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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

[파주~김포2] 경기도 휴전선 64마일을 따라 걷다

북서부를 군사분계선으로 두고 있는 지역, 파주의 평화누리길로 향해 보자.


파주에는 북한과 통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았다. 과거의 아픔과 미래의 상상력이 교차하는 경험을 하며 임진강 너머를 보는 것은, 책이나 자료로는 익힐 수 없는 경험과 감각을 주었다. 파주는 어느 곳보다도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도시다. 출판 도시라는 명성답게 많은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헤이리마을이나 프로방스마을, 한국 근현대사박물관 등 콘셉트가 확실하고 특색이 짙은 공간들이 많다. 지역적으로는 북서부를 군사분계선으로 두고 있는 지역으로, 임진강이 북녘을 가로지른다. 파주의 평화누리길로 향해 보자.

만우천 오금교
만우천 오금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리러 만우천의 오금교 즈음에 섰다. 마침 시간대가 잘 맞게 방문해 따뜻한 노을빛이 강물 위로 쏟아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포토그래퍼들 사이에서 유명한 출사지라고 한다.

만우천 오금교2

어른어른 부서지는 붉은 빛을 바라보다가 잠시 눈꺼풀을 감았다. 저물어가는 햇빛이 눈꺼풀의 여린 살을 만져 주는 듯 느껴졌다.

오두산통일전망대
오두산통일전망대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 전망대로 향했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이곳으로 향하는 길도 만만치 않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특히 장년층에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리플렛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버전 모두 마련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이미 오갔구나, 어떤 마음으로 오게 된 것이었을까, 흔적을 더듬는 마음으로 전시실로 향했다.

오두산통일전망대2

〈기억을 찾아서〉 부스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나도 궁금해져 옆에 놓인 자리에 앉았다. 이곳은 체험자가 북한에 위치한 가상의 고향을 설정한 후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든 브이알 체험이었다. 가상 고향을 평양으로 설정하면 조선시대 누정인 을밀대나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릉에 가 볼 수 있는 식이다. 개성이나 해주, 사리원 등도 선택할 수 있었다. 사실 내게는 전부 낯선 지명이었는데,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어르신들은 꽤나 즐겁게 이번엔 어디로 갈지에 대해 궁리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와아, 하고 감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오두산통일전망대3

층을 오르며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던 것은 피아노였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자 피아노 한 대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피아노? 좀 의아해져서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는데, 피아노 건반에 매달아 놓은 현이 철조망이었다. 꼬불꼬불한 선 사이사이 돋아나 있는 가시들이 손에 스치기라도 한 것처럼 따끔하게 느껴졌다. 이 작품의 제목은 <통일의 피아노>로, 2015년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통일부에서 제작한 피아노라고 한다. 직접 연주해 볼 수는 없었지만 녹음된 연주 음원이 나오고 있어 실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을 막고 다치게 만들 요량으로 만들어진 철조망이 음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이 하나하나 울려 음악을 이루는 일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오두산통일전망대4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자 전망대가 보였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보면 북으로는 개성 송악산이, 남으로는 서울의 63빌딩이 보인다고 한다. 나는 지도를 본 기억을 더듬어가며 송악산이 있을 자리를 향해 망원경을 돌려 보았다. 저곳에 사람들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그들이 만약 이 작은 망원경을 열고 나와 우리를 만나러 올 수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어떤 말을 걸까. 아마 대단히 남다른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런 말들. 안녕하세요.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여기에 잠깐 앉으세요. 타인을 초대하고 환대할 때 우리가 꺼내는 말들. 그렇게 평범하고 다정한 말을 저 너머에 보내고 싶다는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