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OPEN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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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DMZ

에코피스포럼

더 큰 평화를 향한 논의의 장, 에코피스포럼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이놈의 평화는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2023년 9월 27일,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에서 에코피스포럼이 열렸다. 에코피스포럼의 큰 주제는 <열린 DMZ, 더 큰 평화-DMZ의 지속가능한 생태와 평화를 위한 비전>. 한국에서 DMZ는 생태와 평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중요한 요충지이다. 이러한 DMZ를 배경으로, 각 학술 분야의 유명 연사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김포 애기봉평화생태공원

김포 애기봉생태공원은 노후된 애기봉 전망대를 철거한 뒤 새롭게 조성된 곳으로, 세계적인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했다. 스카이포레스트 가든을 통해 조강전망대로 향하는 길 내내 작은 나뭇가지들이나 젖은 이파리들이 손에 스쳤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짙게 끼어 있던 지라 온전히 조망을 감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촉촉이 젖은 공기 사이로 수풀 내음이 잘 느껴져 몸에 와닿는 직접적인 생명력을 감각할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좋았다. 자연에 한결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공간이기에, 이날의 행사가 열리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었으리라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조강전망대 로비에서는 박경만 사진가의 <두루미의 땅 DMZ를 걷다>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두루미는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만큼 일상에서 쉬이 만나 볼 수 없는 새다. 그런 두루미들의 생활 모습을 한국 여기저기에서 담아낸 사진가의 열정과 노고가 온전히 느껴지는 전시였다.

이날의 행사는 기념품부터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참가자 모두에게 제공된 민트색의 에코백 안에는 리플렛과 큐알코드가 인쇄된 쿠키가 담겨 있었다. 쿠키의 큐알코드를 찍어 보자 구글 드라이브로 연결되어, 전체 프로그램에 관련된 발표집을 깔끔한 pdf 이북 형태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었다. 학회나 포럼 행사에서는 일회적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종이 쓰레기가 많아 참여할 때마다 늘 마음이 쓰이는데, 주최 측과 참가자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에코피스포럼 현장

에코피스포럼은 [생태 세션 1: 생태∙평화 공간으로서의 DMZ 일원의 생태∙문화적 가치]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각 세션마다 정해진 연사가 준비해 온 자료와 함께 발표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다른 연사들과 함께 토론을 거친 뒤 관객의 감상과 질의응답을 받는 순서로 이어졌다.

국립생태원의 서형수 연구원은 <민통선 이북지역 생태계 조사에 기초한 DMZ 일원의 생태 가치와 보전관리>라는 주제로, DMZ(비무장지대)와 CCZ(민간인통제선 이북지역)이 국토 면적의 겨우 1.6%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전국 대비 생물이 24.7%나 서식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사건을 거쳐 폐허가 되었지만, 결국 스스로를 회복해내기도 한 자연의 강력한 힘에 감탄하게 되었다.

발표하고 있는 국립무형유산원의 학예연구원 지성진

다음으로 국립무형유산원의 학예연구원 지성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DMZ 실태조사 결과와 시사점>을 주제로, 언젠가 DMZ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으리라는 당찬 기대감을 보였다. 남정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의 <한강하구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DMZ> 발표는 한강하구가 남북한 생태와 그 연결을 의미심장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이지만, 아직까지는 연구 및 조사 데이터가 미비하다는 아쉬움을 지적했다.

발표를 듣는 사람들 무대에 앉아있는 연사들

발표 후에는 강찬수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가 좌장을 맡아 간단한 토론을 나누었다. 토론에 참여한 오동석 아주대학교 교수는 결국 인간은 지구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인간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체계를 고민하게 된다는 개인적인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연사들에게 인간의 경제적인 욕망과 개발의 욕구를 각각 어떻게 이해하고 있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좋은 질문에 대한 연사들의 답변은 토론을 더욱 충실하게 했다.

발표하는 댄 크라우제 헬무트슈미트대학교 박사

이어진 [평화 세션 1]은, <함께 만드는 평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제목 아래 이루어졌다. 첫 발표는 댄 크라우제 헬무트슈미트대학교 박사가 맡은, <평화 개념과 글로벌 사우스: 아시아와 아프리카 관점>이었다. 댄 크라우제 박사는 글로벌 사우스(북반구의 저위도나 남반구에 위치한 아시아·아프리카·남미·오세아니아의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을 총칭) 국가들, 특히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인도의 외교 정책 문화를 비교하며 각각의 나라들이 평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폈다.

