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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

[연천~파주2] 경기도 휴전선 64마일을 따라 걷다

서쪽과 북쪽이 각각 황해도에 접해 있는 지역 연천


평화누리길은 2010년 경기도의 DMZ 접경 지역인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을 연결하는 대한민국 최북단의 트래킹 코스다. 평화누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길은 다양한 경기도의 역사 유적부터 자연과 문화적 공간들을 가로지르며, 평화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는 길이라고 한다. 나는 이 평화누리길을 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밟았는데, 지역으로 크게 분류하면 연천, 파주, 김포 순으로 방문했다.

UN군 화장장 시설
UN군 화장장 시설

소박한 곳이라면 소박한 곳이었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사이, 휑덩그레한 샛길로 빠지자 이곳이 보였다. 차에서 내렸을 때는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엇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낮은 언덕을 올라 위치에 다다랐는데도 실제로 남아 있는 건물의 흔적은 굴뚝 하나뿐이어서, 미리 알아보고 오지 않는 이상 찾아오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UN군 화장장 시설2

UN군 화장장 시설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전사자들을 화장하기 위해 건립되었고, 휴전 직후까지도 사용된 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그곳은 시체를 태웠던 곳이었다. 이 시설은 현재 건물의 벽과 지붕이 훼손되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지만 기록에 따라 그림으로 복원되어 있어 규모와 형태를 상상해 볼 수는 있었다. 나는 잠깐 그 복원도와 굴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상했다. 남아 있는 그 굴뚝에서 피어올랐을 짙은 연기. 그 일대를 메웠을 사람 태우는 냄새.
그 순간 내가 몸으로 받은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곳은 그러니까, 실제로 누군가 죽어나갔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는 공간이었다. 죽음이 가득한 공간이었고, 추위 때문이 아닌 전혀 다른 이유로 몸이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 〈사울의 아들〉이나 소설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에서 언뜻 보았던 전쟁의 풍경들이 내 시야를 뒤덮는 듯했다. 금방 토할 것 같아졌고 어지러웠다. 숨이 막혀서 고개를 돌린 채 잠시 머물러야했다.

UN군 화장장 시설3

숨을 제대로 고르자 당장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천천히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돌렸고, 공간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실제로는 하나의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갖춰진 모양새가 아니었지만, 문이 있었던 자리에서 안쪽으로 들어서면서 마치 건물 안에 실제로 들어가는 것처럼 해 보려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서는 거친 돌로 만들어진 낮은 벽의 흔적을 만져 보면서, 멀쩡한 형태의 벽과 천장을 상상해 보려고 했다. 내부가 잘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한눈에 확실히 담길 정도로 좁은 공간이라 상상하기에는 수월했다. 겨우 손가락을 하나 벽에 얹고 한 바퀴를 돌듯 걸어가는데 여러 돌과 그 질감에 손톱 끝이 긁히듯 걸렸다. 걸음이 자연히 느려졌다.
사면 중 한쪽 벽 위에는 하나씩 얹어 놓은 돌 조각들이 있었고, 그 사이 초코파이가 반으로 쪼개진 채 놓여져 있었다. 형태가 온전한 것으로 보아 최근에 누군가 두고 간 것처럼 보였다.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일까. 전부 허물어져 흔적도 제대로 남지 않은 이곳에 찾아와야만 했을 마음, 초코파이 하나라도 두고 가야 했을 마음이 아프게 닿았다.

 

고랑포구 역사공원
고랑포구 역사공원

널찍한 공원에 다다랐다. 전시관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방금 전시를 보고 나온 어린이와 마주쳤는데, 그는 나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했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손을 오래 흔들어 주었다. 그 길목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투 현장이었음을 알리는 알림판이 세워져 있었다. 전시관 앞에는 커다란 말 동상도 하나 놓여 있었는데, 한국전쟁에서 용감하게 활약해 미군 최초로 하사관이 된 레클리스라는 이름의 말이었다. 연천의 네바다전초 전투에서는 사람의 도움 없이 하루에 약 51차례 탄약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말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싶어 놀랍다가도, 인간이나 저지르는 범죄 행위에 동원되어 그런 식으로까지 착취당한 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고랑포구 역사공원2

전시관 내부에는 옛 시가지의 번영한 상가를 재현해 놓은 곳들이 눈에 띄었다. 사실 내게는 고랑포구라는 지명부터 생소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30년 경 고랑포구는 아주 번성했던 도시였다고 한다. 고랑포 시가지가 평양과 개성에서 한양을 오고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랑포는 개혁의 물길이 트이기 시작한 곳이었던 셈이다. 고랑포구 역사공원에서는 이 고랑포구가 얼마나 발전했었는지에 대한 정보들을 전시관에서 살펴볼 수 있고, VR 체험도 있어 어린이들이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배우기 위해 방문한다면 아주 좋을 것 같다.

고랑포구 역사공원3

전쟁을 겪으며 시가지는 다 사라졌고, 실제 항구로 사용되었던 고랑포구 또한 얼마 전까지 철조망에 가려져 있었는데, 이 근교에 둘레길을 조성하는 사업이 지금 막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고랑포구를 볼 수 있다면 임진강 너머를 조금 더 몸으로 상상하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