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대명항을 출발해 고양과 파주를 거쳐 연천 역고드름에 다다르는 189km의 장대한 길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 풍경과 풍요로운 역사적 이야기들이
여행자들에게 매 순간 깊은 인상을 남기기 충분하다.
이른 아침, 평화누리 평화의 종각 앞에 모여 민통선 출입 절차 등을 거치고 난 뒤 마침내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9.1km 구간의 걷기 여행에 나선다. “이곳 통일대교는 1998년 6월 15일에 준공이 됐어요. 그런데 더 유명한 날짜는 6월 16일, 故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끌고 그 다리를 통과했던 날이에요. 종결되는 숫자인 1000마리에 계속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아 한 마리 더해 총 1001마리가 갔어요.”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통일대교를 지나 뚝방로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철책선 너머의 고즈넉한 마을 풍경과 탐방로의 웃자란 풀숲을 따라 걷다 보면 야외에 자리한 에코뮤지엄에 도착한다. 분단의 흔적인 철책에 예술 작품을 채워나가며 통일에 대한 마음을 담아낸 공간이다. 세계 유일의 철책 야외 전시 공간인 이 뮤지엄에는 2010년 대학생 공모전의 작품을 비롯해 국내외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분단의 현장에서 남과 북의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유영호 작가의 〈안녕하십니까〉를 비롯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그리움의 마음을 표현한 박선기작가의 〈사랑의 동반자〉,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꽃이 철책 곳곳에 걸려 있는 노동식 작가의 〈As Like Dandelion Spores〉 등이 여행자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참고로 스마트폰에 여행 앱 오디를 설치하면 작품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트레킹 코스의 중반부쯤에 이르면, 초평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임진강과 한강 하구인 이곳엔 아침저녁으로 서해에서 바닷물이 흘러들어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까닭에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는 특별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섬 가장자리로 갯버들과 물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신나무와 조팝나무가 아름답게 자리한다. 물속엔 어종까지 풍부해 이곳으로 재두루미, 흰뺨검둥오리, 쇠기러기 등 다양한 철새가 날아든다. 섬은 개인 소유지만, 지뢰 매설 여부 확인이 어려워 인적이 끊긴 대신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초평도 전망대에서 출발해 30분가량 임진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임진나루에 도착한다. 허가받은 지역 주민들이 어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곳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풍광이 펼쳐진다.
한반도 중간을 가로지르는 DMZ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의 공간인 동시에 화해와 희망의 공간이다. 과거 전쟁과 분단, 긴장과 상실이라는 단어로 규정되던 이 지역은 이제 ‘평화’라는 이름으로 함께 걷는 길이 되었다. 테마 노선과 횡단 노선을 걸으며 비무장지대의 생태와 문화, 역사적서사를 체험할 수 있다고. 그중 테마 노선 11개 길에는 접경지역 10곳이 참가해 저마다 특색 있는 여정을 제안한다. 한반도 평화관광의 시작점인 강화 코스부터 한강에서 임진강, 예성강 등이 합류하는 조강의 풍경과 북한 마을의 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김포 코스, 위기 때마다 수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 고양 코스와 남북 교류를 위한 길목 역할을 하는 파주 코스, 아름다운 풍경과 분단의 아픔이 공존하는 연천 코스를 비롯해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A, B) 코스에 이르기까지 지역적 특색을 담고 있는 코스가 호기심 많은 여행자의 열망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