문경연 전북대학교 교수

문경연 전북대학교 교수는 를 주제로 말문을 열었다. 문경연 교수는 HDP 넥서스가 국제 사회의 인도주의∙평화∙발전의 통합적 접근법이며, 이 세 관점들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접근하는 것이 HDP 넥서스가 추구하는 바라고 강조했다. 남북한은 현재 핵문제로 인한 대립점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방식을 시도하기가 어렵게 여겨지지만, 사실 우리에게 아주 새로운 방식의 시도는 아니라는 점도 밝혔다. 김대중 정부 시기의 이른 바 ‘햇볕 정책’이 일례일 수 있다고 소개한 문경연 교수는 이렇듯 우리가 비슷한 시도를 통해 좋은 성과를 거둔 적도 있었지만, 현재 상황이 녹록치 않아 아쉽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결론적으로는 현재의 고강도 대북 재제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시행하는 정책과 방향성이 올바른가, 하는 질문들이 남는다고 전하기도 했다.

[평화 세션 1]의 좌장은 박태균 서울대학교 교수가 맡았고, 차지호 카이스트 교수와 이화용 경희대학교 교수가 토론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화용 교수는 오늘날과 같은 복합 위기의 시대에서 평화와 발전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이 가치들을 동시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앉아있는 개회식 참여자들

에코피스포럼의 개회식은 DMZ의 역사와 <DMZ 오픈 페스티벌> 에 대해 소개하는 짧은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2023년은 한국전쟁의 정전 협정 7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이지만, 해가 갈수록 점점 우리 눈앞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남북의 대화와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설명했다. 특히 이날의 행사에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기조 대담의 좌장을 도맡아 직접 토론을 이끌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최재천 오픈페스티벌 공동위원장, 김경일 파주시장, 엄진석 김포부시장, 김시용 경기도의원, 오픈페스티벌 총감독 임미정 감독, 조원용 경기관광공사 사장 등이 참여해 더욱 다채로운 자리가 되었다.

연주하고있는 바올리니스트 이수산

바이올리니스트 이수산 씨의 특별한 축하 공연도 이날의 행사에서 중요한 순서였다. 이날 공연에서 사용된 바이올린은 조금 특별했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주황빛 플라스틱 재질의 바이올린이었다. 알고 보니 폐 레고를 녹여 만든 업사이클링 바이올린이라고 한다. 이수산 씨는 평화교육관의 통창을 통해 보이는 조강을 배경으로, 한국적인 색채가 느껴지는 음악에 맞추어 웅장하고 열정적인 곡을 연주해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발언하는 최재천 공동위원장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이놈의 평화는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먼저 마이크를 잡은 최재천 공동위원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맞는 말이다. 평화는 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루어질 듯 말 듯 언제나 아스라한 것이니까. 최재천 공동위원장은 평화가 어떤 다짐이나 외침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닌, 어느 날 불현듯 우리 곁으로 찾아와 있는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니 평화가 언제 찾아올지 우리는 알 수 없고, 다만 꾸준히 소통하며 다가올 평화를 잘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또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제시했던 ‘더 큰 평화’라는 개념도 함께 언급했다. 여기서 ‘더 큰 평화’란 남북한에 국한한 것이 아닌 세계적 평화이기에, 평화를 이야기하는 시각을 폭넓게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앉아있는 최재천 공동위원장과 김동연 경기도지사

이어서는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마이크를 전해 받았다. DMZ 오픈 페스티벌의 큰 주제는 생태와 평화인데, 각각의 주제가 현재 우리에게 대단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올해 여름이 우리가 앞둔 여름들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이었으리라”는 김 지사의 말은, 기후 위기와 생물 다양성의 위협 등을 직접 목격하고 체감해 온 최근의 경험들을 떠올리게 했다. 또한 경기도는 북한과 접경 지역이 가장 넓은 곳이라고 소개하면서, 현재 북한과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계 평화의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명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그렇기에 더더욱 DMZ가 평화를 이루는 중요한 매개 지역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 또한 드러냈다. 김 지사는 남북의 긴장 관계가 계속되는 중에도 “평화가 곧 경제이며 평화보다 더 큰 국익은 없다”며 꾸준히 평화에 대한 입장을 강조해 오기도 했다. 이러한 김 지사의 행보를 떠올려 보면 이날의 이야기들은 더욱 크고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기조 대담에는 개리 피터슨 스톡홀름대학교 교수, 하르트무트 코쉭 독일 전 연방 의회 의원, 로라 페레이라 위츠대학교 교수, 오거스트 프라데토 헬무트슈미트대학교 교수 또한 참여했다. 로라 페레이라 교수는 DMZ가 보전해야 할 생태적 유산인 동시에 군사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대립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감정은 희망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며, 그 희망이 명확하게 살아 숨쉬는 공간이 바로 DMZ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창문으로 빛이 비치는 에코피스포럼 개회식 현장

연사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들이 앉아 있던 무대의 뒤편 스크린이 열리면서 통창이 드러났다. 그 창문을 통해 외부의 빛이 덮치듯 눈부시게 들어왔고, 몇 차례 눈을 깜빡인 뒤에야 짙게 드리운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조강의 풍경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우리의 눈에는 강의 건너편이 보였다. 생태와 평화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는 그곳은, 우리 생각보다 더욱 가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