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
[파주~김포2] 경기도 휴전선 64마일을 따라 걷다
북서부를 군사분계선으로 두고 있는 지역, 파주의 평화누리길로 향해 보자.
파주에는 북한과 통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았다. 과거의 아픔과 미래의 상상력이 교차하는 경험을 하며 임진강 너머를 보는 것은, 책이나 자료로는 익힐 수 없는 경험과 감각을 주었다.
파주는 어느 곳보다도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도시다. 출판 도시라는 명성답게 많은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헤이리마을이나 프로방스마을, 한국 근현대사박물관 등 콘셉트가 확실하고 특색이 짙은 공간들이 많다. 지역적으로는 북서부를 군사분계선으로 두고 있는 지역으로, 임진강이 북녘을 가로지른다. 파주의 평화누리길로 향해 보자.
![NOWDMZ_17_07.jpg 만우천 오금교](/dmzopen_data/editorImage/aafe940e-395f-49c1-8c4e-fb90d5970764.jpg)
만우천 오금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리러 만우천의 오금교 즈음에 섰다. 마침 시간대가 잘 맞게 방문해 따뜻한 노을빛이 강물 위로 쏟아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포토그래퍼들 사이에서 유명한 출사지라고 한다.
![NOWDMZ_17_08.jpg 만우천 오금교2](/dmzopen_data/editorImage/52f6096e-50b5-424c-bcc5-f70fa1261022.jpg)
어른어른 부서지는 붉은 빛을 바라보다가 잠시 눈꺼풀을 감았다. 저물어가는 햇빛이 눈꺼풀의 여린 살을 만져 주는 듯 느껴졌다.
오두산통일전망대
![NOWDMZ_17_09.jpg 오두산통일전망대](/dmzopen_data/editorImage/e0a523aa-ecf0-4149-96e6-1ca4b70996c8.jpg)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 전망대로 향했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이곳으로 향하는 길도 만만치 않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특히 장년층에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리플렛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버전 모두 마련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이미 오갔구나, 어떤 마음으로 오게 된 것이었을까, 흔적을 더듬는 마음으로 전시실로 향했다.
![NOWDMZ_17_10.jpg 오두산통일전망대2](/dmzopen_data/editorImage/9d60f22c-8838-4587-a0e5-05537371fa02.jpg)
〈기억을 찾아서〉 부스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나도 궁금해져 옆에 놓인 자리에 앉았다. 이곳은 체험자가 북한에 위치한 가상의 고향을 설정한 후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든 브이알 체험이었다. 가상 고향을 평양으로 설정하면 조선시대 누정인 을밀대나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릉에 가 볼 수 있는 식이다. 개성이나 해주, 사리원 등도 선택할 수 있었다. 사실 내게는 전부 낯선 지명이었는데,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어르신들은 꽤나 즐겁게 이번엔 어디로 갈지에 대해 궁리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와아, 하고 감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NOWDMZ_17_11.jpg 오두산통일전망대3](/dmzopen_data/editorImage/8dc96034-e986-4ee4-ac4d-455328e99b01.jpg)
층을 오르며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던 것은 피아노였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자 피아노 한 대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피아노? 좀 의아해져서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는데, 피아노 건반에 매달아 놓은 현이 철조망이었다. 꼬불꼬불한 선 사이사이 돋아나 있는 가시들이 손에 스치기라도 한 것처럼 따끔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의 제목은 <통일의 피아노>로, 2015년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통일부에서 제작한 피아노라고 한다. 직접 연주해 볼 수는 없었지만 녹음된 연주 음원이 나오고 있어 실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을 막고 다치게 만들 요량으로 만들어진 철조망이 음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이 하나하나 울려 음악을 이루는 일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NOWDMZ_17_12.jpg 오두산통일전망대4](/dmzopen_data/editorImage/e9886ba6-ed02-4963-87b9-6ebc7f40c782.jpg)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자 전망대가 보였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보면 북으로는 개성 송악산이, 남으로는 서울의 63빌딩이 보인다고 한다. 나는 지도를 본 기억을 더듬어가며 송악산이 있을 자리를 향해 망원경을 돌려 보았다. 저곳에 사람들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그들이 만약 이 작은 망원경을 열고 나와 우리를 만나러 올 수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어떤 말을 걸까. 아마 대단히 남다른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런 말들.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여기에 잠깐 앉으세요. 타인을 초대하고 환대할 때 우리가 꺼내는 말들. 그렇게 평범하고 다정한 말을 저 너머에 보내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