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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

[김포2] 경기도 휴전선 64마일을 따라 걷다

철조망은 평화누리길을 따라 걷는 내내 몇 번이고 보았지만, 그런다고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다가갔다가 역시 뒷걸음질을 치게 되었다.

 

혐오는 상상력의 부재에서 발원한다. 혐오하는 자들은 퀴어와 탈북민과 이주민 등의 소수자가 각각 한 명의 인간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도 자신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자는 사람이라는 걸, 일과 집과 사랑과 인정이 필요한 개인이라는 걸 믿지 못한다. 그러니까 특정 국가 출신의 사람을 병균 덩어리로 대하거나, 남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랑에 반대씩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사회의 누군가를 배제하고 싶지 않다. 혐오보다 사랑이 강할까?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 적극적인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대명항
대명항

부두에 근처에 내리자 짠기가 피부로 먼저 느껴졌다. 바다 내음 사이사이 상인들이 오가고, 젓갈을 전문으로 판매한다는 건물도 보였다. 멀리서 보는 예쁜 바다도 좋지만 사람 냄새 잔뜩 풍기는 바다는 다른 감동으로 와닿는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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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주차장을 지나면 퇴역한 상륙함을 활용해 조성한 함상공원이 보인다. 그로부터 조금 더 걸어와야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철책길의 시작점에 다다를 수 있다. 다양한 구조물을 지나치면 나무로 만들어진 좁은 문이 있다. 이곳이 평화누리길임을 알리는 표식이니, 여정을 시작하려면 그곳으로 통과하면 된다. 나도 걸음을 옮겨 안쪽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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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하강은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흐르는 강인데, 이 강을 따라 난 길에 철조망이 둘러져 있어 평화누리길 1코스가 염하강철책길이 되었다고 한다. 철조망은 평화누리길을 따라 걷는 내내 몇 번이고 보았지만, 그런다고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다가갔다가 역시 뒷걸음질을 치게 되었다.
그렇게 강변을 차근히 거닐던 무렵, 철조망 너머에서 문득 날카로운 짐승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철조망 사이를 살짝 들여다 보니, 수십 만 마리 오리 떼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각자 몇 마리씩 무리를 지어 물가를 헤엄치면서, 흐르는 강물 위에 금세 사라질 자국을 남겼다. 그 풍경이 생생하고 생경했다. 나는 걷기를 멈추고 철조망 틈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오리들은 좋아 보였다. 자유로워 보였다.


이번 가을과 겨울에 나는 이상할 정도로 자주 손이 베였다. 핸드크림 바르기를 게을리했더니 종이 몇 장을 만지다가도 자주 다쳤고, 살을 가르는 얇은 실금만으로도 나는 얼어붙듯이 멈추었다. 그런 상처나 핏자국을 바라보고 또 아파하다 보면, 인간의 살은 과일처럼 무르다 했던 어떤 소설 속 문장이 곧잘 스쳐지나가곤 했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에서 나는 그 문장을 나의 방식으로 수정하기로 한다. 과일처럼 무른 것은 인간의 살갗만이 아니라고. 어쩌면 무르다는 사실 자체가 곧 인간의 특성이라고.


나는 이 여행으로 나 이전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경험했을 상처를, 봉합할 수 없는 채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던 상처를 보았다. 손끝 하나 베이는 것도 그리 아픈데, 삶의 일부가 찢겨나간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다. 그들은 오래 아파했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고, 인간은 무르기에.
그리고 등허리가 찢긴 대한민국의 지도를 보고 있으면, 마치 거칠게 잘려 까뒤집힌 살갗 같은 것을 눈으로 보게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면서 매번 아무런 감흥 없이 바라보던 지도인데, 이제 나는 그것이 무섭고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그 무서움과 새삼스러움이 내 살갗에 상흔이 되어 남았다.


죽은 사람들의 흔적과 그것을 속 쓰리게 애통해하는 마음.
산 사람들의 흔적과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알고 싶어 높은 곳에 오르고, 허리를 굽히거나 젖히고,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거나 손을 모아 시야를 좁혀야 했던 시간들.

세 편의 글에 걸쳐 커다란 질문을 던져 놓았지만, 나는 사실 이 여행을 통해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찾아 읽어야 할 책들이나 공부해야 할 사건과 이름을 조금 더 알게 되었을 뿐이다.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추를 매단 듯 무거웠다. 다만 여행이 끝났을 때 누구나 그렇듯, 내게는 아주 사실적인 앎이 남았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번 여정 중에도 이유 모를 상처들을 여러 개 얻었고, 지금 몸 여기저기에 밴드를 여러 장 붙인 채 이것을 쓰고 있다. 부디 이 상처들이 천천히 아물기를 바란다.