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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

[김포1] 경기도 휴전선 64마일을 따라 걷다

김포 최대의 평화관광지는 역시 이곳이지 않을까 싶다. 시간을 내어 방문할 만한 질과 규모를 갖췄다.

 

1945년생 레즈비언 ‘바지씨’ 이묵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불온한 당신>에는 한 태극기 집회에서 퀴어들을 종북 빨갱이라고 이르는 장면이 나온다. 스무 살이었더 나는 그 장면에서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종북 빨갱이’가 무슨 뜻인지를 정확히 몰랐다. 모욕적인 뉘앙스의 단어인 것 같다고는 느꼈지만 정확히 모욕당하지는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종북從北이라는 단어를 다시 검색해 보았다. 종북은 따를 종과 북한의 북을 합쳐 만든 단어라고 한다. 지금은 사람들이 종북 빨갱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대강 알고 있지만, 여전히 이 단어는 나를 모욕하지 못한다. 북한을 따르려면 적어도 북한에 대한 무언가를 알아야 할 텐데, 내게는 그렇게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앎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통일이 좋거나 싫거나 하는 정도의 의견을 가질 만큼 북한과 분단 사실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여전히 빨갱이라는 단어는 모욕이라기보다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단어에 가깝다.


혐오는 상상력의 부재에서 발원한다. 혐오하는 자들은 퀴어와 탈북민과 이주민 등의 소수자가 각각 한 명의 인간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도 자신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자는 사람이라는 걸, 일과 집과 사랑과 인정이 필요한 개인이라는 걸 믿지 못한다. 그러니까 특정 국가 출신의 사람을 병균 덩어리로 대하거나, 남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랑에 반대씩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사회의 누군가를 배제하고 싶지 않다. 혐오보다 사랑이 강할까?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 적극적인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애기봉평화생태공원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김포 최대의 평화관광지는 역시 이곳이지 않을까 싶다. 방문 시 예약이 필수적이고 군사 지대라 신분증 지참도 꼭 해야 하기에 번거롭다고 느낄 수 있지만, 시간을 내어 방문할 만한 질과 규모를 갖췄다. 전시관과 조강전망대, 생태탐방로가 고르게 마련되어 있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2

특히 이곳의 평화생태전시관은 다른 평화누리 관련 관광지들 중에서도 조강 및 DMZ 일대의 생태계에 대해서 가장 잘 다루고 있다고 느꼈다. DMZ 지역의 생태적 특성과 이곳에 서식하는 새, 곤충, 동물 등을 종 별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내용뿐만 아니라 소개하는 방식이나 디스플레이에 있어서도 관람객이 호기심을 가질 만큼 흥미로운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3

한 전시관에 들어섰을 때는 어떤 새가 정말로 내게 날아오는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홀로그램 영상으로 날아다니는 재두루미의 이미지를 관 안에 상영해 마치 두루미를 직접 만나는 듯 연출한 것이었다. 무척 생생해 기억에 남았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4

전시관을 돌아본 뒤에는 흔들다리를 건너 전망대로 향했다. 이른 시간에 찾은 조강전망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망원경 가까이 다가가 찬찬히 건너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저 건너편 땅에서, 빨간 배경에 하얀 글씨로 적힌 간판 여러 개와 몇 개의 깃발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느껴졌다. 나는 눈썹 위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눈을 찡그린 채 한참 망원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지나가지 않을까, 누군가 움직이지 않을까.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흔적이 보고 싶어졌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5

이곳으로부터 북녘땅은 약 1.4km 전방이다. 1.4km의 평지를 걷는다고 가정하면 약 2,000보, 이십 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나는 산책 삼아 두 시간도 거뜬히 걷는 사람인데, 그렇게 가까운 거리를 이런 망원경으로 들여다봐야 하고, 전심전력으로 상상해야 겨우 가닿을까 말까 하다는 사실에 금세 허망해졌다. 왜 이렇게까지 가깝고,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멀어야 하는가. 그런 생각으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덕포진
덕포진

언덕을 오르자 둥근 형태로 늘어선 굴들이 보였다. 이걸 다 사람이 지어 놓은 것이라니. 마치 고인돌을 볼 때처럼 잘 믿기지 않았다.
덕포진은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건설된 조선시대의 전략적 요충지다. 나누어 살펴보자면 이곳은 소규모 군사기지, 주변 관측을 맡는 기지, 포대와 탄약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적으로는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덕포진2

이곳은 1981년에 전 문화원장 김기송 씨가 사비를 들여 발굴 작업을 시작하면서 알려졌고, 여전히 복원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많은 문화재가 묻혀 드러나지 않았던 시절에, 그는 한 공무원의 가벼운 언질을 흘려듣지 않고 3개월 간 해안 여기저기를 파헤쳐 이 유적을 발견했다. 덕포진을 처음으로 지었을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이 공간을 다시 발견해 복원하고 알리는 데에 힘을 쏟은 사람들의 힘도 참 대단하구나, 많은 사람들의 공이 스며 있는 땅이구나, 싶었다.

덕포진3

덕포진 자체는 아주 높지 않지만 규모는 꽤 넓다. 산책 삼아 여유롭게 돌아보기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근 주민들에게는 노을을 볼 수 있는 좋은 스팟으로도 인기라고 한다. 나는 해가 질 시간보다는 조금 이르게 방문했는데, 오히려 좋았다. 그 시간의 빛은 각도가 낮아 세상의 더 깊은 구석까지 예쁘게 물들이니까. 햇빛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어둑한 굴 속까지도 스밀 테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윤슬은 눈으로 팝핑캔디를 맛보듯 알알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