 고쳐 쓰는 정약용을 만날 것만 같은.

장안문 야경


폭염이 시작되면 1994년 여름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해를 기준으로 200년 전인 1794년에도 조선판 폭염의 기록이 있었는데 그해 수원화성 축성이 시작되며 건설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한 만큼의 수당을 받을 수 있어 생계에 도움 되는 부역이라서 그 인원은 줄지 않아서 정조는 더운 열기에 발생하는 열증 등의 질병을 막고자 척사단을 조제해서 지급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백성들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움직이며 완성한 수원화성1796과 마주하는 밤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우산을 쓰고 있었던 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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